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여야가 올해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권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제가 반전과 파란을 일으키며 흥미를 더해 가고
있다. 정치에 식상했던 사람들은 오랜만에 16편짜리 주말드라마를 보며 술집에서 국민경선
제를 안주 삼아 정치얘기를 하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죽을 쓰며 시체에 가까웠던 민
주당은 국민경선제 덕택으로 여론조사에서 당 지지율이 한나라당보다 높게 나오고 또 특정
후보가 야당의 유력 후보를 크게 앞지르고 있으니 시셋말로 대박을 터트린 격이다.

◆ 당파와 정파에 관계없이 국민들이 국민경선제를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또 이를 통해 국민
참여와 정치개혁이 이뤄진다면 국가발전을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런데 한가
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후보자들간의 이른바 `이념논쟁`이다. 한 나라의 최
고지도자가 되겠다는 인물의 `사상과 이념`은 물론 검증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정책
대결과 토론 등을 통해 국민에 의해 검증되고 심판 받아야지 구시대의 유물인 매카시즘적
수법이나 색깔론 등에 의해 왜곡되거나 덧칠해져선 안된다.

◆ 민주당에서의 이념논쟁은 양강(兩强)구도를 이루고 있는 이인제-노무현 후보간에 벌어지
고 있다. 이 공방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통일 및 북한 관련 내용이다. 이인제 후보측의
대노(對盧) 이념공세는 다음과 같다. 이 후보측은 노 후보의 성향이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
△대북 무조건 지원 △주한미군 철수 등에서 보여지듯 `급진적이고 과격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후보측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한총련 소속 학생이 참
여하고 있다는 의혹이 파다하다"며 "노 후보는 이적단체로 규정된 한총련 합법화에 대해 어
떤 입장을 가지고 있느냐"고 질의했다.

◆ 이에 대해 노 후보측은 △"국가보안법은 민주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악법으로 세계
적인 웃음거리"이기 때문에 철폐되어야 하며 △`주한미군 철수 주장`에 대해서는 "당시 재야
단체 주장에 동조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주한미군이 통일된 뒤에도 필요"하며 △`노사모`에
대해서는 "한총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노사모`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발적 정치인 팬
클럽으로 순수한 단체에 대한 색깔 공세는 가슴아픈 일"이라고 반박했다.

◆ 사실 `국보법, 대북지원, 주한미군, 한총련 합법화` 문제 등은 한반도 및 남북문제에서 매
우 중요한 현안이다. 그리고 대권 후보자라면 응당 이에 대한 견해와 입장을 갖고 있어야
하고 또 명백히 밝혀야 한다. 여기서 두 후보의 견해에 대해 일일이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은 계제는 아니다. 다만 두 후보간의 이념공방을 보면서 두 가지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
는 공격하는 후보는 이념을 무슨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방어하는 후보는 이념논쟁은
곧 손해라는 피해의식에 싸여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이들 주요 사안들을 은연중에 북
한과 연결시켜 국보철이나 주미철을 주장하면 이를 좌경.용공시 하면서 `절대 악`으로 보는
점이다.

◆ 여기서 `사상의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상의 자유란 △자신의 생각
을 밝힐 수 있는 자유이자 △그 생각이 외부로부터 인정.존중되는 자유를 말한다. 한 예로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자는 것은 `유지`하자는 것과 똑같은 가치를 갖는 하나의 견해일 뿐이
다. 따라서 두 가지 견해는 서로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선거판에 나왔으니 서로
다른 견해는 국민에 의해 심판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의 섬 한반도에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지 3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의 정신은 남과 북이 서로의 체제와 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것이
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남북이 합의하고 민족의 장래가 담긴
6.15 공동선언과 그 정신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데 생각이 자기와 다르다고 공격하거나 더
나아가 북한과 입장이 비슷하니까 문제가 있다는 식의 구태(舊態)는 미래의 지도자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지금 민주당 경선에서는 공격하는 후보의 이념공세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념의 칼을 마구 휘두르는 자는 언젠가 자기가 칼날을 손에 쥐고 있음을 발견하
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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