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북한의 대남 및 대미 인식은 무엇일까? 신년 들어 가장 궁금한 사안 중의 하나이다. 마침 북한의 대남관계를 비롯한 대미관계 인식의 대강이 드러났다. 북한에서 사실상 2021년 신년사를 대신한 장문의 보고서가 나온 것. 지난 5일부터 진행 중인 북한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나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사업총화보고’가 그것이다. 물론 북한매체가 공개한 27쪽에 이르는 사업총화보고는 원본이 아니다. 언론용 축약본이고 원본은 훨씬 장문일 것으로 판단된다. 아쉽지만 이 보고의 ‘3. 조국의 자주적 통일과 대외관계 발전을 위하여’를 참조하면 북한의 내남 및 대외 인식을 일별할 수 있다.

먼저, 남북관계와 관련 북한은 현 상황을 “판문점선언 발표 이전시기로 되돌아갔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의 원칙적 입장으로 “△근본 문제 해결, △적대행위 일체 중지, △북남선언들 이행” 세 가지를 들었다. 이러니 남한에서 제기하는 “방역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관광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들”은 ‘근본 문제’가 아니니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북남관계가 회복되고 활성화되는가 못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당국의 태도여하에 달려있”다며 공을 남한에 넘겼다. 아울러 남한에 “북남합의들을 이행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것만큼 상대해주어야 한다”며 북한식 상호주의를 내걸었다. 그러면서도 말미에 “남조선당국의 태도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운 시일 안에 북남관계가 다시 3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여지를 뒀지만 왠지 힘이 실린 것 같지는 않다.

다음으로, 대외관계 특히 대미관계에 있어서는 아예 “우리 혁명발전의 기본 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나가야 한다”며 ‘미국=주적’이라고 강하게 못박았다. 아울러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 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괘념치 않겠다는 기존 입장에다 뿌리 깊은 대미 불신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새로운 조미(북미)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철회하는데 있다”면서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선(先)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에다, 미국이 강하게 나오면 초강경으로 맞서고 대화로 나서면 그에 맞게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신년사 격인 8차 당대회의 ‘당중앙위 제7기 사업총화보고’에서 밝힌 북한의 대남 및 대미 인식은 한마디로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통상 선공(先攻)을 날리는 북한으로서는 의외다. 이는 북한이 2020년 신년사를 대체한 당중앙위 제7기 5차 전원회의(2019년 12월 28일-31일) 결정문에서 밝힌 정세가 1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미 인식의 경우 장기전에 입각해 정면돌파전을 벌이겠다는 연장선에 있다. 특히 대남 인식의 경우 2018년 신년사에서 밝힌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나 2019년 신년사에서 밝힌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용의’와 같은 적극성 그리고 2020년 신년사 격인 앞의 전원회의 결정문에서 대남 언급을 전혀 하지 않은 것과도 차원을 달리한다.

남한에 대해서는 남한이 어떻게 하냐에 달렸고, 미국에 대해서는 적대시정책을 철회하라는 것은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의 대북정책이었던 ‘전략적 인내’를 연상시킨다. 역으로 북한이 ‘전략적 인내’를 펼치고 있는 셈이다. 당장 남한은 북한의 요구대로 근본 문제 중의 하나인 3월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 또는 취소하게끔 미국을 설득하고 또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을 성실히 이행할 수 있는가? 그리고 미국은 대북 적대시정책을 철회할 수 있는가? 남한과 미국이 그럴 때까지 북한은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양측이 먼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움직이겠다는 것이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 북한판 ‘전략적 인내’는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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