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 부검감정서에 들어 있는 의혹의 흑백 사진.
[자료 - 통일뉴스]

87년 KAL 858기 사건과 관련돼 알 수 없는 한 장의 사진이 공개돼 의혹을 낳고 있다.

지난 1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가 인터넷 신문 통일뉴스(www.tongilnews.com)의 행정정보공개 신청을 받아들여 공개한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의뢰한 하찌야 신이치(본명 김승일, 69세)의 부검감정서 (87.12.28)`에는 신원과 출처, 그리고 사유를 알 수 없는 한 장의 사진이 첨부돼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김현희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김승일은 87년 11월 29일 KAL 858기 폭파사건의 주범으로 87년 12월 1일 바레인 출입국관리소에서 담배필터에 감춰진 청산이 든 독약앰플을 깨물어 자살했다고 발표되었고, 김승일의 사체는 공범 김현희와 함께 12월 15일 한국에 실려왔다.

▶독물 검사 감정서. 청산염류가 여러 곳에서 검출
되었다고 감정했다. [자료 - 통일뉴스]

국과수가 공개한 김승일의 부검감정서에 따르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1과장 황적준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부교수 이정빈은 87년 12월 17일 서울지방검찰청 김원치 검사 및 이상형 검사로부터 하찌야 신이찌(신원 미확인 상태임)의 부검을 의뢰받고, 1987년 12월 19일 서울 지방검찰청 김원치 검사 및 이상형 검사의 입회하에 부검을 실시>했다고 한다.

부검결과 사망원인은 <청산염(cyanide, CN-)에 의한 중독사이고 바레인 출입국관리소 공안사무실에서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변사자 자신이 말보로 담배 필터에 은닉한 독약을 먹었다 함으로 사망의 종류는 자살이다>고 밝히고 있다.

같은 문서의 독물 검사 결과를 보면 혈액에 3.68㎎/l, 뇌척수액에 6.21㎎/l, 폐 조직에 5.07ppm, 뇌 조직에 4.20ppm 등의 청산염류가 검출되었다는 결과가 첨부되어 있다.

이번에 국과수가 공개한 부검감정서(문서번호 법의일 23112-10240)는 총 91쪽(일련번호 48-138) 분량이며 치과감정서(2차), 사진 한 장(일련번호 131쪽), 부검감정 : 국문(사진 22장) 및 영문(사진 12장) 각 1부, 치과감정서(1차), 독극물 검사 결과, 혈액형 검사 결과, 손톱의 화약류 검사 결과, 담패 휠타(1매), 유리조각(2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눈에 띤 것은 역시 131쪽의 사진 한 장.
문제의 사진은 분명히 김승일의 부검감정서 일괄 문서중의 한 쪽으로 첨부되어 있었고 국과수 관계자들도 이번 부검감정서 공개 이전부터 이 사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시인했다.
즉 131쪽의 문제의 사진은 김승일과 연관됐거나, 아마도 김승일 본인의 사진임에 틀림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승일의 부검감정서에 남의 사진을 실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131쪽 사진. 사진 번호도 설명도 없으며
국과수 사진부착용지에 호치케스로 부착돼 있다.
우측 상단에 행정정보공개 청구에 따른 원본의 사본
임을 확인하는 도장이 찍혀있다. [자료 - 통일뉴스]

만일 이 사진이 김승일의 사진이라면 그 다음 문제는 69세, 우리나라 나이로 70세에 사망한 북한 공작원 김승일의 훨씬 젊은 사진(대체로 50대 이하로 추정)이 어떻게 안기부가 의뢰하고 국과수가 작성한 공문서에 들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더라도 70세에 사체로 인도된 당시 신원 미상의 북한 공작원을 부검하는데 그의 젊은 사진이 참고자료로 첨부되어 있다면 그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사진이라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예를 들어 그의 여권 사진이라든지 그의 유품 중의 한 점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KAL 858기 사건을 추적해온 현준희(49, 전 감사원 직원)씨는 "여권 사진도 늙은 모습이며, 이미 공개됐으나 이 사진과 다르고 소지품 목록 역시 공개됐으나 사진은 없었다"고 확인해 주었다. 즉 김승일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사진일 것이라는 상식적 판단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부검 사진 3과 4. 의문의 사진과는 달리 사진 번호와 설명이 있으며
감정서에도 인용되고 있다. 원본은 칼라지만 사본은 흑백이다.
위 사진처럼 김승일은 70 노인이다. [자료 - 통일뉴스]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도 의혹을 속시원히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당시 부검감정서를 직접 작성한 황적준(고려대 법의학과) 교수는 그런 사진을 본적이 없다고 전화 통화 및 직접 면담에서 거듭 밝혔으며, 만일 생존시 사진이 첨부되어 있다면 "안기부에서 치아감정시 이빨이 조야하고 해서 북한에서 했던 걸로 추정돼서 확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며 "검찰에서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담임 검사인 김원치(대검찰청 형사부) 검사장 역시 전화 통화 및 직접 면담에서 문제의 사진을 본적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김 검사장은 "당시 그 사건 담당 직후 다른 부서로 옮겨서 끝마무리를 보지 못했고 아마 안기부 쪽에 알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당시 부검감정서를 작성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황적준 박사와 김원치 검사장도 이 사진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거듭 확인한 셈이다. 그렇다면 부검 담당의사와 담임 검사가 모르는 한 장의 사진이, 그것도 신원미상 북한 공작원의 훨씬 젊었을 때의 사진이 어떻게 부검감정서에 첨부될 수 있었을까?

더구나 이 사진만이 유일하게 부검감정서 전문에 걸쳐 단 한차례도 언급되지 않았고 사진 번호와 설명도 기재되지 않았다.

▶통일뉴스가 행정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해 최초로 공개한 김승일 부검감정서.
총 91쪽 분량이며 1987년 12월 28일자로 작성되었다. [자료 - 통일뉴스]

국과수 이원태 법의학부장은 "당시 사건 경위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지금은 없다"며 "질의를 해도 답변하기 어렵다"는 입장만을 밝혔다.

사건 발생 15년이 지났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대한항공 858 가족회`를 구성해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으며 천주교 인권위원회와 통일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 역시 `김현희 KAL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준)(www.kal858.or.kr)`를 구성해 활동중인 이 사건에 한 장의 사진이 의혹 하나를 더 보태고 있는 셈이다.

한편 `김현희 KAL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준)`는 지난 3월 21일 김현희 KAL기 사건 관련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에 대한 행정정보공개청구를 서울지방검찰청에 접수했으나 4월 22일자로 비공개 결정을 통보받은 바 있다.

KAL 858기 사건의 주범 김승일의 부검감정서가 통일뉴스에 의해 최초로 입수, 공개되고 문제의 사진에 대한 의혹이 풀리지 않음에 따라 앞으로 이를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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