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중선(통일뉴스 논설위원)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 직후 반년 가량은 남북장관급회담, 남북국방장관회담 및 군사실무회담, 남북경제협력실무 접촉, 이산가족 교환방문 등의 남북접촉이 활기를 띠었다. 이에 따라 민족구성원 모두는 그 같은 교류들이 통일을 향한 민족화해의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미국 부시정권 출범 후 거듭된 대북강경 정책이 발표되면서부터 일체의 남북대화들은 중단되었고 그 이후 1년여 동안 남북관계는 경직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때에 임동원 특사가 평양을 방문하여 합의한 남북공동보도문을 4월 6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 발표한 것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다시 해빙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통일부 자료에 의하면 남북 정상의 평화협력 의지를 상호 재확인하고, 남북이 한반도 긴장조성 방지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하며, 6.15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남북관계를 전면 복원한다는 데에 남과 북이 공감하면서 6.15남북공동선언 정신에 부합되게 긴장상태 방지 노력, 남북관계의 원상회복, 동해선 철도 및 서울∼신의주 철도 신속 연결, 남북대화와 협력 적극 추진, 남북군사당국자회담 재개, 상부상조 원칙에 의한 상호협력을 합의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 같은 발표를 접하면서도 앞으로 민족화해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새로운 감동이나 남북관계가 잘 발전되어갈 것이라는 어떤 기대를 갖지 못한다. 그것은 7.4남북공동성명 발표, 남북기본합의서 발효, 6.15남북공동선언의 경우에서 단 한번도 순조롭게 합의사항이 지속적으로 실천되어지는 경우를 보지 못한 데서 오는 타성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사실과 관련하여 민족화해가 이루어지기 위한 몇 가지 기본전제들을 떠올리게 된다.

첫째로, 남북합의 사항에 관한 실천의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남북합의는 그 구체적인 합의사항들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남북합의 사항은 구속력 있는 국제기구에 공동 등록하는 것과 같이 어떤 형태로든 실천의 보장이 전제되어야만 합의의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우리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을 때, 통일을 향한 민족화해의 첫걸음이 시작되었다는 기대 속에서 가슴 설레는 흥분을 누를 수 없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자주·평화·민족적대단결을 남북이 합의 발표한 바로 다음날 당시 국무총리는 "상호 비방 중상을 말자 하는 것은 하나의 개괄적인 약속이다. 개괄적인 약속을 초보적으로 해본 것에 불과하다" "유엔은 외세가 아니다"며 합의사항에 대한 실천의지가 없음을 공공연히 선전하였다.

그리고 1992년 2월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된 뒤에도 당시 정권당국은 재야와 야당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합의서 등이 헌법 60조에서 비준동의를 규정하고 있는 국가간의 조약이 아니라는 판단에 따라 국무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의 최종재가를 마침으로써 국내발효 절차를 마쳤다"며 끝내 국회 비준동의를 받지 않은 채 남북간의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남북합의는 어느 한 쪽이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합의 효력을 잃고 만다. 지금까지 그런 형태로 남북합의는 반복되어왔다.

둘째로, 지금 우리 민족의 당면 과제는 `통일`이지 단순한 `남북교류`는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분단 상황에서의 `남북교류`는 그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화해와 통일을 전제로 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철도 연결·개성공단 건설과 같은 남북경협추진위원회의, 금강산 당국회담 진행,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북측 경제사절단의 방남, 남북장관급 회담 및 군사당국자회담 재개 등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즉, 통일을 위한 본질문제의 합의는 없이 단순히 `남북교류` 문제들만 합의한 것이다.
 
남북합의는 그 내용에 있어서 먼저 민족화해를 위한 본질적인 문제에 관한 합의이어야 하고, 또한 실천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기본전제 없이 단순한 남북교류의 합의는 그것이 지속된다는 보장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같은 교류는 결과적으로 분단의 지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로,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간에 `민족공조` 문제가 합의되어야 한다.
 
이번에 발표된 남북공동보도문의 합의 과정에서 일정이 하루 연장될 만큼 남북간에 큰 쟁점으로 되었던 것은 바로 `민족공조와 외세와의 공조 문제` 및 `주적론` 때문이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족공조` 문제는 민족화해와 통일문제의 본질문제이다. `통일`을 이야기하면서 `민족공조`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는 민족공조 없이 통일을 성취할 수는 없다.

그리고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의 발효에 따라 남북대화가 활발하게 이어지는 과정에서 미국이 팀스피리트 군사훈련 재개를 선언함으로써 모든 남북대화가 중단되어야 했던 것이나, 6.15남북공동선언이 합의한 바대로 실행되어 가는 과정에서 부시 정권의 대북 강경 발언으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끼리의 대화`가 중단되어야 했던 것에서 미국은 우리의 민족화해와 통일을 방해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방해하는 외세의 간섭을 막아내는 데는 오직 `민족공조`의 길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

1992년 남북고위급회담 당시 북측은 대일본 관계에서 정신대문제와 일본의 핵무장 강화 기도, `을사조약` `정미7조약`의 무효선언 문제 등에 남북 공동대응책을 협의하고 쌍방당국의 공동결의안 채택을 제의한 바 있다. 이렇듯 우리 민족끼리 외세에 대응하는 문제를 남북간에 합의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오늘의 현실에서 남북합의 자체도 물론 의미 있는 일이고, 경직되었던 남북관계의 회복도 중요하다. 그리고 각종 형태의 남북접촉과 교류도 필요하다. 그러나 남북합의의 실천이 보장되지 않는 합의나, 민족화해와 통일을 전제로 하지 않은 단순교류는 무의미하다. 그것은 오히려 분단의 영구화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렵게 이끌어낸 남북합의 사항을 소중하게 이행 발전시켜가기 위해서는, 그리고 민족화해를 일구어내고,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정착시켜,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천을 보장하는 남북합의가 필요하고 그것은 바로 남북간의 `민족공조`를 합의해 내는 일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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