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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째 마당, 미움의 쇠붙이를 녹일 우리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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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10.31  02: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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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둘이는 본래 하나였기 때문에 서로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주 사소한 일로 다투었습니다./ 마침내 서로 피를 흘리며 싸우게 되었습니다./ 둘이는 각각 다른 둥지에 들어가 높이 담을 쌓았습니다./ 둘이는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둘이는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인 1970년대 중반에 어느 고교생이 썼던 시입니다. 이 시만 읽어 보면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형제끼리 다투지 말라는 교훈이 담긴 시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 시의 제목이 `한반도`라는 것을 알고 나면 이 시가 전달하려는 내용은 금세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 시는 현재의 분단 상황을 우의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지금 보면 그저 그런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가 씌어진 당시에는 그저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이 학생은 이 시가 담긴 시집을 발표한 뒤 학교측으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처벌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남한과 북한을 대등하게 다루었다는 것이지요. 지금 학생들이 이 말을 들으면 정말 황당하기 이를 데 없겠지요.

우리는 오랫동안 남과 북을 동등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배워 왔습니다. 남과 북을 동등하게 생각하는 것은 북괴를 이롭게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잠깐 북괴라는 말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겠군요. 지금 청소년들은 북괴라는 말이 얼마간 낯선 점도 있을 것입니다. 북괴라는 말은 북한 괴뢰라는 말의 준말입니다. 괴뢰는 순우리말로 하면 꼭두각시라는 말이지요. 남의 조종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80년대까지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을 괴뢰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고등학생 때까지 북괴라고 하는 말에 익숙해 있던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여러 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북한이 꼭두각시라고 하면 조종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들을 조종하는 자는 소련 아니면 중국일텐데 소련과 중국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60년대 이후 이념 분쟁을 통해서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서로 싸우는 사람들이 하나의 꼭두각시를 움직이는 일도 있을 수 있는가? 또 북한에는 두 나라의 군대가 모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북한을 괴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은 자연히 이전에 갖고 있던 생각들에 대한 확신을 흔들리게 만듭니다.

이런 생각의 밑바탕에는 통일은 북한을 완전히 무너뜨린 상황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이른바 멸공 통일이지요. 50년대에 우리 정부는 북진 통일을 통일 정책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다가 북한을 현실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통일 정책으로 바뀌어 왔지요. 하지만 이른바 멸공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생각을 좀처럼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진 현재에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려 했던 전직 대통령조차 이런 생각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멸공통일이라는 것은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냐를 떠나서 현실적으로 전혀 가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 가능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여기서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통일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사실상 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이제 허물어져 가고 있습니다. 온 민족 구성원의 통일에 대한 열망은 이러한 냉전의식을 봄눈 녹이듯 녹여 버리고 있습니다. 신동엽 시인의 `봄은`이라는 시는 이러한 상황을 우리에게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를/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버리겠지.

이 시에서 말하듯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튼 봄이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를 흐물흐물 녹여버릴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상황은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국어 교과서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국어 교과서 하권에 보면 `북한의 말과 글`이라고 하는 단원이 있습니다. 이 글의 결론에서 필자는 `북한에서는 말을 다듬는다고 하여 한자어를 몰아 내고 눈에 선 고유어를 많이 만들어 오히려 언어 생활에 혼란을 일으켰다는 평가도 없지 않으나, 그 정신만은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비록 단서 조항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북한의 긍정적인 측면을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다는 것은 이전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북한의 긍정적인 측면은 그대로 인정해 주고 배워야합니다. 또 북한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애정어린 비판을 해야 합니다. 북한이 우리와 하나이고, 우리 민족의 일부라는 점에서, 우리는 운명 공동체라는 시각을 지녀야 합니다. 역사 서술도 이러한 관점에서 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역사관이 될 것입니다. 냉전시대의 산물인 반북의식을 청산하는 것, 그리고 북한을 우리 민족의 일부로 보는 시각을 지니는 것, 이것이 바로 올바른 역사관을 수립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셋째 조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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