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기(동국대 교수/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


국가안보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또 열악한 여건에서도 묵묵히 맡은 직무에 충실하고 있는 군인들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니다. 우리 국민들의 군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그렇지만 군이 성역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차세대전투기사업의 결정과정과 주적론 논쟁을 지켜보면서, 우리 군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몇년전, 99년도 국방예산을 분석하면서 느꼈던 실망감이 새삼 떠오른다. 당시 이른바 IMF체제로 많은 국민들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온 나라가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군의 개혁과 구조조정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육군 중장급 7명과 소장급 17명이 국방부가 정해놓은 정원조차 초과하고 있었고 대령급은 76명이나 정원을 넘어서 있었는데도, 줄어들기는커녕 영관급 장교 137명과 위관급 장교 139명의 증원이 예산에 반영되어 있었다. 병력 1만명당 장군 수를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7명으로 미국의 5명, 프랑스의 4명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으며, 전체장교에서 장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미국의 2배에 달한다.
 
우리 군은 변해야 한다. 미래 지향적인 국가안보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또 군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도 지금의 군으로는 안 된다. 국방부는 20-30년 후의 미래안보환경에 대비한 국방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국방개혁을 단행한다는 목표아래, 1998년 4월 15일 장관 직속기구로 [국방개혁추진위원회]를 설치하여 `국방개혁 5개년 계획`(1998년-2003년)을 수립하고, 군 구조개혁을 단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당시의 발표로는, 2015년을 목표년도로 육군을 35만명으로 줄이는 것을 비롯해 군병력을 40만-50만명 수준으로 감축하고, 1군과 3군을 지상작전사령부로 통합하고, 2군도 일부 군단 및 부대를 통폐합하여 후방작전사령부로 개편한다는 것이다. 또 정원을 초과하고 있는 장군 수를 2003년까지 해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병력을 감축하고 군조직을 개편하겠다는 약속은 사실상 지켜지지 않았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최소한 년간 1만명씩 병력을 감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군병력은 늘어났으며, 육군항공사를 육군항공작전사령부로 확대 개편했다.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군대조직에 대한 개편 약속은 거의 이행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군의 국방목표를 재설정하고, 군 구조에 대한 과감한 개편을 추진하고, 군의 인적쇄신을 단행해야 한다.
 
우리 군의 국방목표는 시대를 거슬러 자꾸 뒤로만 가고 있다. 냉전시대에도 쓰지 않았던 "주적인 북한" 표현을 현 시점에서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이고 억지이다. 우리 국방정책의 미래와 군사전략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북한 주적론은 빨리 폐기해야 한다. 북한 주적 개념의 변경은 남북관계의 차원을 떠나 한국의 미래지향적인 안보정책의 수립과 군의 개편을 위해서도 시급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안보정책과 군 구조는 통일시대에 대비하여, 북한을 "주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잠재적"을 대상으로 해서 재정립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북한 주적론 아래에서는 북한을 대상으로 한 지상전력 위주의 군 구조와 군 전력을 지닐 수밖에 없다. 소수정예과학군으로 개편되어야 하며, 그것은 "주적론"의 "잠재적론`으로의 변경을 조건으로 한다.
 
또한 국방부내의 미국을 맹종하는 친미세력들을 청산하지 않고는 한반도 군사문제의 해결은 물론 자주국방과 한국군의 미래지향적 개혁이 불가능하다. 미국과 밀착하여 미국을 대변하고 이익을 보호해주면서 그 대가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는 인물들이 국방부내에 포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말을 맞고 미국에 부시가 등장하면서, 이 같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만 해도, 한미연례안보회의(SCM)에서 주한미군방위비 분담금 10% 인상 합의, 용산미군기지내 아파트건립문제에 대한 국방부의 저자세, 차세대전투기사업 기종선정과정에서 미국 F-15 선정, 재래식 군축협상의 `역할분담론` 포기 등이다. 따라서 국방부내에 미국과 밀착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들, 특히 정책 분야와 무기획득 분야의 책임자들을 문책하고 인적쇄신을 기해야 한다.  
 
분명 군은 변해야 한다. 군 자신을 위해서도 변해야 한다. 자기 살을 도려내는 아픔과 고통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이대로는 정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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