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차세대 전투기 기종 선정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잡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이 우리에게 사기를 요구하고 있는 F-15K 전투기가 이미 낡은 기종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기종이 결국 선정될 것이라는 의구심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압력설도 제기되고 있고, 국방부의 평가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는 우리가 우리 기술로 우리 국방을 책임지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완제품인 무기를 구입할 것이 아니라,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도입해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라도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나간다면 언제든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는 그러한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기는커녕 그것을 마치 커다란 죄나 되는 양 생각하고 있지요.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고려말에 화약 기술을 도입해서 화약 무기를 개발했던 최무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무선의 업적은 중국이 유출을 금했던 화약 기술을 도입한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였고, 나아가서는 그것을 통하여 그때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까지도 일으켰다는 점입니다.
 
최무선은 원래 과학자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개경에 살던 관리였는데, 권력층의 부패와 무능력 때문에 남달리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더욱이 그 무렵에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했는데도 이에 별달리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상황을 바라보며 몹시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왜구를 쳐부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던 중에 왜구가 뭍에 오르기 전 바다에서 화공으로 섬멸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약의 성능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려에서는 이미 12세기부터 외적과 싸울 때 화약 무기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의 화약 제조법으로는 물에서 싸울 때 화약 무기를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화약 제조법에서 앞서 있던 중국의 기술을 익히기 위해 중국 상인들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중국에서는 화약 제조법을 극비 사항으로 취급하여 외국인에게 절대 가르쳐 주지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최무선이 화약 제조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남다른 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관직에서도 물러난 채 자신의 가족, 노비들을 모두 동원하고 자신의 재산을 털면서까지 화약 제조법을 익히는 데 혼신의 힘을 다 쏟았습니다.
 
마침내 선진적인 화약 제조법을 익히는 데 성공한 최무선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화약을 실전에 응용하기 위해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그는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질산칼륨 화약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합니다. 그의 뛰어난 점은 단지 화약 제조법을 익혀 화약과 화포를 제작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화약 무기를 새로운 방법으로 개발해서 함선에서 실전에 쓸 수 있게 했다는 데 있습니다. 화약 무기를 함선에서 쓸 수 있게 만들어 낸 것은 우리 나라가 전세계적으로 처음이었습니다.
 
최무선은 화약의 대량 생산 방법을 개발하고, 함선에서도 쓸 수 있도록 새로운 재질의 화약과 화약 무기를 개발함으로써, 그 무렵 고려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왜구를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화약과 화포 제작에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 낸 뒤 고려 정부에 건의하여 화통도감을 설치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관의 책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때 만들어진 대표적인 화약 무기는 대장군포, 2장군포, 3장군포, 육화석포, 화포, 신포, 철령전, 철탄자 같은 여러 종류의 포와 포탄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무기들은 모두 전함에 설치되어 수전에 쓰였습니다. 그런데 최무선이 화약 무기를 개발하고 화통도감이 설치된 때는 1377년으로 고려 정부는 권문 세족들의 횡포로 부패할 대로 부패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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