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 봉 (원광대학교 정치행정언론학부<정치학> 교수)
                                 

3월 9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처음으로 보도되어 알려지기 시작한 미국의 핵무기 사용에 관한 정책 검토는 세계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던지고 격렬한 반발을 불러 왔다. 핵무기를 전쟁 억지 수단으로 뿐만 아니라 선제 공격 수단으로도 쓸 준비를 해야 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온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 수도 있고 모든 생명체를 잿더미 속에 묻어버릴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파괴력과 끔찍한 부작용을 지닌 핵무기 사용은 전면전이 벌어져도 자제해야 할 "인류 최후의 수단"으로 여겨왔는데, 핵무기를 가진 강대국들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갖지 않은 약소국들에 대해서도 어떤 상황에서는 핵무기 맛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1/3 이상의 미국인들이 핵무기 선제 공격을 지지하겠다고 말한 최근의 여론 조사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유에스에이 투데이} - CNN - 갤럽이 3월 23-24일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54%가 미국이 핵무기로 공격을 받았을 때만 핵무기 사용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응답자의 36%는 미국의 핵무기 선제 공격을 지지하겠다는 것이다. 작년 9월 아무리 끔찍한 테러를 당했다 할지라도 미국인들이 이렇게까지 폭력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
 
그런데 북한은 지난 1월 29일 부쉬가 국정 연설을 통해 "악의 추축"으로 지목한 3개국에도 올라 있고, 이번에 공개된 핵무기 사용 대상으로 꼽힌 7개국에도 들어 있어, 한반도가 미국의 새로운 핵무기 시험장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민족의 안녕과 세계 평화를 위해 바람직한 대응책을 마련해보자는 뜻에서, 국방부와 CIA 문서 등을 바탕으로, 미국의 핵무기 정책에 관한 검토 내용과 그 보고서가 만들어진 배경을 소개한다.
 
먼저 3월 9일부터 언론을 통해 알려진 [핵 태세 검토 (Nuclear Posture Review)]라는 비밀 보고서는 56쪽으로 되어 있다는데, 전문이 공개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국방부는 중국, 러시아, 이라크, 북한, 이란, 리비아, 시리아에 대해 핵무기 사용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아랍과 이스라엘이 충돌하거나, 중국과 대만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때, 또는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면 핵무기 사용을 꼭 준비해야 한다.
 
둘째, 핵무기는 세 가지 상황에서 사용될 수 있다 :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으면 버틸 수 있는 목표물에 대해 ; 핵무기나 생물 무기 또는 화학 무기에 의한 공격을 받았을 때 ; [다른 나라가] "놀랄만한 군사적 발전"을 이룰 경우.
 
셋째, 미국은 지하 벙커를 폭파할 수 있는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잠재적 적국들이 무기를 지하로 옮기고 있지만, 미국은 이러한 시설들에 대처할 적절한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70개 국가에 10,000개 안팎의 지하 시설이 있는데, 이 가운데 약 1,400개가 지휘 벙커로 쓰이거나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들고 저장하는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지하 시설 구축에 가장 열성적인 나라들 가운데 하나로, 전투기와 탱크 그리고 병력과 대포 등을 감추기 위해 비무장 지대 근처의 화강암 산들을 파헤쳐 왔다.

미국 의회는 법에 따라 국방부와 CIA 등에 국가 안보에 관한 보고서를 내도록 요구할 수 있는데, 국방부가 만든 위와 같은 내용의 비밀 보고서가 의회에 제출된 것은 지난 1월이었다. 1월 9일 의회에서 열린 국방부의 "특별 보고"에 따르면, 이것은 핵무기 사용에 관한 두 번째 정책 검토로, 첫 번째 것은 1994년 클린턴 행정부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1994년의 정책 검토도 군사 기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직은 두 보고서 사이의 차이점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핵무기를 전쟁 억지 수단으로 뿐만 아니라 선제 공격 수단으로도 써야 하고, 다른 나라들의 지하 벙커를 폭파하기 위한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군부의 의지는 9ㆍ11 사건을 계기로 큰 힘을 얻은 게 분명하다. 부쉬가 대통령으로 확정된 직후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받은 럼스펠드는, 미국에 머지 않아 반드시 위기가 찾아와서 대통령이 그 위기를 이용해 미국의 힘을 온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고 제안했고, 부쉬는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작년 9월 테러가 일어난 뒤, 그에 관한 정보를 CIA가 사전에 입수했었지만 일부러 방치했다는 주장도 나왔고, 사건 자체를 미국이 조작한 것 같다는 의혹도 있었지만, 난 그런 주장이나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클린턴 행정부를 거치며 미국의 힘이 대외적으로 약해진 것처럼 보이는 데 불만을 품었던 럼스펠드가 "강한 미국"을 과시하기 위해 그런 위기를 기다렸다는 얘기는 그가 직접 밝히고 확인한 내용이다.
 
아무튼 2001년 1월 행정부가 바뀐 데다 9ㆍ11 사건까지 터져 미국의 안보 정책은 크게 바뀌었다. 부쉬 행정부 국방 정책의 근간이랄 수 있는 [4개년 국방 검토 보고 (Quadrennial Defense Review Report)]도 이전의 것보다 매우 공세적이다. 2001년 9월 30일자로 만들어진 이 보고서의 새로운 핵심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과거엔 `상대의 위협`에 초점을 맞춰 국방 계획을 세웠지만, 앞으로는 `자신의 능력`에 초점을 맞춰 국방 계획을 세운다는 점이다. `누가` 적인가 또는 전쟁이 `어디서` 일어날 것인가 보다는 적이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해 더 신경을 쓰겠다는 것이다.
 
둘째, 과거엔 미국이 두 군데서 동시에 전쟁을 벌여도 둘 다 이길 수 있는 "동시 승리 (win-win)" 전략을 세웠지만, 앞으로는 둘 다 이기되 적어도 한 군데서는 영토를 점령하거나 정권을 갈아치울 수 있는 "결정적 승리 (decisive victory)" 전략을 세운다는 점이다.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싱거울 정도로 쉽게 이겼지만, 후세인 정권을 뒤엎지 못해 "뒷날의 위협"으로 남아있다는 강경파들의 비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서는 영토를 점령하고 미국의 입맛에 맞는 정권까지 세워놓았을까.
 
한편, 미국이 외부로부터의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는 대량 살상 무기(WMD)는 핵무기와 생물 무기 그리고 화학 무기 및 이들을 운반할 수 있는 탄도 미사일을 가리키는데, 핵무기 정책에 관한 부쉬 행정부의 비밀 보고서는, 2002년 1월 현재 12개 나라가 핵무기를, 13개 나라가 생물 무기를, 16개 나라가 화학 무기를, 그리고 28개 나라가 탄도 미사일을 가진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CIA가 2001년 12월과 2002년 2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 및 증언에서 북한에 대해 평가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은 핵무기를 1-2개 이미 만들었거나, 앞으로 1-2개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생물 무기와 화학 무기 프로그램은 갖고 있다. 셋째, 미국은 2015년 이전에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 (ICBM)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1998년 북한이 쏘아올린 대포동 1호는 2단계 탄도 미사일로 대량 살상 무기를 싣고 10,000 킬로미터를 갈 수 있는데, 지금 개발중인 대포동 2호는 3단계 탄도 미사일로 15,000 킬로미터까지 날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알래스카와 하와이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 전체가 사정권에 들게 된다.

이렇듯 북한은 모든 대량 살상 무기를 갖고 있거나 개발 중이며 단단한 땅굴까지 많이 파놓고 있다니, 미국이 땅 속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새로운 핵무기를 북한에 써보고 싶은 유혹을 적지 않게 받을지 모른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6,000여개의 핵무기와 각종 생물 무기 및 화학 무기를 갖고 있으며, 땅 위에서뿐만 아니라 물 속에서도 장거리 미사일을 쏠 수 있는 준비를 해놓고 있어서,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는 속된 말로 `새 발의 피`도 되지 않지만 말이다.
 
난 한반도가 미국의 핵무기 시험장이 되는 끔찍한 상황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독자 여러분들의 지혜를 모으기 위해, 내 감정은 될수록 억누른 채, 미국의 새로운 핵무기 정책의 내용과 배경을 소개하였다. 아낌없는 충고와 주저 없는 비판을 기대하며, 끝으로 지하 벙커를 폭파하기 위한 미국의 새로운 핵무기 개발과 관련하여 꼭 덧붙이고 싶은 얘기 두 토막 소개한다.
 
지난 1월 9일 의회에서 열린 핵무기 정책 검토에 관한 "특별 보고"에서, 국방부는 `포괄 핵실험 금지 조약 (CTBT)`을 지속적으로 거부할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미국이 핵무기의 세계적 확산을 그토록 꺼리면서도 자신은 끊임없이 핵실험을 하겠다는 모순은 지하 벙커를 폭파할 수 있는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욕구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또한 다른 나라의 땅굴을 폭파하기 위해 세계의 비난과 반대를 무릅쓰고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면서도 자신은 땅굴을 잘 보존하며 긴요하게 쓰고 있다. 높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지하 시설은 주로 와싱턴을 둘러싸고 있는 매릴랜드, 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 주 일대에 걸쳐 있고, 우주 사령부는 콜로라도 산악 지대의 땅 밑에 있으며, 전략 사령부는 네브래스카의 공군 기지 밑에 있다고 한다. 작년 9월 11일 와싱턴과 뉴욕에서 테러가 일어나자 부쉬가 전용기를 타고 도피했던 곳이 바로 네브래스카에 있는 땅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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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이 재 봉 (pbpm@chollian.net)

1983년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정치학사)
1990년 미국 텍사스텍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정치학석사)
1994년 미국 하와이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정치학박사)
1996년부터 원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8년 남북 지역간 자매결연 추진을 위해 평양 방문
1999년부터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 대표

현재, 원광대학교 정치행정언론학부 (정치학) 교수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객원교수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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