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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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영혼은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수많은 원인에 의해 숱한 지식의 오류의 획득에 의해, 그리고 실체의 조직에 생긴 여러 가지 변화와 정념에 가해진 계속적인 충격으로 인해 애초의 모습이 변질되어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미개인은 자기 자신 속에서 살고 있는데, 사회인은 언제나 자기 밖에 존재하며 타인의 의견 속에서만 살아간다. 말하자면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타인의 판단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다.

                                                                             - 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30대 후반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방황하던 시절, 한 문학평론가의 “10년 동안 글을 쓰게 되면 글쓰기로 먹고 사는 길이 열린다.”라는 말이 천둥소리처럼 나의 가슴을 울린 적이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그 시간 동안 묵묵히 어떤 한 가지 일에 매진한다는 것은, 깊은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희열 없이는 힘들 것이다.

발명왕 에디슨이 했다고 하는 말,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이 말을 노력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1%의 영감이 없다면 99%의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는가.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사례를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노력한다고 아무나 가수가 되지 않는다. 노력한다고 아무나 운동선수가 되지 않는다. 노력한다고 아무나 화가가 되지는 않는다. 등등.

하지만 어떤 분야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공부’ 분야가 그럴 것이다. 우리의 지식위주의 입시는 돈의 힘으로 명문대, 의대, 로스쿨 진학이 가능할 것이다.

1% 영감(재능) 없이 피나는 노력으로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고 사는 사람의 삶은 어떨까? 과연 이런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 몸도 어느 특정 부위만 강해져서는 건강할 수 없다.

우리는 운동선수들이 나이 들어 힘들어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마음도 그럴 것이다. 지식 공부만 하여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다른 능력들, 감수성, 상상력이 빈곤한 경우를 많이 본다.

작가 찰스 부코스키는 말했다. “애쓰지 마라.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기다려라.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면 좀 더 기다려라. 그건 벽 높은 데 있는 벌레 같은 거다. 그게 너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려라. 그러다가 충분히 가까워지면 팔을 쭉 뻗어 탁 쳐서 죽이는 거다.”

‘철이 든다’는 것은 때에 맞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때에 맞춰 살아가면 천지운행의 도(道)와 하나가 된다. 도는 쉬지 않는다. 타고난 재능 없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도를 거스르며 살고 있는 것이다. 하늘(도)을 거스르면 망하게 되어 있다.

살아오면서 ‘애쓴 시간들’을 생각해 본다. ‘장남 역할’이 나의 길이라고 생각하며 동생들에게 압제자가 되었던 인생 전반부. 선녀보다 어머니를 중시했던 나무꾼이 나였다. 나무꾼은 지금도 닭이 되어 새벽마다 선녀가 있는 하늘을 향해 목 놓아 운다고 한다.

그러다 내 인생 최대의 위기가 왔다. 30대 후반, ‘차라리 큰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잘못 살아온 삶(애쓰며 살아온 삶)의 보복은 가혹했다.

10여년을 방황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인’이 되어 세상을 떠돌았다. 그러다 애쓰지 않고 저절로 하게 되는 일을 찾았다. ‘인문학 강의와 글쓰기’

우리의 학교 교육이 지식 위주의 입시교육을 벗어나 ‘애쓰지 않고 사는 길’을 찾아주는 교육과정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각자 흥이 일어나는 일을 하고, 사회는 그런 일을 인정하고 대접해준다면?

인간은 유희적 존재다. 유희가 없이 애쓰는 삶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다. 그래서 애쓰며 사는 현대 문명인들은 다 병 들었다.

계몽사상가 루소는 말한다. “인간의 영혼은〔......〕애초의 모습이 변질되어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미개인은 자기 자신 속에서 살고 있는데, 사회인(문명인)은 언제나 자기 밖에 존재하며 타인의 의견 속에서만 살아간다.”

원시사회는 평등한 사회이기에 누구나 삶의 주인이다. 하지만 문명사회는 계급사회라 삶의 기준을 지배계급이 정해준다. 지배계급, 남의 기준에 맞춰 사는 인간은 노예다. 문명인은 누구나 노예다.

문명인은 애쓰며 살아가기에 자신과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세상이 가라고 하는 곳을 향해 무작정 달려갈 뿐이다. 서로를 짓밟으며 위로위로 올라간다. 자신 안의 나비를 잃어버린 애벌레들이다.

프로스트 시인은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 상념에 젖어 든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나에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한다.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가야한다.

                                     - 로버트 프로스트,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 부분

 

멈췄지만, 우리는 머물지 말아야 한다. 가야만 하는 길을 가야 한다. 가야만 하는 길을 갈 수 있는 것. 이것은 오랫동안 애쓰지 않고 살아온 인간의 경지일 것이다.

멈출 수 있고 다시 일어나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것. 도를 행할 수 있는 인품을 덕이라고 한다. 덕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길을 멈출 수도 있고 갈 수도 있다. 봄이 멈추고 여름이 오듯. 낮이 멈추고 밤이 오듯. 나무가 성장을 멈추고 봄을 기다리듯..... .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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