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연재를 다시 시작하며

58년 개띠 노동자 이야기를 다시 하려고 합니다. 잠시 쉰다는 것이 1년을 넘겨 버렸습니다. 그 동안 우리의 주인공 신돌석씨도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세상은 많이 변한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완강하게 버티며 변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그보다도 변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소소한 일상을 통해 그려 보고자 합니다. 통일뉴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질책을 부탁드립니다. / 필자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동화면세점 뒤로 조선일보가 보였다. 그 뒤로 서울시 의회가 있고, 길 건너에 서울신문이 있는 프레스센터. 또 앞으로 파이낸셜센터가 있고, 그 앞에 동아일보가 있다. 여기서 보이는 곳에 세월호 참사와도 관련된다고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신돌석씨는 이 자리에 서서 건물들을 바라보자 작년 봄에 조선 동아 100주년 규탄 집회에서 동아일보 해직 기자 출신으로 동아투위 위원장을 역임했던 재야인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자신들은 지난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쫓겨나서 거리를 헤매야 했는데 저들은 저렇게 화려한 빌딩을 지을 정도로 커졌다는 것이다. 조선 동아의 거짓, 왜곡, 배신은 100년 내내 관통하는 것이지만,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예외 없이 악의적인 보도를 많이 했다. 특히 두 신문사가 이명박 정권 때 특혜라고도 할 수 있는 TV조선, 채널A 등의 종편을 만들어서 그것을 통해 계속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을 하려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악의적인 방송을 하였다. 참사가 일어난 직후에는 좀 잠잠하다가 곧바로 본색을 드러냈는데, 관점이 문제가 아니라 이전 시위 장면을 갖다 붙이는 조작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추모와 진상규명 요구 시위를 보도하면서 이전에 경찰관이 시위대에 폭행당하는 장면을 붙여서 마치 폭력이 난무하는 시위인 것처럼 묘사하였다. 시민들의 추모 열기에 물을 끼얹어서 식게 하려는 의도가 너무나 분명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식당, 사우나 등에 가면 어떤 수를 쓴 것인지 종일 자기네 종편 방송을 틀어놓게 해서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그 보도를 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신호가 바뀌자 동화면세점 앞과 종로 방면에서 각각 조선 동아 폐간을 주장하는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길을 건너왔다. 이들은 서로 마주치자 멋쩍게 웃더니 방향을 달리해서 가자고 하였다. 신돌석씨에게 인사를 건네서 신돌석씨도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작년 봄에 동아일보 앞과 조선일보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때 신돌석씨도 한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날 엄청나게 비가 쏟아져서 우비를 입고 했는데 정말 몸이 덜덜 떨렸다. 신돌석씨는 동아일보 앞에서 했는데 건물 앞으로 조금 다가서자 경비를 서는 직원이 여기는 사유지이니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였다. 절차적인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자 1인 시위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막지도 않지만 사유지에 들어가면 안 되는 것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지금 조선 동아 폐간을 주장하며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피켓을 들고 1인이 행진을 하였다. 더욱 적극적인 1인 시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동아 폐간을 주장하는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100주년 규탄 이전부터 해오던 사람들인 것 같은데 신돌석씨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건 세월호 기억관 지키기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인데 그만큼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기반이 넓어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사람들의 상당수는 이른바 전통적인 운동권으로 불리는 학생운동, 노동운동 출신들이기보다 광우병 시위와 세월호 추모 시위, 박근혜 탄핵 규탄 시위를 거치면서 참여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었는데 세상은 왜 늘 이 모양이냐고 한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신돌석씨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게 세상이 변해가는 것으로 믿고 싶었다.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신돌석씨가 서 있는 등 뒤의 KT건물 쪽에서 경찰의 방송이 들렸다. 1인 시위는 법적으로 보장된 것이니 충분히 존중하지만 여러분들은 지금 사실상 집회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거리두기를 확실히 해서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잘 지켜 주기를 당부한다고 하였다. 조선 동아 폐간 주장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저 새끼들은 심심하면 한 번씩 기죽이려고 저런 방송을 한다고 하였다. 누가 그런다고 쫄지 아느냐고 하면서 너털웃음까지 웃었다. 416가족협의회에서 SNS를 통해 경찰들이 보수유튜버들의 훼방을 막아주고 있으니 경찰과 충돌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긴급행동을 앞두고 하였다. 이곳을 담당하는 종로경찰서는 사실 힘들기는 할 것 같다. 매일 계속되는 1인 시위가 광화문과 종로 곳곳에서 벌어지니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이전처럼 진압 대상이 한쪽으로 분명하면 모르는데 지금은 전혀 성격이 다른 대상들을 상대하려니 자신들도 헷갈릴 것이다. 그런데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지키기를 하는 사람들은 종로경찰서가 일방적으로 방해 놓는 수구세력 편을 든다고 불만을 말하고는 하였다. 또 종로경찰서 앞에 가면 종로경찰서의 편파적인 시위 대응에 대해 항의하는 1인 시위가 쉬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그 모든 시위에 대해 신돌석씨가 모두 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민주세력의 집회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던 경찰이 언제부터 개과천선하여 민주경찰로 거듭나서 민주시민을 보호한다고 믿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수구세력들의 막무가내식 행동을 저지해서 물리적 충돌을 막는 데 경찰들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오늘은 일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아직 안 나타났는데 토요일인 어제는 서울시청 직원들이 온 것과 때를 맞추어 이른바 보수유튜버들이 대거 몰려와서 기억관 근처에서 행패를 부렸고, 그것을 경찰들이 일단 막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인간이 얼마나 선해질 수 있는지, 반대로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된다고 신돌석씨는 생각했다. 조선 동아 등의 수구언론은 물론 악의적인 보도를 하지만 최대한 법망을 피해 가면서 자신들의 의도를 알리려 했다. 그런데 이른바 보수유튜버나 일베라고 하는 자들은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를 최대한 보여주려고 용을 쓰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내걸고 단식투쟁을 하는 피해자 가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이라는 해괴망칙한 짓을 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개월쯤 지난 2014년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베저장소 회원들이란 자들이 광화문 단식농성장 옆에서 피자와 햄버거와 치킨 등으로 먹거리 파티를 하였다. 동조 단식을 반대하는 것은 자기 자유이지만 이런 못된 짓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다. 이후 이들은 세월호 참사 추모 시위만 있으면 나타나서 조롱을 하고, 훼방을 놓았다. 이번에도 나타나서 기억관 주변에서 악을 쓰면서 조롱을 했는데 이들이 내거는 주장 중에는 보상금과 관련된 것이 항상 있었다. 그만큼 받았으면 되었지 얼마 더 받으려고 그러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뇌구조를 가진 자들은 다 자기들과 생각하는 게 비슷한 줄 아는 모양이다. 뭐든지 돈으로 해결하고, 돈 더 받으려고 하는 줄 아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 그나마 물리력을 쓰지 않아서 물리적 충돌이라는 볼썽사나운 일이 안 일어나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반면에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굉장히 높은 도덕적 수준을 지닌 존재이며,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기도 하였다고 신돌석씨는 생각했다. 학생들을 먼저 구하고 나중에 간다고 하면서 끝내 배의 침몰과 함께 유명을 달리한 고 양대홍 사무장, 고 박지영 승무원 등은 정말 인간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를 보여준 사람들이었다. 이승만이 국민들에게 자기가 서울을 지킨다고 거짓말을 하고 도망갔듯이 배를 버리고 혼자 도망간 이준석 선장과 대비되는 이들의 의로운 행동은 두고두고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제자들 먼저 내보내고 자신들의 목숨을 기꺼이 바친 고 남윤철 교사, 고 최혜정 교사 등의 희생 역시 잊을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이들의 마지막 심정이 포세이돈 어드벤처에 나오는 신부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하고 신돌석씨는 생각했다. 이들의 거룩한 희생도 기려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는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 깊숙이 잠자고 있던 의로운 마음을 일깨워 주었다는 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반면에 그것을 조롱하고, 방해하고, 조작하는 자들이 있는 것 또한 인간 사회의 분명한 현실이다.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조선일보 뒤편으로는 서울시의회가 보였다. 여의도로 옮기기 전에 국회가 있던 곳이다. 온갖 날치기와 폭력 등으로 얼룩진 곳이다. 지금 서울시의회는 110석 중 100석이 넘는 의석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 힘에게 졌다고 해도 서울시의회를 압도적인 다수로 장악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얼마든지 제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 등에서는 그래서 시민들에게 서울시의회에 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전화를 하라고 촉구하면서 의장 전화번호를 알렸다. 서울시의회 건너편에는 서울신문사, 언론노조 등이 있는 프레스센터 건물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언론 탓이라고 하는 것은 언론으로서는 억울한 일일 수도 있으나, 지금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할 뿐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보도를 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보아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 건물 앞 쪽에 파이낸셜센터가 있는데 그 앞에 조그마한 공간이 있다. 거기서 집회를 자주 하였는데, 세월호 추모 집회도 많이 하였다. 또 촛불시위 기간 중 토요일에는 대규모 집회를 하고 평일에 소규모 집회를 여러 곳에서 했는데 그곳이 자주 이용되었다.

길건너 동아일보 쪽에는 ‘남북철도잇자’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사람이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남북철도잇기평화대행진에는 신돌석씨도 몇 차례 참가했는데,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서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되자 일단 행진은 중단하고 1인 시위를 하는 중이었다. 그 건너편 비각 쪽, 그 건너편인 신돌석씨의 등 뒤. 오른쪽 길 건너편인 스타벅스 앞 등 여기저기에서 세월호 기억관 철거를 반대하고, 철회할 것을 주장하는 게릴라식 1인 시위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신돌석씨의 눈 바로 앞으로 동화면세점 쪽에 ‘415부정선거 원흉 처단’ ‘사기 탄핵 무효’ ‘문재인 퇴진 구속’ 등이 적힌 현수막이 펄럭였다. 같은 시대 한 사회에 살면서 이렇게 서로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자기 생각을 하는 것은 좋은데 이들이 꼭 세월호 참사 문제가 나오면 게거품을 물고 달려드니 이들이 바라는 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것인지를 알 수 있다고 신돌석씨는 생각했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었다. 신돌석씨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려 등을 돌려 길을 건넜다.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공사로 기억관 앞에 처져 있는 팬스에 ‘박근혜 대통령 불법탄핵의 주범은 김대중과 김정일’이라고 쓴 현수막이 그 밑에 긴 글과 함께 붙여져 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땅의 수구세력은 젖먹은 힘까지 다해서 상황을 역전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고, 오세훈이 시장되고 얼마 안 되어서 기억관을 철거하겠다고 나선 것은 바로 그 일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처음에 발열체크 등을 했던 곳으로 가서 피켓을 반환했는데 서울시 직원들은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탁자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신돌석씨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수고하라는 인사를 남기고 광화문역으로 향했다. 1시간 좀 넘게 비록 차양막이 있었지만 따가운 햇빛을 받으며 서 있었더니 왠지 몸이 좀 얼얼하였다. 이제는 나이가 들긴 든 모양이구나 하면서 혼자 씩 웃었다. 여전히 교대를 하고 여기저기서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신돌석씨는 어느 시의 구절을 떠올렸다.

기억하니까 사람이다.
기억해서 다시는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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