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한(우리땅미군기지되찾기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지난 2월 21일 평택 미공군사령부를 찾은 부시를 규탄하는 집회에서 "미군기지
확장 반대" 조끼를 입고 시위하고 있다

1.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 게 새 집 다오!”

주한미군은 최근 우리의 구전 가요인 “두껍이 노래”를 끈질기게 부르고 있다. “한국아, 한국아, 헌 기지 줄 게, 새 기지 다오!”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은 미군이 처음 만든 말로서, 앞으로 10년 동안 주한미군을 다시 배치하겠다는 것이다. 현재의 미군기지는 옛날에 아무 데나 자리 잡았기 때문에 너무 흩어져 있어서, 속도전이 필요한 현대전에서 효율적으로 관리, 통제하기가 어려우므로 주한미군의 기지를 통폐합해서 다시 배치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새로 만드는 미군기지에는 주한미군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각종 편의 시설을 지어 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계획은 미군이 현재 쓰지 않거나 별로 쓰지 않는 땅을 반환할 테니, 새로 필요하다고 하는 땅은 새로 빌려 달라는 것으로 구체화되어 있다.

이 계획이 언론에 처음 알려진 것은 2000년 5월이지만, 미군이 처음 제안한 것은 1999년 11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였다. 처음에는 미군이 434만 평을 반환하겠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2천여만 평을 반환할 테니 615만 평을 달라는 것으로 바뀌더니, 마침내는 "미군기지와 훈련장 20곳, 4천만 평을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반환하고, 지방의 작은 미군기지를 줄일 테니, 중요한 미군기지들은 주변 땅 75만 평을 사들여 새로 공여해 달라"고 요구했으며, 한국 국방부가 2001년 7월 18일에 이 제의를 받아들임으로써 구체화됐다.

9월 6일에는 조금 더 구체화되어, 미군이 반환하겠다는 땅이 훈련장 3천934만 평과 서울, 의정부 같은 도심에 있는 미군기지 15~20곳 144만 5천 평을 합쳐 4천44만5천 평으로 드러났다.

이 계획은 2001년 11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 합의 각서에 서명한 뒤 공식 확정할 예정이었으나, 그 서명이 2002년 3월 중순과 3월 말로 두 차례 연기된 상태이며, 지금은 마지막 자구 수정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미군이 맘대로 정하는 “헌 집과 새 집”

한미 양국은 2001년 11월 15일 ‘의향서’에 서명했는데, 미군이 반환키로 한 기지와 훈련장은 면적 기준으로 현재 미군에 공여된 전체 땅 7천440만평 가운데 54.3%이며, 기지수로는 레이더 사이트나 탄약고처럼 사람이 주둔하고 있지 않는 곳을 뺀, 전체 미군기지 41곳의 50% 정도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용산의 캠프 킴 1만4천 평과 영등포 그레이에넥스 2천 평, 이태원 아리랑택시터 3천300 평, 을지로 극동공병단 1만3천 평 같은 서울 미군기지 4개 3만2천평은 반환하고, 시설은 용산 기지로 통합한다. 캠프 하우즈나 에드워드 같은 파주, 문산 지역의 미군기지 6개는 반환하고, 동두천 캠프케이시와 의정부 캠프스탠리로 통합한다. 캠프 라과디아, 캠프 시어스 같은 의정부, 동두천 지역의 미군기지 6개도 동두천의 캠프 케이시와 의정부의 캠프 레드클라우드와 합친다.

이밖에 군산 공군기지 주변 땅 26만2천 평도 반환한고 하남시의 캠프 콜번과 원주시의 캠프롱 일부는 평택의 캠프 험프리로 이전하며, 대구 캠프 워커의 A-3 헬기장과 부산의 캠프 하야리아는 다른 곳으로 옮긴다. 인천 부평의 캠프마켓을 비롯한 미군기지 3곳 36만3천평에 대해서는 앞으로 협상을 계속한다.

그러나 그 동안 가장 큰 문제가 됐던 용산 미군기지나 매향리 폭격장, 파주 스토리 사격장, 미2사단 기갑부대 훈련장인 다그마노스 훈련장 같은 곳은 이 계획에서 완전히 빠져 있으며, 의정부와 평택, 포항처럼 오히려 미군기지가 넓어지는 지역도 있다. 의정부의 캠프 스탠리 주변에 20만 평, 평택의 미7공군 사령부 주변에 24만 평, 역시 평택의 캠프 험프리 주변에 17만 평, 포항 지역에 10만 평을 넓힌다는 것이다.

또 이들 지역에는 기지만 넓히는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준다며 아파트를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을 지을 계획도 있다. 구체적으로 평택 캠프험프리에 1천500~1600가구, 평택 송탄 미공군기지에 250~300가구, 왜관 캠프 캐럴에 500가구, 대구에 833가구, 용산 기지에 1066가구, 군산 미공군기지에 500가구를 계획하고 있다.

그밖에 쇼핑센터와 우체국, 학교를 비롯한 생활편의 시설도 건립할 계획이 있으며, 전체 예산은 13억7천500만 달러 정도로 잡고 있다. 이런 공사를 마무리한 뒤 막사 시설도 개선하겠다고 한다.

3. 연합토지관리계획의 배경

연합토지관리계획의 배경은 크게 셋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미국의 주장으로, 현재 미군이 지상군과 재래식 전력 위주로 돼 있어 첨단화하기도 힘들고, 기동성도 떨어지고, 시설이 낡고 비좁아 주한미군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으므로, 효율적으로 지휘·통제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재배치하고, 시설도 개선해 준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주한미군의 전투력 향상에 절대로 필요한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럴 듯한 주장이다.

둘째는, 우리 국방부의 주장과 일부 언론의 분석으로, 우리 국민의 반미 감정을 누그러뜨려 보겠다는 것이다. 매향리나 SOFA, 한강 독극물 무단 방류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 때문에 한국에서 일반인들 사이에도 반미의식이 끓어올랐기 때문에 한미 두 나라 정부가 고심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실제로 민원이 가장 많이 제기되고,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용산 기지나 매향리 폭격장, 스토리 사격장 같은 곳을 빼놓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셋째는, 평화 운동가들의 분석으로 미국이 한국에 MD라는 미사일체제를 구축하려는 계획의 하나이라는 것이다. 미사일 체제에서는 쓸모가 없어질 훈련장을 반환하여 한국 국민의 반미 여론을 잠재운 뒤, 패트리어트 PAC-3, 이지스 구축함 같은 첨단 고가의 무기를 팔고, 요격 미사일 부대를 확대하여 공군 중심, 첨단 무기 중심의 전쟁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연합토지관리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미국 정부의 의도라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말 그대로 “숨은 의도”를 분석한 것이기 때문에 결정적인 증거를 들이밀 수는 없지만, 미국이 그 동안 벌여온 무기 강매와 MD 구축 강행 기도 같은 것을 보면, 가장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겠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약소국들에게 정책을 펼 때는,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이 무엇이든, 언제나 자기 나라의 무기나 물건을 파는 것과 연관짓고 있기 때문이다.

4. 남은 절차와 예상되는 문제들

한미 두 나라 정부 대표들은 두 차례 연기 끝에 2002년 3월 말 최종 합의서에 서명하기 위한 협의를 이미 마쳤으며, 새 땅을 사들이기 위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통보까지 해 놓은 상태이다.

일부 땅임자들은 “그러잖아도 농사짓기 힘든데, 미군기지를 넓힌다면 정부가 빨리 내 땅을 수용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미 두 나라 정부가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반환하는 미군기지의 환경 영향 평가와 원상 복구의 문제이다. 미군은 이 파괴된 환경을 정화하는 비용과 기술을 대고, 원상 복구시켜야 할 의무를 져야 한다. 미군이 수십 년 동안 쓰면서 완전히 파괴해 놓은 훈련장과 기지가 각종 발암 물질로 오염돼 있다는 사실은 필리핀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미군 기지의 환경 문제는 이렇게 파괴된 땅에 들어가 살거나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건강만이 아니라, 나라의 존재 이유와 관련되어 있는 중대한 문제이다.

둘째는 국론 분열을 막는 문제이다. 미군기지가 그대로 남아 있거나 오히려 넓히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막아야 하고, 미군기지가 없어지는 지역과 미군기지를 새로 떠 안아야 하는 지역 주민의 국론 분열도 막아야 할 책임은 한국 정부에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와 일부 언론은 분명 "지역 이기주의"로 매도할 것이며 이미 그렇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국론 분열과 지역 이기주의는 주민들이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예속적인 한국 정부가 불러일으킨 것이며, 미국이 ‘이 땅을 지켜 준다’고 하는데, 어느 지역에서건 핵쓰레기장 취급을 받는 것도, 국민의 ‘배은망덕’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자업자득이다.

어쨌든 이런 국론 분열의 틈새에서 연합토지관리계획은 그 자체가 폐기될 수도 있다. 벌써 일부는 서명도 하기 전에 백지화되기도 했다. 대구 남구의 헬기장 이전 계획이 그렇다. 남구의 헬기장을 동구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동구 주민들이 집단으로 들고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석 달도 채 안 되어 국방부는 “백지화하겠다”는 공문을 동구청장에게 보냄으로서 수습을 해야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동구의 주민들은 승리감에 젖어 있지만, 남구의 일부 주민들은 “동구 사람들 때문에 우리 동네만 계속 피해를 보게 됐다”며, 엉뚱하게 화살을 동구 주민들에게 돌릴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것은 국론 분열이고, 국가적 낭비인 게 분명한데, 이런 현상을 지역 이기주의로 매도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런 경우는 또 있다. 연합토지관리계획과 별개처럼 보이면서도 하나로 묶여 있는 용산 미군기지 지방 이전 문제의 경우가 그렇다. 1996년 12월 말까지 용산 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두 나라 대표가 합의 각서에 서명해 놓았지만, 평택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 투쟁에 한미 두 나라 정부는 무릎을 꿇은 적이 있다. 그런데도 일부 몰지각한 서울 사람들은 자기들의 지역 이기주의는 “민족 자존심 회복 운동”으로 미화하고, 평택 사람들의 지역 이기주의는 “매국적 지역 이기주의”로 매도하고, “수도 서울 한복판에 있는 것보다는 이미 미군기지가 있는 시골로 옮기는 게 나은 것 아니냐”며 아직도 용산기지 지방 이전 운동을 벌이고 있다.

셋째는 미군기지 이전 비용 문제이다. 그러잖아도 미군은 미군기지의 이전 비용을 아무 근거도 대지 않은 채 터무니없이 높게 요구하고 있다. 용산 기지의 경우 처음에는 17억 달러를 요구하더니, 지금은 어느 새 200억 달러라는 계산까지 나오고 있다. 한미 두 나라 정부는 앞으로 10년 동안 미군기지 재배치에 필요한 돈을 2조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1조3천억∼1조4천억원은 미국이 부담하고, 나머지 7천500억 원 정도는 한국 정부가 대기로 했다. 국방부는 이번에 미군한테 돌려받는 땅 가운데 사유지를 뺀 395만 평을 팔아 이 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많은 돈을 우리가 댄다고 우리 정부에 어떤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정부는 그저 돈만 댈 뿐이다. 미군은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의 예를 들면서, “세계 1등 국가의 군인인 미군의 생명을 그렇게 부실한 한국의 건축 기술과 부패한 한국 공무원들에게 맡길 수 없기 때문에, 설계부터 시공업체 선정, 자재 구입, 감리 같은 모든 과정은 미국이 할 테니, 한국은 돈만 대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아 버리는 문제이기도 하다.

5. 결론과 대안

그렇다면 이 문제투성이인 연합토지관리계획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선 연합토지관리계획은 전면 폐기해서는 안 된다. 좀 갑갑해 보이더라도 전면 수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계획에 따라 미군기지가 없어지게 되는 지역에서는 이미 이 계획을 적극 찬성하며, 자기 지역 개발에 대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계획에 따라 반환하기로 한 미군 기지와 훈련장은 마땅히 돌려 받아야 한다.

그러나 새로 미군기지를 확장하거나 신설하려는 계획은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군기지 75만 평을 신설 확장해야 한다면, 이번에 4천445만 평을 반환하고 75만 평을 새로 빌려줄 것이 아니라, 4천445만 평에서 75만 평을 뺀 4천370만 평만 반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미군기지 문제를 이전이나 축소 통폐합 같은 방식으로 풀려고 하면 늘 이런 여러 가지 문제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미군기지 문제는 “반환”으로 풀어야 한다.

어떤 명목을 내세우더라도 미군기지를 단 한 평이라도 넓히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미군기지가 넓어지거나 새로 생기는 지역에는 미군이 영구 주둔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런 지역 주민들은 평상시에는 미군 범죄와 퇴폐 환경 확산, 자연 환경·인문 환경 파괴 같은 것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고통을 당하다가, 전쟁 같은 유사시가 되면, 집중 공격 목표가 될 것이다. 긴장만 고조돼도 테러를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한 채 살아가야 할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이들 지역 주민들은 특히 역량을 모두 모아야 할 것이며, 시민사회운동 세력은 이들의 투쟁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연합토지관리계획과 MD의 연결 고리를 끊어 미국의 한반도 전쟁 기도를 중지시키는 것은, 남북 화해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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