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화해협의회의 초청에 의하여 남조선의 국회의원이며 <한국미래련합> 창당준비위원장인 박근혜 녀사가 5월 11일부터 평양을 방문하게 된다.`  3박4일간의 방북일정을 마치고 14일 귀환한 박근혜 의원이 방북하기 며칠전 북한의 방송들이 보도한 전문이다. 북한은 용어를 정확히 쓰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 짧은 보도문 자체로 박근혜 `녀사`의 예우와 방북 성과는 이미 예견돼 있었다.

◆ 먼저, 북한의 보도매체들이 `최고위급`도 `특사`도 아닌 박 의원의 방북예정 사실을 미리 알린 점이다.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박 의원의 방북을 널리 알려 그 급에 준해 대우하겠다는 뜻이다. 둘째, 박 씨의 지위를 `국회의원`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칭했다. 원래 박 의원은 북한 민화협의 초청에 따라 `유럽-코리아재단` 이사 자격으로 방북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민간인`이 아닌 `정치인` 박근혜를 만나서 정치적 문제, 즉 통일문제를 다루겠다는 의지이다. 셋째, 박 의원에게 `녀사`라는 용어를 썼다. 북한은 루이제 린저, 문명자 씨 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여류들에게만 `녀사`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박 의원이 공식적인 `최고위급`도 `특사`도 아니기에 `녀사`로서 특별 예우하겠다는 것이다.

◆ 아니나 다를까, 박근혜 `녀사`는 특별 대우와 이례적인 환대를 받았다. 첫날 11일 환영만찬에 김용순, 김영대, 림동옥, 김완수, 안경호 등 북측 대남부문 실세들이 대거 참석했다. 12일에는 김용순과 회담했고, 이어 각계층 여성들과의 상봉을 통해 여성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13일 저녁에는 김정일 위원장과의 1시간 단독 면담에 이어 2시간 동안 만찬을 했다. 이때 나눈 이산가족 정례면회소 설치, 서울답방, 금강산댐 남북공동조사단 구성, 6.25전쟁 당시 행방불명된 국군의 생사확인, 남북한 철도연결을 위해 유럽국가들을 포함한 컨소시엄 구성, 9월초 북한 축구국가대표단 초청 문제 등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합의했다. 그리고 끝으로 판문점을 통해 육로로 귀환했다...

◆ 그런데 환대는 환대고 성과는 성과다. 그보다 이번 박 의원 방북의 최대 포인트는 무엇인가? 당연히 `통일문제`와 관련된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7.4 남북공동성명의 재확인, 보다 정확하게는 7.4 남북공동성명과 6.15 남북공동선언과의 연관성이었다. 박근혜 의원과 김정일 위원장의 부친인 고 박정희 대통령과 고 김일성 주석은 한 시대의 경쟁자이자 반대자였다. 동시에 두 부친은 1972년에 7.4 남북공동성명에 합의한 바 있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현 정부와 2000년에 6.15 남북공동선언에 합의했다.

◆ 그렇다면 박근혜 의원은 아버지의 유산인 7.4성명을 환기시키고 김 위원장을 만나 7.4성명과 6.15선언을 매개할 수 있는 `핵심 고리`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핵심 고리` 역할은 이미 박 의원이 방북직전 공항에서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합의했던 7.4 남북공동성명의 정신이 한반도에서 완결되도록 하는 것이 동시대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함으로서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 아니나 다를까, 박근혜 `녀사`는 북한의 환대에 보답하듯 11일 만찬연설에서 "역사적인 7.4공동성명에서 조국통일의 원칙이 세워"졌고 "6.15공동선언이 발표되어 자기 일행이 이번에 평양을 방문하게 된 것"이라면서 "남과 북이 힘을 합쳐 7.4공동성명과 6.15공동선언을 이행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공동발전을 이룩하는데 이바지하자고 강조하였다." 또한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는 "7.4 남북공동성명 얘기를 했다. 6.15 공동선언도 7.4 공동성명에서 뜻이 뿌려진 것이다. 7.4 공동성명 채택 당시 씨앗이 뿌려졌지만 아직 완성이 안됐는데 우리 시대에 결실을 보아 평화통일을 위해 같이 힘을 합쳐 노력하자는 얘기를 했다. (내가) `약속하셨죠`라고 하자 김 위원장이 `약속합니다`라고 말했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 한나라당 시절 현 정부의 통일정책과 대북지원에 대해 투명성과 상호주의를 주장하면서 6.15선언에 반대하는 듯한 입장을 취했던 박근혜 의원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인색할 필요가 없다. 또한 국내에서 협소해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기 위한 이해타산의 산물로 굳이 볼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박 의원이 남북이 합의했던 7.4성명의 의미를 재확인시키고 그리고 그 7.4성명과 6.15선언과의 관계성을 보여주고자 한 점이다. 이것만으로도 박 의원은 통일의 길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이 메시지는 6.15선언에 비판적인 보수주의자들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을 것이다. 박 의원의 방북과 그 성과를 `정략적`인 것으로 봐선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막(?) 통일의 길에 들어선 박근혜 `녀사`의 다음 역할을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