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군사전문가)


북한 위협은 고려할 필요 없다?

중요한 비밀 하나를 공개하겠다. 1990년 10월, 한국형 전투기사업(KFP)에서 국방부 이상훈 장관은 미국의 맥도널 더글러스사의 F-18로 기종을 결정하고 노태우 대통령에게 재가를 위해 청와대로 들어갔다.

국방부가 F-18을 선정한 이유는 당시 수량 미상의 MIG-29가 북한에 도입되고 있다는 첩보에 따라 비록 가격이 비싸더라도 성능이 우수한 F-18을 선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때 만일 노태우 대통령이 F-18을 재가했더라면 지금 F-15K를 도입하는 F-X사업은 필요치 않은 사업이 될 뻔했다. 즉, 미국의 한국 전투기 시장 하나가 그 때 날라갈 뻔했다는 것이다.
  
이 때 노태우 대통령은 국방부에 말하기를 "북한의 신형전투기 위협은 내가 남북 화해와 북방정책을 통해 감소시켰기 때문에 고려할 필요가 없다. 가격조건에 맞는 전투기를 선정하라"고 재검토 지시를 한다. 이 때문에 국방부와 국방연구원은 또다시 재검토를 하였으나 결론은 역시 F-18이었다.

그래서 그해 말 다시 청와대에 F-18을 건의하는 보고서를 들고 국방장관이 청와대에 들어가니까 이번에도 노 대통령은 전에 말한 것과 똑같은 말을 하며 재검토 지시를 했다. 뒤이어 F-18을 고집한 이상훈 국방장관이 경질되고 정용후 공군 참모총장은 기무사에 강제 입원조치된다. 눈엣가시 같은 장관, 공군 참모총장을 제거시키고 나자 이번에는 F-18을 건의한 국방연구원의 평가결과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국방연구원의 효과분석에서 F-18이 우수하게 나오자 청와대 김종휘 외교안보수석과 김희상 청와대 국방비서관이 직접 국방연구원에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국방연구원 무기체계센터 소장은 지금 국방연구원장으로 부임한 황동준 씨다. 결국 황동준 씨는 당초 국방 연구원이 제시한 전투기 성능평가를 번복하여 `F-18이나 F-16은 효과가 비슷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하기에 이른다.

이런 과정을 거쳐 91년 3월 F-16으로 기종이 변경된다. 물론 이 배후에는 미국의 씽크탱크이며 한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랜드 연구소를 앞세운 펜타곤의 음모가 숨어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상의 사실은 율곡비리 특감을 통해 감사원이 조사한 사항이며 93년 9월 마무리된 2급 비밀문서 `한국형전투기사업 특감 결과보고`에 수록된 내용이다. 93년 전투기 기종변경을 조사한 감사원의 원장은 다름 아닌 현재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다. F-16으로의 기종변경이 부당하게 이루어졌다는 내막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진대, 최근 한나라당이 F-X사업에 대해 깊은 침묵을 보여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육군 출신 국방부가 결정권 독점

KFP사업에서 `공군의 반란`에 놀란 노태우 정권은 이전부터 마련 중이었던 군구조개편작업, 일명 `818계획` 추진에 박차를 가한다. `818계획`은 해군과 공군의 존재 자체를 말살시키고 육군 중심의 통합군 체제를 지향한 혁명적인 군구조 재편작업이었다. 이 계획은 하나회 중심의 전군에 대한 지배체제의 완성, 곧 장기집권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인 동시에 모든 의사결정에서 육군 독점체제를 완성시키려는 의도에서 추진되었다. `818계획`의 핵심인 국방 참모총장제도는 전군에 대한 전일적 지배체제의 상징이었다.
  
이 음모에 대해 해군과 공군이 반대하였음은 물론이려니와 당시 야당인 평민당, 통일민주당, 공화당이 모두 반대하였다. 이 때문에 통합군을 완성하려는 노 정권의 시도는 불발로 끝나게 된다. 그러나 이를 변형하여 각군의 고유성과 권한을 현저히 제한하고 육군 중심의 상부권한을 확대하는 조치가 뒤따르게 된다. 이 조치를 담은 `국군조직법 개정안`은 1990년, 정치권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게 되고 결국 그해  3당 합당으로 탄생한 집권 민자당의 숫적 우위를 앞세운 횡포로 날치기로 통과된다. 이렇게 해서 육군 중심의 국방지배체제는 완성되게 된다.
  
그후 마련된 국방체제는 각군의 무기 시험평가, 기종평가, 계약기능을 모조리 박탈하고 이를 상무에 새로 창설된 합동참모본부와 조달본부 기능으로 통합하게 된다. 그리고 국방부의 무기 획득부서가 대폭 강화된다. 한마디로 각군본부는 국방부의 `시혜`와 `은전`을 바라는 위치로 전락되었으며, 일체의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보고`와 `건의`차원에 머무르는 초라한 존재로 전락되었다.
  
현재 국방부와 합참의 인적구성을 한번 보자. 국방부에는 현역 장성직위가 15개가 있는데 이중 14명이 육군이다. 육군이 아닌 장성은 공군 출신 직위인 사업관리관이 유일하다. 합동참모본부에는 총 29개의 장성직위가 있는데, 이중 육군 출신 합참의장을 제외하고 4개 주요 본부장이 있는데 그중 정보본부장이 육군, 작전본부장이 육군, 전략기획본부장이 육군, 인사군수본부장이 해군이다. 합참의 핵심기능인 정보, 전략, 작전이 100% 육군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각군에서 건의한 무기소요와 무기의 요구성능(ROC)을 결정짓는 의사 결심권자가 모두 육군인 셈이다.

그 뿐인가. 무기 도입과 관련된 국방부 산하 전문기관들이 있다. 무기체계 비용 대 효과분석은 국방연구원, 군사 과학기술에 대한 평가는 국방과학연구소, 무기에 대한 품질검사 및 관리는 국방 품질관리소, 무기도입 계약은 국방 조달본부다. 이번 F-X사업에서 핵심적인 평가기관이다. 이 4개 기관 기관장이 모두 육군이다. 이번 F-X사업에서 국방부가 공군이 대거 참여하고 공군의 의견이 반영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구인가 알 수 있다.
  
공군이 참여했다는 의미를 굳이 해석하자면 이러하다. `818계획` 이후 대부분의 결정권을 국방부와 합참이 가져가서 육군 출신으로 보직자를 전부 채워놓았는데, 문제는 이들이 해.공군 무기체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다보니까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결정권만 자기들이 행사하고 실제 업무는 각군본부에 지시하여 각군으로 하여금 수행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시험평가 기능을 합참에서 가져왔으나 합참의 육군 출신들이 비행기를 몰 줄 알아야 시험평가를 할 것 아닌가. 이래서 이번 F-X에서도 실제 시험평가는 공군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방부가 결정하는데 참고 자료일 뿐이지 결정적 영향을 주는 자료는 될 수 없는 것이다. 공군이 의견을 반영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합참과 국방부가 정해 놓은 범위 안에서의 일이다. 기차가 자유로운 것은 레일 위에서만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절대권력 창출

이러한 육군 출신 인사편중에 대해 지적하면 국방부가 항상 내뱉는 변명이 있다. 전문성을 고려했기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그러면 전문성이 그리 필요치 않은 국방부 산하기관의 인사실태는 어떠한지 보라. 국방부 직할기관/부대는 총 23개인데 이중 개방형 직위로 일반인이 임명되는 국군 홍보원장을 제외한 22개 직위 중 육군 출신이 임명된 직위는 총20개(91%), 공군 1개, 해병대 1개다. 우리는 어째서 국방대학교 총장은 육군만이 되어야 하는지,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왜 육군만 해야 하는지 납득할만한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국방부가 무기도입의 전권을 100% 장악하기 위해 1998년 창설한 국방부 획득실은 이제껏 국방 무기획득에 있어 최소한의 견제와 감시장치마저도 완전히 파괴한 절대권력체이며, 상급자의 의지만으로 무기도입 정책이 좌지우지하게 만든 장치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합참에 있던 시험평가 기능까지도 국방부로 통합하고, 획득실 산하에 `분석평가과`를 설치하여 자신이 만든 정책을 자신이 평가하도록 하는 희대의 독재권력을 만들었다. 마치 국내 모든 언론이 청와대 소속이 되도록 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 획득실의 업무체계를 분석해보면, 기획-계획-예산-평가 업무가 모두가 국방부 획득실장의 권한 안으로 종속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획득실 설치는 무기도입의 투명성을 극도로 저해하고 대통령과 장관 눈치를 보며 입맛대로 정책을 변경할 수 있는 일종의 `마름`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획득실장이 마름이라면 각군본부는 소작인에 해당된다. 이러한 권한 통합이 초래한 부작용은 초대 획득실장인 문일섭 씨의 경우 그대로 드러난다.
  
1998년 국정감사를 앞 둔 어느날, 지금의 김동신 국방장관과 같이 민주당 안보위원회 출신인 문일섭 획득실장은 집무실로 찾아간 필자에게 획득실장이 얼마나 막강한 권한을 갖고있는지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내가 결심만 하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주변에서 들어보니 그 말은 내게만 한 것이 아니라 알만한 사람은 다 한번씩 들은 말이었다.

그렇게 해서 생긴 오만, 누구도 자신을 견제할 수 없다는 포만감은 곧 비리로 이어졌다. 획득실장에 재직하는 동안 군납업체로부터 청탁과 뇌물을 받아오다가 이 사실을 눈치 챈 운전병이 문일섭 씨가 짧은 기간의 차관 직무를 수행하고 난 직후 아파트 베란다에 놓여진 사과상자의 현금을 절취한 것이다. 이 운전병은 군 검찰에 연행되어 조사받을 시 `문일섭 씨가 절대 경찰에 절도를 신고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필자는 처음부터 뇌물을 받을 목적으로 문일섭 씨가 국방부에 들어간 것은 아니라고 본다. 획득실장이라는 자리 자체가 문일섭 씨를 부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획득실은 이번 F-X사업에서도 드러났듯이 거의 모든 무기도입 정책을 뒤흔든 핵심요직이며, 대통령과 장관 의지대로 정책이 움직이도록 하는 중요한 장치다. 물론 이 획득실장 보직은 절대 해군이나 공군이 맡을 리 없고 육군이 독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애초 이 획득실이 설치될 때, 한 호텔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경기대학교의 한 교수는 `이 획득실이야 말로 지나친 권한 집중으로 인해 앞으로 엄청난 비리와 청탁의 압력과 유혹에 시달릴 것`이라고 경고하던 사실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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