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나의 황금을 주었고, 그것은 행복한 경험이었으나 며칠 가지 못했다. 한 주가 지나지 않아 그는 나를 조종하고 지배하며 나의 삶을 설계하고 나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 로버트 존슨,『내면의 황금』에서 ​ ​ ​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책으로 유명한 파란 눈의 현각 스님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혜민 스님을 향해 ‘일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혀 모르는 도둑놈’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아먹는, 지옥으로 가고 있는 기생충’이라고 맹공격을 했다고 한다.

‘무소유’를 주장하며 유명해진 혜민 스님이 사실은 ‘건물주’라는 것이다.

‘무소유’하면 법정 스님이 아니던가!

나는 치기 어린 대학생이었던 20대 초반에 법정 스님을 만난 적이 있다. 내가 속한 불교학생회에서 송광사로 수련회를 갔었다.

대웅전에서 법정 스님이 설법을 했다. 스님이 ‘꿈을 꾸는 건, 잠을 잘 때 영혼이 몸 밖으로 나와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때 나는 프로이트에 심취해 있었다.

“스님! 프로이트는 꿈을 ‘평소에 이루지 못한 소망의 충족’이라고 설명하던데요.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자 스님이 주장자를 바닥에 쾅! 내리치며 “할!”하고 소리를 쳤다.

나는 벌떡 일어나 대웅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는 문을 쾅! 닫았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다. 내게는 ‘아버지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철이 들면서 아버지를 무시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후레자식’을 순순히 받아들이셨다. 그러다보니 평생 나의 그 버릇이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살아가면서 만나는 ‘아버지들’을 부정하게 되는 것 같다.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은 남자들을 만나면 불편하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지 않거나 어떤 단체에도 끝내 소속하지 않으려는 것도 다 ‘아버지 콤플렉스’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대선사 임제 스님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고 했다. 스님은 ‘위(位) 없는 인간이 참된 인간 無位眞人’이라고 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도 이렇게 말했다. ‘나의 제자들이여 나는 홀로 가련다! 너희도 각각 홀로 길을 떠나라! 내가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를 떠나라. 그리고 짜라투스트라에 맞서라! 더 바람직한 것은, 그의 존재를 부끄러워하라! 그가 너희를 속였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나는 ‘아버지 콤플렉스’의 힘으로 나를 ‘위(位) 없는 인간’으로 가꾸고 싶다. 인류가 문명사회를 이루며 위(位)가 생겨났다.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이에 따른 여러 위계들. 이 위계들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종교였다.

‘무소유’의 성직자들을 내세워 피지배 계급들에게 열등감, 죄의식을 심어주어 복종하는 인간으로 길들여갔다. 지배 계급들은 ‘풀(Full)소유’를 하고.

우리는 돈이 많은 재벌 회장을 존경하면서 동시에 무소유를 실천했다는 법정 스님을 존경한다. 이 얼마나 분열증적인가! 분열증적인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의 삶을 꾸려갈 수 있겠는가?

현각 스님의 혜민 스님에 대한 질타가 멋있어 보이지만 우리를 진정으로 해방시키고 있는가!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 안의 황금을 내어주고 우리를 지배하고 조종하게 하지 않는가?

휘트먼 시인은 ‘짐승이 되어서 그들과 함께 살았으면’하고 노래한다.

그들은 제 처지 때문에 힘겨워하거나 애처롭게 울지 않는다.
그들은 어둠 속에 깨어 앉아 죄 때문에 울지 않는다.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의무를 논하여 나를 구역질나게
하지 않는다.
한 놈도 남에게 또는 몇 천 년 전에 살았던 동료에게
무릎을 꿇는 놈이 없다.
전 세계를 통 털어 한 놈도 점잔을 빼는 놈도 없고 불행한 놈도 없다.

                                                                          - 월트 휘트먼,《짐승들》부분

짐승들을 보면 하나같이 위엄이 있다. 언제 보아도 당당하다. 진정으로 행복해 보인다. 그들은 신명이 나 있거나 고요히 명상에 잠겨 있다. 다른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고 추하게 사는 생명체는 가축이 된 짐승들과 인간들뿐이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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