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간 아리랑 만을 파고들었다는 김연갑 (사)한민족아리랑협의회
상임이사.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김연갑(48)씨, 그에게는 으레 아리랑이 따라다닌다. 교사생활 1년 반을 제외하고는 19년간 우리 민족의 전통 가락인 아리랑에만 심취해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가 올해 4월 29일부터 시작되는 북한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하 `아리랑`)에 남쪽의 아리랑을 들고 참가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최근 몽골에서 `아리랑` 남측 관광객 5천명을 모집하는데 한국측 협력자로 그가 상임이사로 있는 (사)한민족아리랑협의회가 지정됐다.

2일 아침 인사동에 있는 (사)한민족아리랑협의회 사무실에서 그의 아리랑 사랑과 북측이 준비하는 `아리랑`축전에 대해 들어보았다.


`서울 한복판에 북한 아리랑 틀어`

□ 아리랑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 83년 답사 기행단이 시작이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게임 유치가 확정되고 83-85년에 외국인들의 한국 취재 열기가 높았다. 그와 더불어 우리 스스로 우리 것이 과연 무엇이냐를 자각하는 기회가 돼 답사가 굉장히 유행했다.

그때 고은 시인, 변형윤 선생, 고(故) 허규 선생 등과 현장답사를 하면서 이병도, 양주동 박사 등이 쓴 것은 아리랑이 고대의 노래이고 노랫말이 지역별로 몇 수라는 정도로 책상에서 쓴, 정체된 아리랑이라는 자각을 갖게 되었다. 정선, 밀양 등을 다니면서 아리랑은 지금도 노랫말이 만들어지고 있고 생생하게 불려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리랑이 다른 수많은 민요와 구별되는 가치라고 한다면 그 생명력이 다른 민요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그러한 생명을 가지고 불려온 과정에서 각 시대마다의 시대정신을 담아서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사단법인 한민족아리랑협의회에 대해 소개해 달라.

■ 83년 `아리랑 기행단`으로 출발해서 86년에 연구모임을 만들자고 해서 `모임 아리랑`이 생겼고 88년에 본격적으로 두 단체가 발전적으로 해체하면서 `전국 아리랑 보존 연합회`라는 단체가 결성됐다.

그리고 나서 제1회 아리랑 축제를 88년에 국립극장 마당에서 진행했는데 국내 분들은 지나치는데 의외로 외국인들은 아리랑 푯말을 보고 다 모여들었다. 이때 아리랑으로 한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민족축제를 발전시켜보자는 확신을 갖게되었다. 당시 국립극장단장 허규 선생, 나운영 교수, 설성경 교수 등이 주축이 되어 축제 정례화 등을 합의했다.

현재 (사)한민족아리랑협의회는 밀양, 진도 등 28개 지회가 있고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등 4군데 지부가 있다. 아리랑은 모두의 것이기에 회비와 회원이 없다. 한민족은 모두가 함께 해야지 회원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외국인은 회원이 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지회와 이 곳은 봉사자들이 1년씩 맡아서 운영하고 자원봉사자들이 무기명으로 행사비용 등을 충당하고 있다.

▶아리랑은 각 시대마다의 시대정신을 담아서
노래하고 있다는 김연갑 상임이사.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 작년에 진행한 `01통일아리랑축제`를 소개해 달라.

■ 축제를 단순하게 하지 말고 도시축제와 정선의 지역 축제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하자고 해서 정선, 진도, 밀양을 찾아가서 연합축제 실험을 했고 작년에 서울로 올라와서 형식을 종합해서 통일아리랑축제라는 명칭을 썼다. 통일아리랑은 국내에 흩어진 아리랑을 하나로 모아보자는 의미와 남북한 통일의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이 행사에서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북한 아리랑을 공연, 연주한 사례를 남겼다. 김대중 대통령이 북에 갔을 때 북한이 공식의전 악곡으로 쓴 `관현악곡 아리랑`과 환영음악으로 쓴 `통일경축아리랑`을 우리 손으로 편곡해 연주하고 부르기도 했다.

□ 중국 교포와 재일 조총련도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 북한 음악을 편곡하는데 북한답게 편곡할 수 있는 연변 가무단 작곡가가 편곡했고, 역시 북한 정서를 그대로 잘 아는 총련 측이 참여했다.

우리가 선전을 소홀히 해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서울 한복판인 인사동 카페와 음식점, 다방에서 하루동안 북한 아리랑을 틀었다.

`친척 잔치에 부주돈 들고 찾아가야`

□ 올해 북한이 준비하고 있는 `아리랑`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가?

■ 두가지 측면에서 보고 있다.
먼저 북한은 단군과 아리랑을 주체 예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종자의 핵으로 보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위상을 확보한 80년대 중반부터 관심을 가졌고 소설 아리랑의 주인공이 김정일 위원장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89년 남북체육회담에서 남북단일팀 단가를 아리랑으로 합의했고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방북 때도 의전음악과 환영음악을 아리랑으로 했으며, 조명록 특사가 미국을 방문할 때도 그 악보를 휴대하고 북한의 군부가 아리랑을 연주했다. 따라서 `아리랑`은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행사가 아니라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실제 2000년 4월 김정일 위원장이 예술가들에게 아리랑이 몇 가지냐고 묻자 37가지라고 답했다고 한다. 2001년 7월에 지금 북한에서 가장 많이 불리워지고 있는 `강성부흥아리랑`이 나오자 "우리 조선에서 38번째 아리랑이 탄생하는 것이군요"라고 했다고 한다.

이번 북측 행사에 대해 언론들이 `첫 태양의 노래`에서 `아리랑`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오래 전부터 `아리랑`이 준비되어 왔으며 2000년 창군 55돌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에서도 통일경축아리랑과 장사익이 부른 안기영 작곡의 아리랑이 불리워졌다. 이미 중요한 무대에서 아리랑을 정책적으로 써 왔고 김정일 위원장 혼자 주장할 리가 없다.

북한은 이전에는 아리랑을 투쟁정신에다 가치의 중심을 뒀다. 일제에 저항했다, 김일성이 빨치산을 할 때 아리랑과 함께 했다는 등 `민족과 운명`, `피바다`, `밀림아 이야기하라`에 나오는 아리랑은 모두 투쟁적이고 계급혁명적인 내용이다.

▶북한은 일찌기 아리랑을 `종자의 핵`으로 삼아
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아리랑`을 보아야 한다는
김연갑 상임이사.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그런데 2000년부터 아리랑에 대한 인식이 연대와 대동으로 바뀌었다. 아리랑은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인이 다 아는 것으로 우리 예술이 훌륭하다는 것을 알려야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북측이 김 대통령이 왔을 때 자기네 애국가를 연주할 수 있었지만 민족적 차원에서 예우하기 위해 관현악곡 아리랑으로 막을 올려 예우했던 것은 엄청난 변화다.

또한 2000년 8월 평양국립관현악단이 남한에 왔을 때 남측이 짜놓은 프로그램을 무시하고 관현악곡 아리랑을 첫 곡으로 연주했다. 이는 대단한 자부심이다. 남측이 세계화시킨 사물놀이는 설령 세계화 됐다 하더라도 아프리카와 미국에서는 따라할 수 없다. 그러나 악보만 주면 전세계 누구나 관현악곡 아리랑은 연주할 수 있다.

이 곡은 76년 최성환이 공모에서 당선한 곡인데 10년여에 걸쳐 2명의 작곡가가 다듬어 서양악기에 장새납 등 우리 개량악기를 배합시켜 탄생시킨, 전세계에 유일한 `민족 배합 관현악곡`이다. 그리고 이것을 연주한 것은 `배합 관현악단`이었다. 이것은 평가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음악형식이다.

이번 `아리랑`은 연대와 대동의식이고 대단한 메시지를 담고 있고 정말로 남측이 와달라는 뜻이 있다.

두 번째로는 잔치론이다.
월드컵은 남한이 북한의 적인 일본과 미국의 힘에 의해 치르는 잔치다. 내 형제의 적과 하는 잔치이니 형제간에 약올리는 잔치다. 따라서 북에게 `와라` 할 때 선뜻 오기 어렵다. 북이 그런 잔치에 `아리랑` 잔치로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겠나.

월드컵은 우리의 주체적 잔치는 아니지만 `아리랑`은 규모는 몰라도 주체적 잔치고 우리의 정서에 맞는 잔치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아리랑` 잔치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아리랑`이 연대와 대동정신을 기조로 하는 잔치라고 한다면, 우리 정서상 이웃집 잔치에 있는 것 없는 것 털어 부주돈 만들어 참여해야 한다. `아리랑`의 내용과 목적 이전에 우리 이웃집 친척 잔치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정부 때문에 아리랑 참가단 모집 포기`

□ (사)한민족아리랑협의회에서는 북측의 `아리랑`에 어떻게 참여하나?

■ 북한은 `아리랑` 기간에 춘향전, 피바다 가극은 물론 평양주변의 관광코스 등을 패키지로 할텐데 그 사이 사이에 밀양, 진도, 정선, 인제, 강릉, 영천 등 전통 아리랑도 가서 선보이겠다. 북한 주민과 해외 교포들을 대상으로 분단이전의 전통가락으로 아리랑을 들려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3개월 전에 우리의 채널을 통해 북측에 제안을 했으며 아직은 반응이 없다. 북측의 요청이 있다면 전국 지회 회원들과 참여하겠고 54회의 아리랑 공연에 전부 참여할 예정이다. 120명의 아리랑 예술단원이 구성되어 있으며 1차 선발대로 61명이 갈 예정인데 일주일에 한번씩 돌아가며 갈 예정이다.

□ `아리랑` 참가단을 모집하고 `아리랑축전 참가단 준비위원회`를 구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

■ 1월 달에 참가단을 모집하려고 했으나 정부가 달가워하지 않았다. 정부의 입장이 나오기 전까지는 자제해 달라는 것이다. 우리는 가는 사람들의 주문 사항, 시기, 내용 등을 파악해서 분란없고 만족스런 행사가 되도록 하고 싶었는데, 결국 참가단 준비를 포기했고 준비위 활동도 포기했다.

남측에서 도대체 `아리랑`에 몇 명이, 어떤 내용으로 누구랑 어디를 가고 싶어하는 지를 조사하고자 했는데, 4-5개월 준비를 해도 부족한 일인데 정부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스스로 한다해도 한국의 구조가 민간단체는 정부의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전에 북에 몇 백명이 가도 문제가 있었는데 54일간에 엄청난 인원이 가게 된다. 북한을 도와주는 입장이어야 할텐데 우리가 만일에 우리측의 얘기나 질서가 문제가 된다면 북한측이 난리가 날 것이다. 막상 가서 나는 이런 곳을 보고 싶은데 왜 못 가냐고 할 수도 있고. 이런 것은 한두달 전에 미리 북한과 조율이 되어야 하는 사항이다.

□ 임동원 특사가 방북하게 되는데 어떻게 보고 있나?

▶몽골을 이산가족 교류의 장으로 모색해 보기
위해 `아리랑` 관람객을 몽골을 경유하게 한다는
김연각 상임이사.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 기존의 남북관계와 차이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보러 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열릴 수 없다. 정말로 `아리랑`이 갖고 있는 의미라든가 북한이 왜 `아리랑` 축제을 하는가에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 있어야하는데, `아리랑`에 대한 연대의식과 잔치에 가는 마음이 아니라 "정부가 문을 연다더라", "북한이 가도 된다더라" 하는 마음으로 가게 되면 자칫 잘못하다간 북을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

우리는 남북통일에 대한 관심은 두 번째고 어떻게 아리랑이라는 노래로 남북이 하나되고 나아가서 146개국으로 흩어진 우리 한민족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느냐에 관심이 있고, 이것이 훼손된다면 아무리 당장 남북간에 중요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아리랑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본다.

□ 몽골에서 남측 5천명을 모집해 몽골을 거쳐 아리랑에 참여하는 계획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 한달 전쯤 우리에게 연락이 왔다. 몽골이 남북관계에서 역할을 하려고 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는 남한에 있던 몽골대사가 지금 북한대사로 들어가 있다. 그 사람이 남한 정서를 많이 전달했을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가 서먹서먹한 조건에서 북은 가장 오랫동안 친교를 맺어온 몽골이라는 나라를 중시하고 있다. 몽골이 북측 정부와 5천명에 대한 합의를 받은 것은 엄청난 것이고 아주 의미심장하다. 구체적으로 북측과 몽골이 신변안전보장각서를 체결했다고 들었다. 5천명을 충족시켰을 때 몽골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다.

`몽골을 주목하라`

□ (사)한민족아리랑협의회가 몽골측의 한국측 파트너로 선정되었다는데 사실인가?

■ (문서를 보여주며) 공식적으로 문건을 받았다.
5천명을 모집해야 하는데 `아리랑` 축전을 보러가는 목적보다는 이산가족들에게 몽골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일에 이산가족 모임이라든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장소가 몽골일 경우에 이산가족의 마음으로 적당한 장소인지 그런 것을 한번 살펴보라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몽골을 거쳐가라는 것이다. 몽골 입장에서는 만약 이산가족 만남의 장이 몽골이 된다면 경제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좋을 것이다.

□ 몽골을 경유한 `아리랑` 관람의 구체적 경로는 어떻게 되는가?

■ 비행기로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타르까지 3시간 걸리고 주 1회 운행되고 있다. 거기서 평양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가격은 유동적일 수 있는데 인원이 많을 경우에는 달라질 수 있다. 실무적인 일을 모두 감당할 자신은 없고 이산가족 참가자들에게 이런 의미를 전달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5천명이 될지 50명이 될지 몰라도 아무래도 여행사와 함께 진행해야 할 일이다.

□ 지금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 이산가족 명단과 각 여행사에 금강산 관광을 신청한 명단을 파악하고 있는 중이다. 정부 입장이 기다려달라고 해서 아직 본격적인 착수는 못하고 있다. 이것은 관광차원이 아니라 몽골정부가 그런 역할을 해서 이산가족이 훨씬 쉽게 몽골에서 교류를 하는 일을 지원하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몽골 측에는 구체적인 주문을 해놓고 있다. 신변보장각서를 한국 몽골대사관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가시는 분들에게 신변안전보장각서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그리고 예술단은 연습중이다.

□ 실상 지금도 북경 등 중국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차이가 있나?

■ 북한으로서는 중국동포들의 수많은 비리와 국내 사기꾼들의 비리를 차단하는 방법으로서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다른 시민사회단체들과의 연대가 있나?

■ 우리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회비와 회원이 없고 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측의 관광객으로 문의가 오면 다른 단체가 모집을 한다면 거기 연결해 줄 수는 있다.

□ 앞으로의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의 계획은?

▶`한민족아리랑대전`과 `춘사나운규대전집`이 
준비됐다는 김연각 상임이사. 나운규의 아리랑
포스터가 보인다.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 북, 해외 등 20개국 89종 6,200수의 노랫말을 집대성한 민족가집인 `한민족 아리랑 대전(大典)`의 공동편찬을 북측에 제안하고 서문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민족영화 1호인 아리랑을 제작한 춘사 나운규의 100주년(2002년)을 기념해서 나운규와 아리랑 관련 모든 글 총 1,600면을 `춘사나운규대전집`으로 완성했다. 역시 북에 공동편찬을 제안해놓고 있다. 거기에는 북측에서 62년에 발행한 `나운규의 삶과 예술`, 99년에 발행한 `나운규 시대의 영화`도 들어있다.

또한 남쪽에서 4월 29일에 아리랑 축제를 판문점에서 여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판문점은 53년 휴전당시 포로교환 때 아리랑을 합창한 실례가 있고 89년 단일팀 단가로 아리랑을 여기서 합의했다. 유엔사와 중립국감독위원회에 허가를 요청한 상태다.

□ 북측에 아리랑 공연단을 보내고 같은 시기에 판문점에서 행사가 가능한가?

■ 진도, 정선, 밀양, 울릉도 등 각 지회에 회원들이 몇 천명이 되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 전통 아리랑은 밴드도 무대도 필요 없고 돈도 안든다. 시골 농사짓던 옷을 그대로 입고 전통 아리랑을 부르고 행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가능하다. 가능하면 나이많고 전통적인 가락을 가지고 계신 분들을 선별해서 북에 보내고 판문점에는 연극단체나 연구단체에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참여하도록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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