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군사전문가)


정권 말기에 집중된 무기도입

지난 12년간 3대에 걸친 정권 아래서 무기도입의 실태를 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된다. 대부분 대형 해외 무기도입 프로젝트가 정권 초기보다는 정권 말기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연이라고 말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이상한 현상이며 어쩌면 하나의 법칙 같기도 하다.

무기도입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책사업이 정권 말기에 선심성으로 집행된다는 사실이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기도입의 경우 정권 말기 프로젝트가 그 다음 정권에서 항상 잡음과 말썽을 일으켜 온 과정을 겪은 우리로서는 이 문제를 보다 자세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국방부의 해외 무기도입 총액은 1백22억7천4백32억 달러다. 그런데 노태우 정권 말기인 1991년에서 1992년까지 도입된 무기는 39억9천만불이다. 10년간 무기도입액의 30%에 육박하고 있다. 같은 기간 도입된 무기들은 전투기, 잠수함, 초계기와 같은 대형사업들이다.

이 정권말기 사업들은 문민정부 출범 초기에 예외없이 비리로 드러났다. 그런데 문민정부가 출범한 해인 1993년의 무기도입은 5억5천7백88억불로써 10년간 무기도입액 중 가장 작다. 이 추세는 1994년에도 마찬가지다. 신정권이 출범하면 갑자기 무기도입액이 줄어드는 뚜렷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문민정부 출범 후 수그러든 대규모 무기도입 사업은 1995년부터 다시 10억불대로 늘어나면서 급격하게 증가한다. 그러다가 문민정부 말기인 1996년과 1997년 두 해의 무기도입액은 32억8천6백만 달러 어치다. 문민정부 말기에는 미스트랄 지대공 미사일, 백두정찰기, 수송기, 전자전장비, 레이다 등 각종 외제무기가 물밀 듯이 밀려들어왔다. 물론 이 사업들은 문민정권 말기부터 의혹의 대상으로 부각되었으며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초기에 완전히 비리의 실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현 정부 출범 초기 린다 김으로 유명한 백두정찰기 사업이 그것이다.

"국방부가 경제를 망쳤냐?"

문민정부가 정권 말기에 무기도입에 얼마나 집착했는가 단적인 사례가 있다. 97년말 현철이 사건으로 국정의 한계에 직면한 김영삼 정부는 기어이 국가 외환위기라는 최대의 국난을 초래하고 말았다. 97년도 정부의 대 달러 기준환율은 8백원대였다. 그런데 외환위기로 환율이 폭등하더니 12월에는 무려 1천5백억원대에 달했다. 정부 기준환율보다 무려 87.5%가 오른 것이다.

바로 이 때 국방부는 휴대용 대공유도탄, 중형수송기 등 7개 종목의 무기에 대한 계약금과 중도금을 12월에 집행하도록 조달본부에 지시했다. 이 때문에 12월 한달 동안 약3천억원대에 달하는 무기도입금 지불이 이루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환차손만 1천억원 이상이 발생했다. 그해에 국방부의 해외 무기도입금 지급은 외환위기가 발생한 11월말부터 12월에 대부분 집중되었다.
 
이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는 당시 달러 한푼이 아쉬워서 금모으기 운동을 하던 시기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국민들은 집안에 돌잔치 금반지라도 장롱에서 꺼내 1달러라도 더 확보하려는 국난극복 운동에 매달릴 때 국방부는 그동안 매입해 놓은 달러를 모조리 다 써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조달본부가 무더기로 해외에 달러를 유출시키면서 했던 변명이 아직도 필자에게는 생생하다. 조달본부 외자부장은 97년 12월에 지불한 달러는 조달본부가 외환위기 훨씬 이전인 97년 4월부터 은행으로부터 매입하여 비축한 것이기 때문에 국방부는 아무런 손해를 본 것이 없다는 해명이었다.

즉 국방부 달러 지급은 외환위기와 무관하게 이루어진 것이다라는 말이다. 이런 논리라면 국민들이 달러 모으기 운동을 하건 말건 이미 확보해 놓은 외화를 국방부가 알아서 맘대로 썼기로서니 그게 무슨 문제냐는 식이다. 그래서 필자는 조달본부의 무리한 집행을 지시한 국방부 실무자에게 전화를 해서 다시 이 문제를 따졌다.
 
그랬더니 이 사람 왈, 경제를 망친 것은 경제부서지 국방부서가 아니다. 외환위기가 국방부가 잘못해서 초래된 것이냐를 되묻는 것 아닌가. 도대체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국가 경제회복이라는 국가 시책에 국방부가 협조하면 안되느냐고 따지니까 이 사람 왈, 그러면 국방태세가 허술해지는 것을 국회가 책임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더 이상 대화가 무의미했다.
      
예고된 비리 스캔들

어쩐지 국방부가 97년부터 국회나 언론이 그토록 반대했던 사업들을 무더기로 강행하는가 싶더니 연말의 무리한 집행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던 셈이다. 이들에게는 정권말기에 돈을 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연말에 계약을 강행한 사업들은 당시 국회에서 성능과 효용에 문제가 있다고 제동을 걸었던 사업들이다. 이 의혹사업들이 한순간에 날치기로 처리되어 버렸다.
 
이 때 필자가 깨달은 것은 국방부에는 기득권으로 연결된 모종의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때부터 문민정부 말기에 벌어진 국방 사업들을 인정사정 없이 파헤쳐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98년에는 백두정찰기다, 린다 김이다, 5대 의혹사건이다, 뭐다 해서 정신없이 드러나는 것 아닌가.
 
이런 사실을 참고로 하여 또다시 정권 말기를 맞고 있는 최근 상황을 한번 보자.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인 1998년, 1999년, 2000년 3년 동안의 무기도입 총액은 27억달러 정도다. 예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액수다. 99년부터는 전력투자비가 동결되거나 삭감되기도 한다. 신규 무기도입의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정권 말기에 가까워질수록 이 현상은 확연하게 증가세로 반전되고 있다.
 
지난 4월 19일 F-X사업이 결정된 것은 이미 국민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최근 해군은 이지스 구축함 전투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그 외에도 대통령 전용헬기 사업 등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사업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렇게 해서 정권말기 신규사업으로 편성된 무기도입의 사업비 총액은 그간의 환율상승을 고려할 대 약10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들 사업이 지난번 F-X에서 드러난 것과 매우 유사한 의혹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F-X 조작의혹은 이미 파헤칠 만큼 파헤쳐진 일이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다음 대기 중인 사업은 해군의 구축함 사업이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애초 중기계획과 다르게 이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축함의 전투체계 선정과 관련하여 이상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언젠가 시점이 되면 필자가 그 내막을 공개하기로 한다. 대통령 전용헬기 역시 1천억원대를 상회하는 사업으로서 최근 국방부는 슬그머니 사업비를 증가시켜 놓았다. 이 역시 의혹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사업이다.
 
이 의혹의 실체를 여기에서 다 말하자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왜 정권말기에 무기도입이 집중되고 있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을 수 있겠으나 주요 무기도입 결정을 다음 정권에 넘길 수 없는 그 어떤 특별한 사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필자는 이것이 바로 국방의 전분야에 영향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말하고 싶다.
  
계속되는 악순환
 
필자가 여러 방송토론이나 기고를 통해 F-X사업을 다음 정권으로 연기하자는 주장을 일관되게 해왔는 바, 이에 대한 국방부 측의 반응은 오직 하나다. 전력공백 보충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으며 국제신인도도 저하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궁색한 변명이다. 그보다 실제 속사정은 이러하다.
 
만일 사업을 다음 정권으로 연기하면 다음 정권은 전임 정권이 벌여놓은 사업을 바로 의사결정하기가 어렵다. 그랬다가는 전임정권의 비리를 새로운 정권이 뒤집어 쓸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부담감 때문에 사업 재검토와 조사에 최소 1∼2년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말이 다음 정권으로 연기지 실상 3∼4년은 연기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현행 국방 최고 지휘부가 대부분 퇴임한 후가 된다. 즉 죽 쒀서 뭐 주는 격이다.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정권의 논리에 가장 충실해 온 것이 그간 무기도입의 역사가 아니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난 12년 동안 뚜렷한 하나의 법칙으로 존재하는 정권 말기 무기도입 증후군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무기의 성능과 가치를 세세히 따지는 군사 매니아들이나, 또는 그 정당성과 합리성을 논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최근 부쩍 높아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도대체 이 정부를 못믿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라면 현재 F-X사업이야말로 그 속사정이 어떠한지는 모르겠으나 차기 정권에서 문제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3대에 걸친 정권에서 반복되는 이 악순환이 이제는 지겹다.
 
정말로 백년대계를 고려한 국가안보라면 이제 이 악순환을 끊는 용단을 내려야하지 않을까. 그러한 용단을 이끌어 낼 새로운 리더쉽을 우리는 갈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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