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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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아는 것이니라.〔......〕옛날에는 자기를 위해 배웠는데, 오늘날에는 남들을 위해 배우는구나.

                                                                                          - 공자, 『논어』에서

 

오래전의 일이다. 새로운 분이 공부하러 왔다. 자신을 국문학 석사라고 소개했다. 맨 뒤에 자리를 잡고는 강의 시간 내내 삐딱한 자세로 일관했다.

강의가 끝나고 “질문 하실 분 계세요?”라고 했더니, 그녀는 오른 손을 번쩍 들고는 “저는 선생님과 생각이 다른데요.”했다.

나는 씽긋 웃으며 독설을 내뱉았다. “생각 차이가 아니라 수준 차이예요.” 그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다음 시간부터 오지 않았다.

몇 달 후 그녀를 데리고 왔던 회원이 말했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단다. “그 선생님 말이 맞더라. 언젠가 TV를 보는데 미국 명문대 출신의 대학 교수가 똑같은 말을 했어.”

박사학위를 가진 분들은 달랐다.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듯했다. 한 분야에 깊이 들어가 본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 같았다.

그들은 전문 지식은 있더라도 나와 함께 공부하며 ‘몸으로 익히는 공부’ ‘나를 위한 공부’에 흥미를 갖는 듯 했다.

모 도서관에 강의 갔을 때였다. 강의를 하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을 언급하게 되었다. 강의가 끝나고 한 분이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선생님, 혹시 심리학 전공하셨어요?”하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뇨. 전공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라캉을 설명하세요?”

그녀는 심리학을 전공한 모 대학의 시간 강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라캉의 사상 어느 한 부분을 일상의 삶과 결부지어 설명하는 게 새롭게 보였나 보다. 그 분은 그 후에도 오랫동안 공부 모임에 참여했다. ‘나를 위한 공부’ ‘삶을 가꾸는 공부’를 찾아가는 듯 했다. 그녀는 많은 학생들의 삶을 바꾸리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나 같이 삶 속에서 공부한 사람은 전문성이 약하다. 하지만 전문 연구가가 아닌 대다수 사람들은 전문성보다는 우리의 삶을 가꾸는 공부법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한다.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면 ‘공부 따로 삶 따로’가 아닌가?

꿈을 찾아 자신의 삶을 묵묵히 밀고 가는 분들이 공부하러 오면 기분이 좋다. 그들만의 파동이 전해져 온다. 강의 시간은 언어의 춤판이 된다.

나는 오랫동안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교사를 하면서 돈을 모으고 있었다. 그러다 1987년 6월 항쟁을 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그때까지 세상은 엘리트들이 이끌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길가에 서서 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는 거대한 살아있는 역사를 보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강물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것이었다.

그 뒤 나는 배움에 목이 말랐다. 교직을 그만두고 ‘자유인’이 되었다. 그야말로 내 안의 희열이 가라는 곳으로 갔다. 여기저기 강연을 들으러 다니고, 운동 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문학 공부를 하러 다니고, 공부 모임을 만들어 그 당시 금서였던 사회과학을 공부했다.

질펀한 술자리와 방황이 나의 주된 공부법이었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나는 깨달았다. 공부는 ‘나를 위한 공부’라는 것. 일찍이 동양의 철인 공자가 그렇게 가르쳤다는 걸 알았다.

공부는 나를 바꾸는 것.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하는 것이었다. ‘작은 나, 속물’을 벗어나 ‘큰 나’가 되는 것이었다. 동서고금의 모든 성현들이 그렇게 가르쳤다.

나는 제도권 대학원에서 공부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대학원에 갔다면 아카데믹하게 되어 나의 삶은 점점 현실과 멀어져 갔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전문성 하나로 이 사회에서 대접받으며 살아갔을 것이다. 내면은 갈수록 황폐화되어 가는데.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우울과 권태에 시달리고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런 사람은 ‘남을 위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남(세상)에게 인정받고 대접받기 위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하면 마음의 힘이 강해져 행복해진다.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커져 인간관계가 좋아진다.

공부해서 남 주자는 말을 하지만,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해야 결국엔 남을 위하는 사람이 된다. 태양처럼 빛나야 뭇 생명을 살리고, 꽃처럼 향기가 나야 남에게 좋은 기운을 준다.

심호택 시인은 우리들의 원초적 공부, ‘어머니의 교육’을 슬프게 노래한다.

 

일꾼에게 궂은 일 시켜 놓고
봐라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나
저렇게 된다
똥지게 진다

                                                                          - 심호택, 《똥지게》 부분

 

우리의 교육은 오랫동안 ‘남을 위한 공부’였다. 여봐란 듯이 살기 위한 뜨거운 열기였다.

그래서 재력이 학벌이 되고 학벌은 새로운 신분이 되었다.

일찍이 말했듯, 뱀은 계속 허물을 벗어야 살 수 있듯이 인간은 한평생 거듭나야 살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니체가 말한 난쟁이들이 그득하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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