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군사전문가)


북한에 의한 남한 정계개편?

87년 이후 지금까지 4번의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면서 `색깔론`과 `사상논쟁`은 우리 사회 특유의 사회현상으로 자리잡게 된다. 일부 경선 주자가 사상논쟁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조.중.동이 색깔논쟁을 부추기는 논설을 게재하고 있다. 이념과 사상문제만 논한다면 별 문제가 될 것도 없겠으나 모 경선후보의 이미 사망한 장인의 좌익 활동 전력이라든지, 정책이나 노선을 넘어선 색깔 시비는 분명히 퇴행적이다.

이러한 논쟁이 초래할 가장 큰 비극은 결국 북한 주도의 남한 정계개편이라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는데 있다. 왜 그런가 살펴보자. 우선 북한이라는 존재는 역대 선거에서 `북풍 공작` 로비의 대상인 동시에 `북풍 저지` 로비의 대상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 내부의 정당.정파에 대한 내부정보가 유일하게 종합되어 있는 당사자가 북한인 셈이다. 97년 대선에서 판문점 총풍 로비를 위한 일부 후보측의 대북 접촉, 또한 이를 저지하기 위해 상대 후보측에서 예방적 차원의 대북 접촉이 제3자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럴 경우 북풍세력이 집권을 하면 상대후보의 대북 접촉은 `간첩사건`이 된다. 반면 북풍 저지세력이 집권을 하면 상대 후보측의 대북접촉은 `북풍사건`이 된다. 결국 대선정국을 지나면 `북풍사건`이나 `간첩사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터지게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이점이 바로 북한을 상대로 한 우리사회 색깔논쟁이 초래할 가장 큰 비극이다. 문제는 이런 비극적 요소가 잠재된 정치환경을 가진 나라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밖에 없다는 점이다. 극단적으로는 정치로비의 대상이며 정보가 종합되어 있는 북한이 주도하는 남한 정계개편도 충분한 개연성을 갖게 된다. 퇴행적 색깔논쟁은 결국 우리 사회 정치에 북한의 개입도를 매우 높여주게 됨을 볼 때 북한에 대한 적대의식이 강한 보수세력이 색깔논쟁 전략을 선호한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하며 지독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주적론의 실체

6.15 남북 정상회담이 있던 2000년말 현재 보수를 자처하는 야당의 모 경선후보 외교안보 특보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제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클린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하지 말아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이런 편지가 효과를 발휘했는지 클린턴의 평양방문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 사실이 뉴욕타임즈에 보도되어 드러난 바 있다.

편지의 배경에는 한반도 평화와 화해분위기가 초래한 보수의 위기의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다가올 대통령선거에서 한반도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풍공작을 또다시 추진하지 말란 법이 있을까. 물론 보수 진영에서는 현 정부가 김정일 답방을 재집권을 위한 카드로 활용하려 한다는 위기의식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 정치담론이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북문제를 매개로 한 정치세력간의 불신은 상황변화에 따라 극단적 충돌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그런 점에서 최근 여야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주적논쟁이 고개를 들고 있음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고 우려스러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이 논쟁은 현실을 떠난 유령 정치논쟁이다.

후보 경선 토론시 한 후보는 다른 후보에게 "북한에 대한 주적론에 대한 견해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고 또다른 후보는 "그런 논쟁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응수했다. 그런데 질문과 답변이 모두 잘못되어 있다. 소위 `북한에 대한 주적론`이란 성립할 수 없는 표현이다. 국방부 장병 정신교육 교재에 나와 있는 주적이란 `북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노동당과 인민군과 그 주변조직이다. 반면 북한 주민은 주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명기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주적이라는 표현은 정부 문서 어디에서도 나와있지 않은 잘못된 표현이며 비약이다. 이 논법대로라면 북한은 포용의 대상이며 민족국가 구성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평화통일의 기본원칙도 깡그리 부정하는 극단적 사고방식이다.

그러면 답변은 왜 잘못되어 있는가. 주적이란 매우 군사적인 표현이다. 이 주적논란과 관련된 1991년 논쟁을 보면, 당시 노태우 정부는 F-16 전투기 도입결정 이후 군의 현대화를 추진한다는 신국방정책을 발표했다. 그러자 당시 동아일보는 이제 북한에 대한 주적론을 포기하고 주변국으로 안보위협 대응의 범위를 확대하는 의미라고 보도했다. 만일 북한에 대한 주적론이 그처럼 중요하고도 국방의 핵심을 이루는 근간이라면 최근 주변위협을 고려한다는 의미에서 추진되는 F-15K전투기 도입문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국방부는 최근 북한만이 아니라 미래 불특정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각종 현대식 무기를 도입하고 있지 않은가. 국방에서 주적론이 그처럼 중요한 것이라면 국방부가 함부로 주변위협으로의 전환이라는 방위개념의 혁명적 전환을 과연 엄두낼 수 있었을까.

즉 주적이니, 부적이니 하는 논의는 국방에서도 거의 논의가치가 상실되었으며 정책적 의미를 갖지 못하는 구시대 유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방향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유독 주적론을 내세우는 당사자들이 모종의 주술적 언술에 중독되어 현실적 의미를 갖지 못하는 유령논쟁으로 자꾸만 기어들어가려는 시도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적 논의에 대한 답변은 그런 질문 자체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잘못된 논조라는 명쾌하게 논박했어야 한다.

최근 우리사회를 긴장시킨 `안보 위기론`, 더 나아가 월드컵 이후 북한 핵사찰을 둘러싼 긴장과 갈등이라는 국면을 지혜롭게 극복할 생각은 아니하고, 그 긴장을 집권을 위한 기회로 활용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준비되는 색깔논쟁은 우리 사회의 공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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