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개인마다 인간으로서 하나의 특수 의지를 갖는다. 그것은 그가 시민으로서 갖고 있는 일반 의지와 상반되거나 다른 성질의 것이다〔......〕전체 의지와 일반 의지 사이에는 때로 상당한 차이가 있는 법이다. 일반 의지는 공통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반면, 전체 의지는 사사로운 이익만을 생각하는 특수 의지의 총화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 의지에서 서로 상쇄하는 과부족을 빼면 차이의 합계로서 일반 의지만 남게 된다.〔......〕일반 의지가 충분히 표명되려면 국가 안에 부분적 사회가 존재하지 않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의견만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 장 자크 루소,『사회계약론』에서

아주 오래 전에 문학 강좌가 끝나고 수련회를 갔을 때, 한 수강생이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죠?” 젊은 강사가 씩 웃으며 “꼴리는 대로 쓰세요.”라고 했다.

그 강사는 ‘네 마음 가는 대로 쓰라’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 쌍스럽게 들릴 수 있는 성적 비유로 말했을 것이다.

그 말을 신화학자 조셉 캠벨 같으면 “너의 희열을 따르라!”고 말했을 것이다. 희열은 쾌락과는 다르다. 희열은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기쁨이다. 쾌락은 밖에서 주어지는 자극에서 온다.

따라서 쾌락은 반드시 반대급부가 뒤따라온다. 술을 많이 마신 후에는 숙취가 그 쾌락만큼 크게 온다. 하지만 희열은 안에서 올라오기에 그렇지 않다. 관세음보살의 은은한 천년의 미소가 희열의 원형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관세음보살이 마냥 즐겁기만 했을까? 천개의 손으로 모든 중생들의 아픔을 보듬으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지만 관세음보살은 그 고통들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극복해나갔기에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영원히 지속되는 희열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루소는 인간에게는 ‘사사로운 이익만을 생각하는 특수 의지의 총화’인 ‘전체 의지’를 넘어서는 ‘공통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일반 의지’가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인간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일반 의지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인간이 자신의 이익에 근거하는 특수 의지를 넘어 인간의 보편성인 일반 의지에 이를 수 있을까?

인간은 ‘소우주’라고 한다. 한 인간에게는 한 우주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믿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믿어야 한다. 얕은 마음에는 자신의 욕심이 그득할 수 있지만 깊은 마음속으로 들어가면 우주의 마음과 만날 수 있는 ‘영혼’이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시대에 윤동주 시인이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자신의 ‘백골’도 따라와 함께 방에 눕는다.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짓는다

어둠을 짓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윤동주, 《또 다른 고향》 부분

‘백골’은 윤동주 시인의 뼈대 있는 가문 ‘파평 윤씨’를 말할 것이다. 명문가 출신이 명문대인 연희전문학교를 다녔으니 가문에서 얼마나 큰 기대를 걸었겠는가?

하지만 큰 기대라는 게 일제의 노예가 되라는 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시인의 혼은 운다. 결국 그는 ‘쫓기우는 사람처럼’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으로 간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윤동주 시인은 27년의 짧은 생을 마쳤다. 그는 그의 희열을 따라갔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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