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태권도연맹(ITF)은 변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변했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부터 단절됐다고 본다면 약 40년 가까이 됐으니 금방 하나로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40년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몇년 사이에 더 굳건한 협력관계가 구축될 것이다."

지난 2018년 10월 세계태권도연맹(WT)과 ITF의 평양합의를 앞두고 조정원 WT 총재가 한 말이다.

홍성보 북한학(태권도·체육) 박사는 최근 발간한 『서울·평양 태권도 문화융합』 에서 조 총재의 언급에 대해 "그동안 남한 태권도는 스포츠로 발전해 왔으나 북한 태권도는 무도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남북의 두 특성이 서로 연계되는 속에서 태권도 전체가 발전될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풀이했다.

홍성보, 『서울·평양 태권도 문화융합』, 퍼플, 2021.5. [사진-교보문고]
홍성보, 『서울·평양 태권도 문화융합』, 퍼플, 2021.5. [사진-교보문고]

그러면서 "남북 태권도 교류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남북의 국내 태권도단체가 주관하는 작은 규모의 대회에서 시작해 점차 국가대회로 확대하고 세계대회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남북의 국내외 태권도 단체들의 국제교류와 남북교류가 서로 연계되도록 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남측이 주도하는 WT와 남측 국내단체인 대한태권도협회(대태협)이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북측이 주도하는 ITF와 북측 국내단체인 조선태권도위원회(조태위)의 국내·외 교류가 서로 연결되어 남북 공동의 협력사업으로 발전하도록 하는 것.

홍 박사는 지난 2000년대 전반기까지 남북 태권도 교류가 대태협과  조태위 등 남과 북의 국내단체 시범단이 주축을 이뤄 진행되었으나, 2000년대 후반부터는 남측에서 스포츠와 무도가 구분되고 국내외 단체간 연계가 느슨해지면서 WT와 ITF 두 연맹이 주도하는 국제교류 성과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직접적인 교류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그래서 2018년 두 연맹이 평양에서 합의한 공동대회 개최의 경우, 세계대회에 앞서 국내대회를 대태협과 조태위가 주관하는 방식으로 유기적인 협력구조를 형성하고, 규정과 용어사용을 위한 합동훈련에서도 남북의 지역훈련센터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으로 국제교류와 남북교류가 함께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앞서 2018년 11월 2일 WT와 ITF는 평양에서 '태권도 통합 및 발전을 위한 합의서'를 체결해 △WT와 ITF 통합 준비 공동기구 발족 △합동 태권도 시범단 구성 및 월드 투어 진행 △국제대회 공동 개최 △서로 다른 규칙과 용어 통일 위해 남북 선수 합동훈련 진행 등에 합의했다.

△두 연맹의 단증과 심판자격증 상호 인정 △태권도 유네스코 공동 등재를 위해 매월 1회 실무회의 개최 등도 합의내용에 포함되어 있다.

홍 박사는 남북 태권도의 교류협력을 올림픽 공동참가, 올림픽 유산 및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공동등재와 연계하여 추진하면, 스포츠와 무도라는 특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태권도의 장점을 융합·발휘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올림픽 공동참가. WT와 ITF의 기존 합의를 발전시켜 남북 태권도가 함께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주도적으로 개최해 온 각각의 국제경기대회를 통합, 확대 개편해 하나의 경기대회로 정착시키도록 해야 한다고 짚었다. 

경기기술과 기술체계, 교육훈련 등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대태협과 조태위가 협력하여 통일시범단, 통일품새 등 태권도 수련체계 전반에서 다양한 협력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궁극적으로는 두 연맹이 협력하는 국제적 네트워크 속에서 남북 태권도 공동의 운영체계와 산업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네스코 공동 등재는 대태협과 조태위가 상호협력을 기반으로, 태권도를 둘러싼 남북의 경쟁과 갈등을 공유의 시각에서 해결하고 수련체계를 새로 구축하여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자는 것이다.

이에 필요한 △공동체 △전문교육 △전용시설 △기술체계 △경기규칙 △청소년 교육 △문화유산 지정 등 요건은 이미 구비하고 있기 때문에 남북이 상호협력의 의지만 있으면 실현 가능성은 높다고 예상했다.

올림픽 유산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는 영향력이 큰 국제규범인 만큼, WT와 국기원, 대태협 등 국내외 태권도 단체들의 상설협의기구를 구성하고 정부 차원에서는 남북태권도협력의정서 체결 등의 지원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당면 현안인 남북 태권도의 올림픽 공동참가 문제에 있어서는, 북측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ITF 방식이나 절충방식으로 출전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흥미를 잃을 수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남북 태권도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핵심 쟁점은 WT가 북측의 올림픽 참가를 위한 조건으로 기존 WT 방식으로 하라는 입장인 반면, ITF는 ITF식 또는 통합 룰을 제정해 WT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참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WT와 ITF는 지금까지 모두 일곱번의 통합 합의가 있었는데, 모두 IOC가 태권도의 올림픽 잔류를 결정하는 시기와 겹쳐 있으며, 2024년 파리올림픽에 북측 선수들이 참가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올해 IOC총회는 2028년 태권도의 잔류 결정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권도의 올림픽 잔류를 위해서라도 두 연맹간 합의무산은 있을 수 없다는 경고인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에 명시해 안팎의 기대를 모았던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개최 추진에 적신호가 켜진 가운데 남북 태권도 교류협력을 통해 이 문제 해결에 결정적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2018년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해 작성된 9월 평양공동선언 제4조 2항은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우리 민족의 기개를 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남과 북은...국제경기들에 공동으로 적극 진출하며, 2032년 하계올림픽의 남북 공동개최를 유치하는데 협력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하고 있지 않나.

체육강국을 지향하는 북측이 올림픽 경기대회에 출전하여 민족의 전통으로 내세우는 태권도 종목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면, 최소한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개최를 위한 논의에 나설만한 요인이 되지는 않을까?

책에는 1950~90년대 남북 태권도의 형성과 분화, 대결과 경쟁의 시대를 거쳐, 2018년 평양합의를 비롯해 7차례에 걸친 남북태권도 교류와 협력의 역사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남북 태권도의 쟁점과 태권도 남북융합 및 유네스코 등재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식견이 돋보인다.

특히 논문, 단행본과 함께 '인용'을 포함한 언론보도를 참고문헌 목록에 자세히 올려놓아 남북 태권도 교류협력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유용하다. 교보문고 POD(주문형 도서출판) 도서로 출판되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