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최영과 이들은 공동의 적인 권문세족을 몰아낸 뒤 출신과 개혁에 대한 태도 등을 둘러싸고 서서히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최영은 강직하고 청렴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권문세족 출신으로서 개혁에는 얼마간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신진 사대부간에는 개혁을 둘러싼 태도 차이 때문에 충돌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언제, 어떠한 계기를 거쳐 나타나느냐 하는 것만이 문제였습니다.
 
최영과 신진 사대부 사이의 갈등은 명나라와의 관계에 대한 이견을 둘러싸고 드러났습니다. 그 무렵 명나라는 원나라를 몽고지방으로 쫓아내고 중국 대륙의 새로운 지배자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원나라와의 관계를 깨끗이 정리하고 명나라와 외교 관계를 새로이 맺는 일이야말로 그때의 국제 관계로 볼 때 고려에게 닥친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명나라는 중국 대륙에 들어선 나라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고려에 부당한 간섭을 해왔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원나라가 차지하고 있던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명나라의 횡포는 두 나라 사이에 외교 관계를 트는 데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명나라는 최영이 권력을 잡기 전인 1374년부터 제주도가 원래 원나라 땅이니 자기들이 가져야 한다는 둥 하면서 고려의 영토에 대해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원나라에 기대고 있던 권문세족이 권력에서 쫓겨나자 명나라는 더욱 노골적인 태도로 나왔습니다.

1388년 2월 명나라는 철령(강원도 안변) 이북의 땅이 원나라의 `쌍성총관부`와 `동녕부`에 딸려 있었으므로 이제 자신들이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 지방을 통치하는 `철령위`라는 지방 관청을 멋대로 설치하고, 같은 해 3월에는 관리들을 강계에 들여보내기까지 하였습니다.

앞에서도 보았지만 철령 이북의 땅은 원나라가 강점한 것을 공민왕 때 힘으로 되찾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명나라가 원나라 대신 차지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일이 이쯤에 이르자, 고려 정부는 어떤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외교 관계를 맺는다면 원나라 대신 명나라가 고려의 새로운 지배자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집권 세력의 다수이던 신진 사대부들은 명나라에 대해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어떤 행동을 보이는 것을 꺼렸습니다. 신진 사대부들은 거의 대부분 원나라와 관계를 확실히 끊고, 명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고 실력자인 최영의 견해는 달랐습니다. 최영은 명나라가 우리 영토에 대한 야욕을 갖고 있으므로 군사적 대결을 무릅쓰더라도 그것을 꺾지 않으면 안 된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들 사이의 견해 차이를 `애국`과 `사대`로만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신진 사대부들은 권문세족들의 기반이 원나라에 기대는 데 있었으므로 원나라와 관계를 확실히 청산함으로써 권문세족의 기반을 철저히 깨부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원나라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중요한 열쇠의 하나로 명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고자 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시도는 그들의 의도야 어떻든 결과적으로는 명나라에 대한 의존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달리 최영은 원나라와의 관계를 끊기는 끊어야 하겠지만, 급격하게 끊고 나서 명나라와 긴밀한 관계로 나아가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권문세족의 기반을 급격히 무너뜨리는 일은 거꾸로 신진 사대부들의 입지를 급격하게 확대해 줄 것이고, 그러면 곧바로 자신의 권력 기반이 위태로워지리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신진 사대부들과 최영은 권력 기반을 둘러싼 투쟁의 한 고리로 명나라에 대한 공격 문제를 생각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명분으로는 최영의 주장이 우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명나라가 너무나 부당한 요구를 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어떤 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정당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최영의 주장에 따라 명나라의 요동을 정벌할 4만 명의 정벌군이 조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성계는 네 가지 불가론을 내세우며 요동 정벌을 반대하였습니다.

첫째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역할 수 없고, 둘째로 여름철에 군사를 일으킬 수 없으며, 셋째로 온 나라를 들어 멀리 정벌을 나가면 왜적이 그 빈틈을 노릴 것이고, 넷째로 지금 한창 덥고 비가 올 때여서 활의 아교가 풀어지고 많은 군사들이 전염병을 앓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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