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초 임동원 특사의 평양 방문으로 인해 어렵사리 재개된 남북대화에 최근 이상 기류
가 흐르고 있다. 하나는 6일 북한이 최성홍 외교통상부 장관의 지난달 23일 방미시 언급내
용 보도를 문제삼아 7일 개최 예정이던 남북경제협력추진위(경추위) 제2차 회의를 거부한다
고 발표한 것이다. 또 하나는 6일 북한 국토환경보호성 대변인의 금강산댐 문제와 관련한
`사실을 완전히 왜곡한 날조극` 담화 발표에 이어 7일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남한에서 금강산
댐 붕괴론이 불거진 것은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지 않는 외부세력의 개입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먼저,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달 방미중인 최성홍 장관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공책
이 먹혀들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한 바 있다. 이 보도가 물의를 빚자 최 장관은 북한을
상대할 때 모든 문제를 한미양국이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큰 채찍을
들고 있더라도 부드럽게 말하라`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이야기를 인용한 것인데 `부드럽게 말
하라`는 부분이 생략된 채 `큰 채찍`만 부각됨으로써 `대화를 강조하는 발언의 취지가 왜곡됐
다`고 해명했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북남대화 재개에 빗장을 꽂는 행위를 저질렀다`며 남측
당국이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장관 발언의 진의와 해명에 관계없이 그 경솔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교의 책임자
가 다른데도 아닌 특히 미국과 같은데서 북한에 대해 얘기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
다. 북한에 대해 굳이 호의적으로 말할 필요도 없지만 괜히 오해 살 말을 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북한은 현재 미국과의 회담을 앞두고 체제에 대한 험담을 더이상 하지 말 것을 미국
측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최 장관의 발언은 미국에 대한 외교적 예의와 수사로서는 적합
할지 모르지만 자존심이 센 북한의 입장에서는 참기 어려운 내용일 수 있다. 북한의 심기를
건드려선 안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북한의 입장을 십분 이해해 주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얘기
다.
또한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7일 남측 일부 언론이 `미국 위성이 촬영한 것을 입수하였다고
하면서 우리의 안변청년발전소 언제(금강산댐)가 붕괴될 수 있다는 여론을 내돌리고 있다`며
`남이 준 위성 촬영 자료`를 근거로 붕괴 위험을 거론하는 것은 `분명 외세가 끼어들어 있고
그들의 조종하에서 불순한 목적을 추구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금강산댐 붕괴론`과 관련해 이토록 강력히 반발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된다. 하
나는 미국이 건네준, 군사첩보위성이 찍은 금강산댐 사진을 남한이 공개한 것이다. 원래 군
사첩보자료는 남에게 쉽게 주지도 않고 또 쉽게 공개하지도 않는 법이다. 제공한다는 것은
`공조`한다는 것이고 공개한다는 것은 무슨 `다른 뜻`이 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다른 하
나는 금강산댐은 북한군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금강산댐과 발전소 건설과정에
서 보여 준 북한군의 투혼을 `혁명적 군인정신`이라 하며 이를 `선군시대의 시대정신`으로 칭
송하고 있다. 그런데 금강산댐에 하자가 있다면 북한군의 위신은 물론 선군정치에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과연 금강산댐에 어떤 하자가 있는지조차
불확실한데도 `남조선 당국은 그 무슨 긴급조치요 조사단 파견이요, 평화의 댐에 대한 증축
방안 검토요 하고 떠들고` 있다는 점이고, 또한 미국이 건네준 사진을 공개한 것도 `남이 준
위성촬영자료라는 거짓을 내들고 붕괴니 위험이니 하고 떠드는 것은 북남관계 개선을 달가
워하지 않는 외부세력의 조종에 따라 북남관계를 대결에로 돌려 세우려는` 오해를 살만하다
는 것이다. 모두가 남한 당국의 경솔함에서 나왔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7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경추위 제2차 회의가 북측의 거부로 무산된 것은 최 장
관의 방미 발언 및 금강산댐 문제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최
장관 발언 건이나 금강산댐 붕괴 건은 모두가 미국과 관계가 있다. 최 장관은 미국에서 미
국의 대북 강경책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또 금강산댐 위성 사진도 미국이 건네 줬
다. 이 정도면 `뭔가를 향해` 한미공조(외세공조)가 극에 다다른 혐의가 짙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특사회담에서 남북 양측의 `가장 큰 쟁점사항이 민족공조냐, 외세공조냐 양자택일하는
문제`였던 점을 상기한다면 북측이 이번 두 가지 사건을 받아들이는 정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어쨌든 경추위가 성사되지 않으면 다른 교류도 무산될 공산이 크다.
임 특사의 방북으로 남북대화가 재개되었고 또 남북공조(민족공조)로 한반도에 대화의 훈풍
이 불었건만, 공교롭게도 4.5공동보도문이 하나하나 실행되기도 전에 미국의 개입과 남측 당
국의 경솔함으로 남북대화가 단절되고 한반도 정세가 다시 얼어붙는 것 같아 안타깝다. 특히 금강산댐 문제와 관련, 군사첩보위성 사진 제공과 같은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고 또 이를 섣부르게 공개한 남측 당국의 경솔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