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정책실장)

 
남북정상회담 이후 `주적개념`은 현실에 맞지 않는 개념

최근 정부는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주적개념`을 대체할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적개념은 남북정상회담 개최 이후 이미 현실에 맞지 않는 개념이 되어버렸다.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명예위병대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와 함께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하기 위해 정렬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주적인 조선인민군의 명예위병대장 차민헌 대좌가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이렇게 보고하였다.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의장대를 사열했다. 사전에는 사열에 대하여 `조사하기 위하여 죽 살펴봄`이라고 되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주적인 조선인민군을 조사하기 위해서 살펴보았고, 조선인민군은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하였다.
 
2000년 9월 24일, 남북 국방장관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공항에 내린 북측 대표단은 조성태 국방장관에게 거수경례로 예우하였다. 이 두 사건은 남북이 더 이상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국방부는 2000년도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규정하였다. `국방백서 2000`의 제3절 1항의 국방목표에는 `우리 군은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한다` 고 밝히면서 `이는 주적인 북한의 현실적 위협에서 국가를 지키는 것`이라고 하여 우회적으로, 그러나 정확하게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주적개념에 대한 국방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군사적으로 북한은 여전히 `현존하는 위협`이고, 북한이 대남군사전략을 수정하는 명백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는 현시점에서 `주적` 개념의 변경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주적` 이란 정확한 개념정의도 없고, 학문적으로 검증된 개념도 아니며, 국민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친 개념도 아니고, 국제적으로 어느 나라도 사용하지 않는 개념이다.  또 특정 국가를 주적이라 할 경우 어떤 상황에서 주적이라고 규정할 것이며, 그럴 경우에 부차적인 적은 어떤 국가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주적이란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는 정치용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군사용어로는 `적`(enemy), `경쟁자`(adversary), `위협국`(threat)과 같은 용어를 들 수 있다. 군사용어로서 `적`은 분쟁 등으로 군사적 위협이 명확하게 존재하는 교전상태에서 사용하는 개념이다. 현재 남북의 경우 휴전상태이지만 평시와 교전상태는 엄격히 구분된다. 여러가지 징후에 따라서 전시상황이 되어서 한미연합사령관이 북한을 적으로 선포할 경우에야 비로소 북한이 군사적으로 `적`이 되는 것이다. 수백가지의 위기징후목록에 따라서 `데프콘 1` 내려진 상황에서 전시에 돌입하게 된다.
 
북한을 `주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현 상황이 교전상황이고, 북한이 전투당사자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주적규정은 현상황이 군사적으로 평시를 의미하는 `테프콘 5`의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군사적으로는 타당하지 않은 규정이다. 따라서 북한을 적으로 규정한 것은 북한과 전투행위가 발발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남북 사이에 화해와 협력을 추구할 수 없게 된다.

국제적으로도 `주적개념`은 없어

`북한은 주적`이라는 우리의 `주적개념`은 국제적으로는 찾아보기 힘든 개념이다. 주적개념은 공식적으로 국방백서에서 규정한다. 그러나 미국, 일본, 호주, 카나다, 중국과 같이 현재 국방백서를 발간하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어느 한 나라도 주적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특정국가를 주적으로 명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적이라는 용어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미국은 국방부의 연례보고서에서 위협(Threat), 사활적 이해(Vital Interest)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미국은 적(Enemy) 대신 군사, 외교, 정치 등 포괄적인 분야의 위협국이라는 의미에서 경쟁자(Competeter)를 사용하고 있고, 중국을 경쟁자로 지목하고 있다. 미국은 이와 함께  북한,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수단, 시리아, 쿠바 등을 불량국가(Rogue State)로 규정하고 있다.

과거 동서독이 대립하던 냉전시기에 서독은 군사훈련을 할 경우에도 적국을 동독군으로 하지 않고 별도의 호칭을 사용하였다. 미국도 군사훈련 중에도 적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오렌지국, 화이트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심지어 미국은 파나마를 침공했을 경우에도 주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일본의 경우도 주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비공식적으로 북한을 위협국으로, 중국을 경쟁자라고 부른다.

대만의 경우는 내부적으로는 중국을 `가상 적`으로 지칭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이를 사용하고 있지 않으며, 이스라엘의 경우도 주변 아랍국들을 평화협상의 대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적대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국방부는 "주적개념을 삭제한다면 국방정책에 혼란을 초래하고 국론분열을 일으킨다"고 말하고 있다. 북한을 주적으로 설정하지 않을 경우 우리 군의 존재이유가 없어진다는 생각도 널리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국방정책의 혼란이나 군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은 북한에 대한 주적개념 삭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 북한에 대한 주적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국방정책의 혼란은 특정한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국방정책과 남북문제를 도구화하는 정치집단의 당리당략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북한을 주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오히려 국방정책의 혼란을 가져온다. 북한이 주적일 경우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군사력을 건설해야 한다. 차세대 전투기, 구축함, 공중조기경보기 등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적합한 무기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북한 주적론은 이런 무기체계를 도입하려는 국방정책과 혼선을 빚게 된다. 북한를 지정해서 주적으로 규정한 것은 변화하는 동아시아의 군사환경에 대응하려는 국방부의 정책과 모순되는 것이다. 

국방백서에서 사용하는 주적개념이 엄밀한 군사적 개념이 아니고 모호한 개념이라는 것은 국방백서에서 주적개념을 사용해온 과정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1988년부터 국방백서를 발간한 국방부는 1991년부터 북한을 주적으로 설정하지 않았다.

국방백서에 주적개념이 다시 등장한 것은 1995년에 발간한 `국방백서 1995-1996`부터이다. `북한이 기존의 대남 적화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공격형 부대의 전진배치 및 긴장조성, 군사동원태세 강화, 통일전선 형성을 위한 대남 공작활동 등을 멈추지 않고 있는 사실을 감안하여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서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회의는 "한편으로는 쌀을 지원하고 한편으로는 주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국민여론 수렴과 국회 토론을 통해 결정했어야 했다"고 논평했다. 국민회의는 현재의 집권당인 민주당의 전신이다. 민주당은 집권당이 된 이후에도 `한편으로 정상회담 이후 각종 남북회담을 진행하면서 한편으로는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절차상의 하자`는 계속되고 있다.

탈냉전 이후 현대 안보개념이 군사위주에서 정치, 경제, 외교, 문화, 등 총체적인 안보개념으로 변화하자 국방부는 안보대상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서 1994년에 `적의 무력침공으로부터국가를 보위하고` 라는 국방목표의 한 구절을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로 고쳤다. 이것이 `적`을 삭제한 것이라는 보수세력의 공격이 대상이 되자, 1995년부터 `북한이 주적`이라는 개념을 다시 사용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국방백서 1997`은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한다라고 함은 북한의 현실적 군사위협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모든 외부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북한의 위협을 명시하고 있지만 주적개념은 사라졌다. 그러다가 `국방백서 1999`에서는 `북한 노동당 및 그 추종세력, 정규군 및 준 군사부대가 현실적인 주적`이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주적의 대상을 분류하여 적시하였고, `국방백서 2000`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을 삭제하고 `주적인 북한`이라고만 표현하였다.

주적개념 폐지가 국가안보에 큰 영향 미치지 않아

주적 개념은 용어의 문제일 뿐이지,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한 문제는 아니다. 주적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남한에서 군사적 해이현상이 발행하는 것도 아니다. 주적개념은 우리 사회에 내부의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서 사용하는 개념이다.

이제 우리는 남북관계를 개선시켜서 화해와 협력의 기초를 다져야할 필요에 직면해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런 필요에 따라서 주적개념을 대체해야 한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우리도 주적개념을 사용하지 않았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주적개념을 폐지하는 것이 국가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내정치 상황 때문에 주적개념 폐지가 시기상조라면, 1993년의 국방백서 표기와 같이 `적의 무력침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라고 국방목표를 설정하거나, 1994년의 표기와 같이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로 국방목표를 설정하는 것을 검토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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