평양 단군릉에서 2003년 개천절 남북해외 공동행사가 열렸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공화국의 수도 평양의 강동군에 위치하고 있는 대박산 기슭에는 우리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릉이 웅장하게 솟아있다.”

10월 3일 개천절을 맞아 북한 웹사이트 <오늘의 조선>이 ‘대박산 기슭은 전한다’는 기사에서 이같이 강조하고는 “단군릉은 주체83(1994)년 10월 11일에 우리 민족의 시조왕의 무덤답게 훌륭히 개건되었다”고 알리면서, 단군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했다.

사이트에 따르면,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 기슭에 45정보의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단군릉은 크게 단군릉개건기념비 구역과 석인상 구역, 중심 구역으로 되어있다.

단군릉개건기념비 구역에는 단군릉개건기념비, 단군릉기적비, 문기둥 등이 있고 그밖에 두개의 휴식마당과 돌계단이 있다.

단군릉개건기념비. [사진-조선의 오늘 캡처]
단군릉개건기념비. [사진-조선의 오늘 캡처]

단군릉개건기념비에는 ‘단군릉개건기념비’라는 글발이 새겨져있고 뒷면에는 우리 민족의 원시조를 찾아주고 단군릉을 개건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준 ‘위대한 수령님들’의 영도업적을 칭송하는 헌시가 새겨져 있다는 것.

단군릉기적비. [사진-조선의 오늘 캡처]
단군릉기적비. [사진-조선의 오늘 캡처]

단군릉기적비에는 단군의 업적을 전하는 글과 1936년 단군릉수축기성회 성원들의 이름, 단군릉 수축에 필요한 자금을 희사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문기둥. [사진-조선의 오늘 캡처]
문기둥. [사진-조선의 오늘 캡처]

문기둥은 단군릉의 문을 대신한 것으로서 능 앞 좌우에 각각 5개씩 가로 줄지어 세워져있다. 제일 안쪽에 세워진 좌우문 기둥의 높이는 각각 10m이고 제일 바깥쪽의 작은 문기둥의 높이는 각각 1.5m정도이며, 문기둥은 우리 민족 고대시기의 선돌 형식을 살린 것.

석인상 구역. [사진-조선의 오늘 캡처]
석인상 구역. [사진-조선의 오늘 캡처]

석인상 구역은 두 단으로 되어있는데 위단의 좌우에는 단군의 네 아들상이 각각 좌우에 두상씩 마주선 상태로 배치되어 있고 아랫단 좌우에는 측근 신하상 8상이 좌우에 4상씩 마주선 상태로 세워져있다.

[사진-조선의 오늘 캡처]
피라미드식의 돌무덤. [사진-조선의 오늘 캡처]

중심 구역은 남북 길이 101.7m, 동서 너비 97.5m 되는 넓은 구역으로서 무덤무지를 중심으로 하여 돌상, 돌향로, 돌범상, 망주석, 돌등, 검탑이 있으며, 무덤무지는 위가 잘린 정4각추형으로서 밑단에서부터 1,994개의 화강석을 다듬어 위로 올라가면서 차례줄임하여 9개의 단을 지어 높이 쌓아올린 피라미드식의 돌무덤.

사이트는 “무덤무지를 돌로 계단을 지어 9층으로 쌓은 것은 우리 선조들이 고대와 그 이후시기에 무덤을 돌로 만들거나 여러 개의 계단을 지어 쌓았던 전례를 살린 것이며 9라는 수자를 가장 높고 상서로운 수로 여겨온 관례를 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덤무지의 네 모서리에는 각각 한 쌍씩의 돌범상이 있는데, 이것은 조선 범을 형상한 것으로서 마치도 단군릉을 지켜선 파수병마냥 바깥을 향하여 서있다.

비파형 단검을 형상한 검탑. [사진-조선의 오늘 캡처]
비파형 단검을 형상한 검탑. [사진-조선의 오늘 캡처]

중심구역의 제일 바깥 네 모서리에는 고조선시기의 전형적인 무기였던 비파형 단검을 형상한 검탑이 세워져있는데, 이 검탑은 동으로 만든 검몸 부분과 화강석 받침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검몸의 높이는 5m로서, 이 검탑은 동방의 강국이었던 고조선의 위용과 발전된 문화상을 보여준다는 것.

단군 화상. [사진-조선의 오늘 캡처]
단군 화상. [사진-조선의 오늘 캡처]

무덤무지의 북쪽에 낸 문으로 들어가면 바른4각형 모양의 평면구조로 된 무덤칸이 있는데. 그 무덤칸 바닥에는 2개의 관대가 남북 방향으로 나란히 놓여있고 그 위에는 단군과 그 아내의 유골이 든 유리관을 덧싼 나무관이 각각 놓여있다.

무덤을 향하여 왼쪽의 것이 단군의 유골이 들어있는 관이고 오른쪽의 것이 단군의 아내의 유골이 들어있는 관. 무덤칸 정면에는 단군 화상이 걸려있다.

한편 북한의 자료에 따르면, 평양지방에서 태어난 단군은 B.C. 30세기 초에 도읍을 평양성에 정하고 처음으로 나라를 세웠는데, 이때 세운 나라이름을 옛 기록에서는 ‘조선(고조선)’이라고 하였고 그 건국자를 ‘박달 임금’이라고 불렀다면서, 박달 임금은 후세에 와서 한자로 옮겨 쓰면서 ‘단군’으로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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