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접수했다.”

미국이 새 대북정책을 설명하겠다며 북한 측에 만나자는 제안을 하자 북측이 10일 이같이 반응을 했다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북한의 목소리입니다. 지난 2019년 10월 북미 실무협상단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만났지만, 만나자마자 결렬된 이래 사실상 처음일 듯싶습니다.

사실 “잘 접수했다”는 말은 실무 차원에서 접촉 제안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무응답이나 원천적 접수 거부보다는 훨씬 호의적으로 들립니다. 게다가 북한이 접수 후 미국과의 접촉을 거부하거나 묵묵부답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북한이 첫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통상 새로운 대북정책을 만들고 그 새 대북정책으로 북한과 샅바 잡기에 들어가는 게 관례입니다. 이때부터 양국 간에 대화의 물꼬가 터질 수도 있고 또 갈등이 표면화 될 수도 있습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새 대북정책을 내왔다고 밝혔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요?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이 지난 4월 30일 대북정책에 대한 검토를 마쳤다고 발표했는데, 트럼프 대통령 식의 ‘일괄타결’(grand bargain)도 오바마 대통령 식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도 아닌, ‘실용적’인 대북 외교를 하겠다는 큰 틀만 공개한 상태입니다. 아울러 그간 대북정책 검토 과정에서 간간히 바깥으로 새어나온 내용이 있는데 △‘싱가포르 선언’을 토대로 하면서 △‘단계적 접근법’을 구사하겠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아직 새 대북정책의 전모를 밝히지 않았기에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대략 이 정도가 사실이라면, 북한이 그간 미국에 줄기차게 요구한 ‘새로운 계산법’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큰 방향에서는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한 번 만나서 진의를 들어볼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새 대북정책 검토를 마쳤지만 그 전모를 바로 공개하지 않고 대북 설명과 협상용으로 여지를 둔 점이 돋보입니다. 특히, 블링컨 장관이 지난 3일 “미국의 새 대북정책은 외교에 중점을 둔 매우 분명한 정책”이라며 “북한이 외교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를 바란다”고 호소한 점도 눈길을 끕니다. ‘군사용’이 아니라 ‘외교용’이라는 것은 북한으로서도 그리 나쁘진 않습니다.

어쨌든 삼세번이라고 할까요? 올해 1월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가 두 차례 북한과의 접촉 시도에 실패한 후 세 번째 만에 반응을 받은 것입니다.

첫 번째는 막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가 2월 중순부터 뉴욕채널을 포함해 북한에 연락을 취한 것이고, 두 번째는 지난 5일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출범 100일 만에 대북정책 검토를 완료한 바이든 행정부가 이 결과를 전달하기 위해 북한과의 접촉을 시도했다고 보도한 것인데, 두 번 모두 북한으로부터 어떤 답변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2일 북한 외무성 권정근 미국국장이 바이든 대통령의 의회연설에 대해 “반세기 이상 추구해온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구태의연하게 추구하겠다는 의미”라고 격분한 순간도 있었지만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동력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21일 미국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데,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남은 임기 1년, 미완의 평화에서 불가역적 평화로 나아가는 마지막 기회로 여기겠다”고 밝혔듯이 이번 한미정상회담 자리에서 북미대화 복원을 요구하고 논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분간 ‘한반도의 시간’이 지속될 것입니다. “잘 접수했다”에 이어 북한의 다음 음성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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