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고는 5월8일자 디지탈 사상계(www.sasangge.com)와 동시 게재됩니다.(편집자 주)


김근식(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한동안 잠잠했던 주적개념이 다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인 2000년 12월 북한이 주적문제를 제기했다가 잠복되는가 싶더니 이번 4월 임동원 특사의 방북 이후 5월 하순 발간예정으로 있는 2002년도 국방백서에 주적개념의 변경논의가 다시 불거지면서 우리 사회에는 다시금 주적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주적논쟁이 폐지와 고수로 대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해

이번 논쟁의 계기가 북한의 현실적 위협을 도외시하거나 주적개념의 완전폐기를 요구한 것이 아니고 다만 남북관계의 진전과 군사적 신뢰구축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적표현을 재고하자는 것이었고 보면 지금 논쟁이 주적론 폐지와 주적론 고수라는 극단적 입장으로 대별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현실적 군사적 위협을 무시한 채 당장의 주적론 폐기를 주장하는 것이 지나치게 안이한 인식인 것처럼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개선을 감안한 주적표현의 변경논의마저도 안보의 무장해제라며 발끈하는 것 역시 지나치기는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주적논쟁이 생산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국방백서의 문구 하나를 고칠 것이냐 말 것이냐의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남북관계와 한반도 안보상황을 고려한 바람직한 대북관 및 적개념이 무엇인가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이에 입각해 볼 때 필자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시기에 국민적 합의를 거쳐 주적표현의 변경을 준비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논란이 되고 있는 국방백서의 주적표현 변천사를 보더라도 우리가 지금 상황에서 주적이라는 문구에 집착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93년까지 국방백서에 명시된 국방목표는 `적의 무력침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평화통일을 뒷받침하며 지역적인 안정과 평화에 기여한다`는 것이었고 이 표현이 1994년에는 대내외 안보환경의 변화를 반영하여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평화통일을 뒷받침하며 지역의 안정과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로 수정되었다.

즉 1994년 국방백서는 `적`으로 명시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외부`라는 보다 포괄적인 안보위협으로 확대했고 전쟁상황을 의미하는 `무력침공`이라는 표현 역시 전쟁이전의 긴장상황까지를 포함하는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 수정했던 것이다.

사실상 북한의 위협을 지칭하는 `적의 무력침공`이 북한 및 기타국가의 직간접적인 군사위협까지를 포괄하는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 바뀐 것은 분명 변화하는 안보환경의 전망 속에서 타당한 수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적` 개념의 포기라는 보수진영의 반발이 빗발치면서 1995년 국방백서는 다시금 국방목표의 해설란에 `주적인 북한`을 명시하게 되었고 이 표현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1995년 국방백서에서부터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

이처럼 1994년 국방백서는 21세기 안보환경의 변화를 감안하면서 동시에 북한의 현실적 위협을 배제하지 않는 적절한 수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보수 진영의 반발에 정치적으로 타협해버림으로써 1995년부터는 국방목표의 해설란에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하는 보다 퇴행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시기에 주적표현을 상황에 맞게 미래를 전망하면서 새롭게 수정하자는 것은 갑작스런 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1994년 국방백서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북한뿐만이 아닌 새롭게 도래하는 불안정한 안보환경을 감안할 때 굳이 북한을 주적으로 명기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국방목표 즉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이라는 표현으로도 북한의 현실적인 군사위협은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지금의 주적표현은 최근의 변화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보다는 장애하는 측면이 많다는 점에서도 재고가 바람직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성사와 남북화해시대의 개막이라는 최근의 정세변화를 감안할 때 보수진영의 정치적 반발의 산물인 주적표현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지장을 받는다면, 그리고 주적이라는 문구의 변경여부가 실제로 우리 국방정책에서 북한의 군사위협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국방백서의 주적표현을 새로운 표현으로 변경하는 것은 지금이라도 준비해야 할 일이지 거론조차 해서는 안될 금기사항이 아니다.

보수진영의 핵심반론인 안보의식의 해이는 결코 정부발간물의 문구 하나가 수정되거나 삭제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문구를 유지하면 안보의식이 충만하고 문구가 사라지면 안보의식이 무너진다는 논리야말로 우리의 대북 안보관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가 빚어낸 본말전도의 주장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북한의 군사위협은 지금 우리 한반도의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본질적 요소임에 분명하다. 휴전선을 경계로 수십만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안보현실이 바로 남북의 적대적 관계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서 敵性만으로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남과 북이 적이라는 규정과 함께 남과 북이 결국은 같이 살아야 할 同胞이자 통일의 주체라는 규정 역시 남북관계의 또 다른 본질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는 적성과 동포성의 이중성 가져

북한은 우리와 현실적으로 대치하는 적대적 관계이면서 동시에 동포애를 확대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발전시켜 가야 할 이중적 존재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대북정책이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하면서 동시에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을 병행하는 것도 바로 이같은 현실적 인식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하는 것은 현실적 적대관계를 지칭하는 것임에 분명하지만 이것이 다시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 남북관계의 평화로운 진전에 장애가 되는 것도 분명하다. 적성과 동포성의 이중성을 인식하면서 장차 적성의 약화와 동포성의 강화로 가는 것이 국방목표에도 명시된 평화통일의 올바른 길이라면 이제라도 주적표현의 합리적 변경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셋째,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탈냉전 이후 정부 공식발간물에 적개념을 명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 할만큼 드문 일이 되고 있다. 일본은 방위백서에서 `잠재적 위협`이라는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특정국가 전체를 지칭하는 적대표현을 삼가고 공식문건에서의 자극적 표현을 자제하고 있다.

미국도 구체적인 국가를 명시하지 않고 가상상태에서의 `적, 위협, 도전`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추세이고 러시아 역시 특정 대상국을 지칭하지 않고 `근본위협`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독일은 냉전시기에 `군사적 위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다가 통일 이후 불특정 위협이라는 의미로 `도전`(Herausforderung)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우리와 유사하게 실제적인 대치관계 혹은 적대관계에 놓여 있는 국가들도 공식문건에서 상대방을 적이나 주적으로 명시하는 것은 피하는 추세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우 인도는 주적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상대방을 `파키스탄 군`으로만 기술하고 있고 파키스탄도 인도를 단순히 `인접국`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에도 아랍국가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투철한 인식을 갖고 있지만 공식문건에서는 아랍국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외국의 경우도 주적개념은 거의 없어

대만은 국방의 주요임무로 `중공의 무력침공을 미연에 방지하고 전쟁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을 명시하고 있지만 중국을 구체적으로 적으로 규정하지는 않고 있으며 중국은 교전중인 상대를 敵으로, 교전가능성이 있는 상대를 가상적으로, 전쟁가능성이 낮거나 거의 없는 경쟁대상을 `對手`로 구분하면서 미국을 제1의 대수로, 일본을 제2의 대수로, 대만을 가상적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현재 주적 혹은 적으로 표현하는 국가는 없다.

탈냉전 이후 각국의 주적개념은 희석되었고 공식적인 적개념 표현을 자제하고 있으며 특히 대결상태에 있는 국가들도 상대방의 군사적 위협에는 주목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주적이나 적개념을 명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종합해 보건대, 1994년 이후 유지되고 있는 우리의 국방목표 즉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이라는 내용에 북한의 현실적 군사위협이 실질적으로 포함되고 있고, 주적이라는 문구의 존재여부가 안보의식을 지탱하는 유일한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며,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진전이라는 변화된 상황에서 주적표현이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의 측면이 존재하고 있고, 외국의 경우에도 특정국가를 주적으로 명시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든 구태의연한 일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시기 북한 주적론은 진지한 토론과 생산적 논쟁 그리고 국민적 합의를 거쳐 합리적인 변경을 고민해 봐야 할 때다. 안보는 글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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