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평화네트워크 자문위원)


F-15K, 그 이후

월드컵으로 온 나라의 시선이 축구 경기장으로 쏠려있는 사이에 국방부는 온갖 퇴행적인 정책을 마구잡이로 발표하고 있다. 6월 7일자 <조선일보>에는 국방부가 주요 무기체계 도입에서 국제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따르면 국방 고위 관계자가 "최근 공군 차기 전투기(F-X) 사업과 해군 차기 구축함(KDX-Ⅲ) 사업에서 나타났듯 공개경쟁입찰 과정에서 외교적 갈등과 함께 업체들의 폭로·비방전으로 심한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며 "한·미 관계와 무기체계의 상호운용성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미국제로 결정될 수밖에 없는 주력 전투기 등 주요 무기체계는 수의계약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포복절도할 일이다. 이 기사 내용만 보면 이번에 전투기 도입은 미국제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을 괜시리 국제 경쟁입찰 방식을 취하는 바람에 국가 망신만 당했다는 말 아닌가. 이 때문에 앞으로는 미국 군수산업체에 무한정의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겠다는 정책을 적극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국방부가 갑자기 왜 이렇게 솔직해졌는지 필자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간 유례없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F-X 기종을 결정했다고 하던 그 궤변에 비교해 볼 때, 이제부터는 번거로운 경쟁 없이 아예 미국제 무기를 사겠다고 선언하는 지금 태도가 훨씬 솔직하다. 필자는 국방부의 이런 태도가 이번 F-X에서 미국제가 이미 내정되었었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면 주요 무기의 경우 한미관계와 무기체계 상호운용성을 고려해 미국제로 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따져보자. 이번 F-15K 전투기의 경우를 보면 국방부 획득정책관 김종천 장군은 "F-15K는 한국에 비축해 놓은 미군의 전쟁탄약 15종을 쓸 수 있는데 반해, 라팔의 경우는 5종 밖에 안된다"며 미국제 전투기를 두둔하고 있다. 이 논리가 바로 상호운용성 논리의 핵심이다. 그러면서도 그 탄약 15종이 무엇인지는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왜냐? 공개하면 할수록 국방부 입장만 궁색해지기 때문이다.
  
그 실체는 이렇다. 라팔 전투기에 비해 F-15K가 더 많은 종류의 탄약을 쓴다는 것은 대부분 전투기의 기총탄약의 경우 그렇다. 국방부가 F-X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차기 전투기의 핵심 임무는 `제공권 장악`과 `핵심목표 타격`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때문에 차기 전투기는 3백km 사정거리 밖에서도 사용이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을 탑재한 전투기다. 이런 전투기를 두고 기총사격이나 할 수 있는 재래식 탄약을 핑계로 대는 것은 자동차를 살 때 엔진이나 주행거리와 같은 핵심성능이 아니라 백밀러와 같은 부수적 성능을 보고 사겠다는 발상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논리를 앞세워 한미간 무기체계의 `상호운용성`이 중요하다는 근거로 삼는다.
  
여기에는 상당히 중요한 음모가 있다. 한국의 무기는 미국의 구형탄약을 계속 소비해줄 수 있는 무기여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의도에서 육군의 다연장로켙(MLRS)가 미국에서 직도입 되었는데, 그 결과 미국은 앞으로 10년간 9억불 어치의 탄약을 한국에 팔아먹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육군은 한국형 전차 포를 105mm에서 120mm로 교체하는데 1조원 이상을 쏟아 붓고 있는데, 그 의도는 두말할 것도 없이 미국에 남아도는 120mm 잉여포탄을 처분하기 위해서다. 이런 식으로 국민의 혈세를 한번에 몇 조원씩 마구 미국 군수산업체에 들이 붓고 있다. 예컨대 인쇄용 프린터를 팔아먹으니까 비싼 값의 잉크를 매년 더 팔아먹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도입하더라도 효과 발휘 요원

차기 구축함(KDX-Ⅲ)의 경우를 보면 더욱 가관이다. 미국이 미사일방어계획(MD)의 핵심무기체계(SM-2) 개발에 실패하자 미국제 요격미사일 개발계획에 맞춰 이제는 구축함 전투체계의 요구성능(ROC)까지 수정해서라도 기어이 미국제를 사겠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미국제 요격미사일의 성능에 맞춰 무기도입의 기본 골격을 짜맞춘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면서도 국제 입찰경쟁의 방식으로 사업을 관리하여 애꿎은 네덜란드 회사를 끌여들여 또다시 망신살이 도지고 있다. 그것도 하필이면 월드컵 기간 중에 국방부는 국제망신을 자초하고 있으니, 월드컵으로 일으켜 세운 국가 위상을 국방부가 뒤에서 까먹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갑자기 이런 식으로 미국제 해상 전투체계를 도입하면 해군의 전력증강 효과는 얼마나 될까. 8천톤급의 이지스 구축함을 도입하기 전까지 한국 해군의 해상 정보능력은 옛날에 안기부가 첩보 활동용으로 쓰다가 버린 정보함 1척이 유일한 자산이었다. 육군이 전력증강을 독식하다 보니까 해상에서의 조기경보체제나 정보수집 및 정보 전파체계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해안경계에서 실패하면 해군은 뭇매를 맞았다.

그래서 이제는 해군에 잠수함도 사주고 구축함도 새로 건조해 주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런 장비를 해군에 사준다하여도 지상 기지와 통신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지스 구축함의 경우는 인공위성이 없으면 작전 자체가 안되는 전력이다. 그리고 현재 해군의 통신 수준은 이지스함과 같은 대용량의 정보를 초고속으로 다루는데 적합치도 않다. 결국 도입한다 하여도 새로운 지휘통신 체계를 갖추는데 막대한 국가예산을 추가로 쏟아 붓지 않는 한 당분간 효과를 100% 발휘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마구 미국 무기 도입을 한다 하더라도 정보와 과학의 인프라가 갖춰지지 못한 해군 전력을 무엇으로 유지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이 구축함에는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가 준비되어야 하고 가장 복잡한 컴퓨터가 탑재될 예정인데, 이를 다룰 해군의 인력은 준비되어 있는가. 이렇게 비싼 전투체계를 도입하는데 국방예산이 탕진되니까 정작 해군 장교들은 아직도 재래식 변소가 있는 관사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차라리 무기도입을 늦추고 군의 정보·과학의 수준을 높이며 직업군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편이 국가안보가 더 충실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이런 무기체계가 필요하다면 좀 더디더라도 국산화해서 가면 왜 안되는가. 꼭 수의계약을 해서라도 미국제 무기를 사야한다는 이런 논리가 국방정책의 어느 문서에 나오는 말인가. 근거를 제시하라.
  
그러므로 이제껏 국방부가 정권말기에 무모하게 무기도입으로 치닫는 것에 대해 우리가 국가안보의 가치를 폄하하기 때문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국가안보를 걱정하기 때문에 반대해 온 것이다. 이 점에서는 보수건, 진보건 크게 의견이 다르지 않다. 그나마도 경쟁마저 없애고 수의계약으로 무기를 도입하겠다고 보는 국방부에 국민 혈세 18조원의 예산을 주겠다고 하는 정부다. 저 많은 예산의 태반이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면 또 다른 안보위협이 부메랑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이 미친 짓을 우리는 왜 반복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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