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아태평화재단 연구위원, 정치학)


1. 특사 방북의 배경 : 남북이 나서야 했던 한반도 위기

길게는 2001년 1월 부시 행정부 출범부터, 짧게는 2002년 1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부터 한반도는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확정의 시계에 놓여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정권을 잡은 부시 공화당 정부는 `클린턴 것만 아니면 만사 오케이`라는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을 내놓으면서 클린턴 정부와 북한 사이에 합의된 기존의 논의를 전면부정하고 북미관계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부시를 설득하려고 달려간 김대중 대통령 역시 2001년 3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별무성과 없이 돌아와야 했고 오히려 민족공조와 한미공조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해야만 했다.

당연히 남북간의 제반합의는 물거품이 되었고 북한과 미국의 지리한 신경전만 지속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9.11 테러 사태 이후 북미관계는 더욱 냉각되었고 이제 미국에게 북한은 테러의 배후지, 테러용 무기 제조국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2002년을 `전쟁의 해`로 선포한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대내적 정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갑자기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북미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 한반도에는 다시 전쟁의 먹구름이 떠돌기 시작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감격은 잠시였을 뿐 이제 다시 한반도는 1993년의 전쟁 일보직전을 방불케 하는 최악의 안보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대중 대통령은 2002년 2월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에게 대북 대화와 협상을 촉구하고 이에 대한 한미간 합의를 도출해냄으로써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이 초래할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해소하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상황은 완전히 정리된 것이 아니었고 여전히 북미관계는 위험한 국면을 지속하고 있었다.

북한은 미국의 대화제의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미국 정부의 북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가능성을 검토한 보고서가 알려지는가 하면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핵동결 이행에 대한 인증을 거부하면서 과거 핵사찰에 응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전쟁의 위기는 넘겼지만 여전히 북미간 갈등은 내연해 있었고 그 와중에 남북관계는 소강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금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이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상이 임동원 특보의 방북이 이루어졌던 시점의 한반도 기상도이다. 결정적인 파국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북미관계는 1년 넘게 최악의 상황을 지속하고 있었고 여기에 연동되어 남북관계 역시 정상회담의 기억조차 불분명할 정도로 냉각기를 맞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의 종속변수로 자위하면서 상황의 호전만을 기대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남측 뿐 아니라 북측도 김대중 정부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켜야 할 절박한 필요성을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북측이 특사 방북결정을 발표하면서 `민족 앞에 닥쳐온 엄중한 사태`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갈수록 더해가는 한반도의 긴장상황을 해소하고 북미간 대화재개에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제 남북이 나서서 무언가를 내놓지 않으면 도저히 길이 없는 상황임은 누구보다도 남북이 잘 알고 있었다. 정상회담의 역사적 성과를 주체적으로 만들어 냈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핫라인을 재가동함으로써 남북이 앞장서서 한반도 위기를 해소해야겠다는 무언의 교감이 이번 특사방북의 결정적 배경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북미관계 개선에 앞선 남북관계의 성과를 통해 역으로 북미관계를 압박하려는 민족적 단합의 훌륭한 사례로 평가될 만한 것이기도 하다. 

2. 특사 방북의 성과와 의미 : 한반도 위기의 해소와 남북화해의 복원

꼬여만 가던 한반도의 교착국면에서 남북이 특사방문을 합의했던 사실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성공은 이루어진 것이었다. 특사 방문을 통해 양측의 최고지도자간 직접적인 의견교환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해소하고 소강상태인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자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동원 특보의 방북행은 깜짝 놀랄만한 합의를 도출하지는 않았지만 한반도 긴장 해소와 정상적인 남북관계의 복원이라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첫째, 임동원 특사의 방북은 1년여 동안 지속되었던 불안정한 한반도 위기상황을 해소하는 데 남북이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특사방북에 남북이 합의했던 주요한 배경도 기실 한반도의 점증하는 위기상황이었고 보면 이번 특사방북을 통해 남북은 `긴장상태가 조성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해냄으로써 한반도 위기 해소에 남북이 앞장설 것을 널리 과시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북미간 대결로 한반도에 위기상황이 조성되면 남측 정부는 어김없이 미국의 대북 강경노선을 추종했고 심지어 미국이 북한과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려는 것에 대해서조차 한국은 나서서 말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북측 역시 북미간 대결상황에서는 예외없이 한국을 제외한 통미봉남의 자세로 미국만을 상대하기 일쑤였고 북미간 직접 담판을 통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보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특사방문을 성사시킨 김대중 정부와 김정일 정부는 과거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킬 때도 남북 정부는 북미관계의 진전에 앞서서 남북사이의 화해국면을 열었고 오히려 이를 통해 이후에 북미관계의 진전을 추동했다. 이번에도 남북은 북미간 갈등으로 야기된 한반도의 긴장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무작정 기다리지만은 않았다.

특사 방북 이전에 이미 남북은 악의 축 발언으로 조성된 최악의 위기상황을 지나면서 상호 신뢰의 메시지를 교환할 수 있었다.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남측은 부시 정부의 대북 강경방침을 반대하는 모습을 일관되게 견지함으로써 민족공조를 요구하는 북에 대해 일정한 의지를 보여줄 수 있었다.

또한 역으로 북한은 악의 축 발언파동을 겪으면서 부시의 대북 강경노선이 말뿐이 아니라 현실임을 깨달을 수 있었고 때문에 남측과의 관계개선을 더 이상 지연시킬 수만은 없는 형편이었다. 결국 대외적으로 조성된 한반도의 위기국면은 남북이 단합하여 돌파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존재하지 않았고 이같은 상황인식에 합의한 남북은 특사방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한반도 위기해소에 극적인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남북이 앞장서서 한반도의 긴장상태 재발을 막겠다는 노력은 이번 특사방문에서 남측이 북측에게 미국과 일본의 요구사항을 허심탄회하게 전달하는 것과 함께 북측이 남측에게 북미간 의미있는 대화를 재개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한미간 의견조율에 따른 잭 프리쳐드 대북교섭담당대사의 방북이라는 한국측 권고를 북측이 받아들인 것은 그동안 겉돌기만 했던 북미간 대화를 내실있게 진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한 성과이다.

더불어 김정일 위원장이 북일간 적십자 회담 재개의사를 시사한 점도 이번 특사 방북이 한반도의 위기해소에 기여한 구체적 성과로 꼽힌다. 특사방북이라는 남북 사이의 돌파구 마련을 통해 한반도에서 `남북미관계의 선순환 구조`를 가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둘째로, 임동원 특사의 방북은 소강상태를 맞고 있던 남북관계를 다시금 정상회담 이후 민족화해국면으로 복원시켰다는 의미를 갖는다. 공동보도문을 통해 발표된 남북간 합의사항은 대부분 이미 기존의 장관급회담에서 언급되었던 것이지만 이는 정상회담 이후 북미관계의 교착으로 초래된 소강상태의 남북관계를 이제는 북미관계와 독립된 영역으로 간주하고 남북사이의 화해와 협력을 우선적으로 증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마련된 역사적인 민족화해의 국면도 이후 닥쳐온 부시 행정부의 출범과 북미관계의 갈등이라는 외적 상황에 의해 하루아침에 원점으로 회귀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미갈등의 와중에서 북한은 남측에 대해 민족공조의 입장을 표명할 것을 요구했고 남한은 북측에 대해 미국과의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하면서 남북관계는 악화된 북미관계의 부산물로 자리매김되어 버렸다. 어렵게 도래한 민족화해의 역사적 국면이 어이없이 무산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특사방북을 통해 남북은 다시금 민족화해의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번 특사방북에서도 민족공조와 외세공조를 놓고 입씨름이 존재했지만 이제 남측은 남북관계의 원상회복을 위해 북측이 요구한 민족공조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반면에 북측 역시 남한의 한미일 공조가 미국과 일본의 대북 대화와 관계개선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같은 남북화해의 복원은 북미관계의 진전여부와 별도로 이미 합의된 남북사이의 화해협력 일정을 구체적으로 추진하면서 실현될 것이다.

이번 특사방북에서 확인된 북미관계와 분리된 남북관계의 복원은 특히 미국의 대북강경 정책의 개입여지를 봉쇄하는 모티브가 된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한반도의 위기국면 해소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악의 축 국가가 미국의 최우선 동맹국인 한국과 함께 구체적인 화해협력의 내용들을 실천해간다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부시 정부의 한반도 개입여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산가족이 상봉하고 남북을 연결하는 철도와 도로가 개설되며 금강산과 개성에서 남한 사람이 북적대고 남한 기업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영위하게 된다면 한반도의 평화지수는 그만큼 높아지게 되고 미국의 대북강경 정책의 정당성은 그만큼 줄어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임동원 특사의 방북은 새롭게 조성된 국제환경의 변화를 거친 이후에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가 다시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나눴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2000년 정상회담이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만나 한반도 화해와 협력의 전기를 마련했던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2001년부터 정상회담을 가능케 했던 국제환경은 급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대북 대화보다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부시 정부가 출범함으로써 한국과 북한은 모두 새롭게 변화한 국제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대북정책을 놓고 한미정상회담에서 힘겨운 설득을 해야만 했고 일본교과서 파동으로 첨예화된 한일관계 역시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진정시켜야만 했다. 김정일 위원장 역시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해서 북중, 북러 정상회담을 가졌고 대미 관계개선의 빈틈을 유럽연합과의 관계개선으로 메꿔 나갔다.

즉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새로 마련된 국제환경의 변화를 놓고 남측과 북측 모두 한미일/북중러의 정상회담을 거쳤고 그 결과에 토대해서 다시금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남북관계의 증진을 위해 새로이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가 진솔한 의견교환을 나눌 수 있게 된 점도 이번 특사방북이 가지는 의미임에 분명한 것이다.  

3. 남은 과제 : 민족화해의 새 출발
 
여하튼 이번 특사방북을 통해 한반도에는 화해의 훈풍이 다시 불고 있다. 기나긴 겨울추위가 가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듯 지난 1년 넘게 살얼음판을 지나왔던 남북관계가 다시 해빙과 화해의 국면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이 다시 가시화 되었고 경의선 연결과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사업도 다시금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남북장관급 회담과 국방장관 회담의 재개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반도는 이제 다시 전쟁위험지역에서 평화지역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앞으로 남겨진 과제 역시 적지 않다. 극적인 특사방문을 통해 남북관계는 2000년 말의 화해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2000년 겨울의 4차 장관급회담 이후 2001년의 국제정세변화는 한순간에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했고 2001년 9월의 5차 장관급회담이 다시금 남북관계의 순항을 예고했지만 이 역시 9.11 테러 여파로 난항을 거듭했음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특사방문으로 도래할 남북화해와 한반도 긴장완화의 국면 역시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무위로 돌아갈 수 있음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이번 합의가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으로 연결되고 나아가 한반도의 긴장해소에 기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측의 성실한 노력과 일관된 의지가 필요하다. 이미 2001년 남북관계 소강국면에서도 드러났지만 남북의 화해의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북측으로 하여금 대남 신뢰를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뜩이나 북미관계의 악화 상황에서 이루어진 남북간의 소중한 합의인 만큼 북측에게 남측의 민족공조 노력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 바, 이번 공동 보도문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북한에 대한 식량 및 비료지원은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합의가 북미관계의 실질적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사실상 북측이 남측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셈이므로 이에 대해 성의를 표시하는 것은 남북대화에 나온 북측의 체면을 살리고 상호 신뢰를 다지는 보장장치가 될 것이다.

이번에 합의한 이산가족 상봉이나 경협추진위 개최, 경의선 연결 및 개성공단 건설과 금강산 관광 문제 해결, 경제시찰단 방문과 장관급 회담 및 군사당국자 회담 개최 등은 남측 정부의 5대 추진과제가 그대로 북측에게 수용된 것이다. 따라서 향후 남북간 합의를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데는 남측이 북측의 체면을 살려줄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북측이 그동안 끈질기게 요구했던 명분은 다름 아닌 민족공조였고 그것은 6.15 공동선언과 이번 공동 보도문에도 드러났듯이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나가자`는 것이었다. 과거 냉전시기의 한미일/북중러의 민족대결구도 대신 정상회담 이후 민족화해 시대의 개막과 함께 북측은 남북이 단합하는 민족공조를 가장 중요한 명분으로 제기했고 이는 특히 북미관계의 악화와 함께 남측 정부의 입장을 집요하게 요구했던 것이기도 했다.

한미일 공조와 남북공조 사이에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만 했던 김대중 정부의 현실적 어려움은 때로는 북측의 대남 신뢰감이 약화되는 것을 감수해야만 했고 또 때로는 미국 정부에게 의심을 사기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 악의 축 파동에서 김대중 정부는 적어도 햇볕정책의 일관성 유지와 함께 부시의 대북 강경정책을 우회적으로 반대함으로써 남북공조의 신뢰성을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금번 특사방북에 남북이 극적으로 합의할 수 있었던 모티브가 되었다.

따라서 이번의 합의를 소중하게 키워 나가고 이를 통해 향후 남북미 관계의 순항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 시기 민족화해의 의미와 민족공조의 내용들을 새롭게 채워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남측의 일방적인 대북 요구의 관철이 아니라 북측이 원하는 명분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이를 통해 북한의 체면을 살리고 남북이 동시에 실리를 획득할 수 있는 지혜를 짜내는 것이어야 한다.

이미 우리가 경험했듯이 2001년 9월 어렵게 재개된 5차 장관급 회담에서 남북은 많은 것을 합의했지만 그 직후 9.11 테러를 둘러싼 남북의 입장차이로 인해 그 많던 합의들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한반도의 위기는 갈수록 고조되어만 갔다. 한반도의 전쟁위기는 남북이 가장 큰 피해자이며 따라서 그것을 극복해야할 가장 큰 책임 역시 남북에게 주어져 있다.

임동원 특사의 방북으로 조성된 오랜만의 남북화해 기류는 북미관계 악화를 남북관계 개선으로 풀어보려는 역사상 최초의 남북 단합의 산물이자 민족적 지혜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제라도 남북화해와 민족공조의 새로운 출발을 통해 한반도에 드리워진 긴장을 해소하는데 남북이 앞장서서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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