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10시 남과 북은 `임동원 특보가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로 4월 첫째주중 평양을 방문한다`는 내용을 동시발표했다. 이로써 사실상 1년 넘게 교착상태에 있던 남북관계에, 황사가 걷힌 맑은 하늘처럼 청신호가 켜질지 기대가 된다.

사실 어떤 두 나라의 관계가 교착상태에 있을 경우 사태를 반전시키거나 관계개선을 극대화시키는 데 있어 특사의 역할만큼 적합한 것은 없다. 특히 한반도와 같이 아직 냉전체제가 말끔히 가시지 않고, 따라서 아직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정상화되지 못한 조건에서 특사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아니 할 수 없다.

특사의 역할과 그 중요성은 한반도문제 해결과정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74년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단신으로 평양에 가서 7.4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 냈다. 이후락 정보부장은 대북밀사의 역할을 했지만 사실은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 즉 `상부의 뜻을 받들어` 서명한 특사였다. 다만 주변 환경과 상황 때문에 은밀히 진행해야 했기에 밀사가 된 것일 뿐이다.

가깝게는 2000년 6월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 성사도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북측 송호경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합의한 것이었다. 또한 같은 해 10.12북미공동코뮤니케 발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한 조명록 차수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의 사이에서 합의한 것이었다.

이처럼 특사파견이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임동원 특보의 특사파견과 관련한 남북간 합의배경을 두고 ▲남과 북이 서로 대화를 해야 할 절박한 필요성이 있다는 식의 상투적 시각이나 ▲또는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남과 북이 만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식으로 한가한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

최근 한반도정세와 남북관계는 `특사`가 갖는 의미와 무게만큼 특별나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한반도정세의 주요 축이라 할 수 있는 북미관계는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었다.

지난 1월말 부시 미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해 북측이 `사실상의 선전포고`로 간주한 것이나, 최근 미국의 핵태세보고서(NPR)에서의 `핵공격`에 대해 북측이 `미국과의 합의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것 등등에서 보여지듯, 한반도는 용어상으로는 이미 전시중에 있다. 입심과 담화를 통한 설전(舌戰)이 언제 실전(實戰)으로 비화할지 모르는 형국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측이 `한반도 긴장조성을 예방하며, 6.15 공동선언을 준수하고 남북간 합의사항 이행 문제 등 제반 현안에 관해 남북 최고당국자간의 폭넓은 의견교환을 위하여` 그리고 북측이 `쌍방은 민족앞에 닥쳐온 엄중한 사태와 함께 서로 관심하는 북남관계 문제들에 대하여 협의`하기 위하여, 남북이 특사파견에 합의한 것은 한마디로 6.15 공동선언의 이행문제와 민족문제를 함께 풀고자 하는 양측의 혜안과 용기의 결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번 특사파견이 ▲그간 남북간 합의사항에서 미이행된 이산가족상봉과 장관급회담의 재개 합의로 한정되거나 ▲또는 곧 있을 남측의 월드컵대회와 북측의 아리랑축전의 성공을 위한 남북고위급 인사의 교차방문 성사 합의에 만족하길 바라지 않는다.

물론 이들 사안들의 재개와 성사도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 한반도정세는 그러한 합의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북미관계가 준전시 상황까지 간 마당에 남북대화가 재개된다는 것은 그것도 특사에 의해 재개된다는 것은 무언가 매우 중요한 문제, 즉 민족의 명운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첫째, 사실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이긴 하지만 남북대화 재개만을 위해 남측의 특사가 북측에 꼭 가야만 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냥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정도라면 기존의 장관급회담을 재개하면 되는 것이다. 둘째, 이번 남북 동시발표는 `특사가 남북간에 무엇인가를 합의했다`는 것을 발표한 게 아니라 `남북이 특사파견에 합의했다는 것`을 발표한 것이다. 즉 은밀하게 하기에는 적당치 않고 또 단순히 남북차원에 한정되지 않는 의제가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되는 대목이다.

따라서 지금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다시 상봉해 대화와 회담을 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특사파견이란 사실상 두 번째의 남북정상회담에 비견될 수 있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특사자격인 임동원 특보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이다. 다행히도 임동원 특사는 통일문제에 있어 `김대중 대통령의 분신이자 햇볕정책의 전도사`로 불리우고 있다. 임 특사가 `상부의 뜻을 받들어` 6.15 공동선언의 정신인 민족공조에 입각해 한반도문제를 푸는 첫 단추의 역할을 잘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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