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진(중앙대 국제관계학과 겸임교수, jsjpol@yahoo.co.kr )


최근 차세대전투기 기종선정 문제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하지만 기종선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합리성을 단순히 모두 정부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워낙 복잡미묘한 한국사회내의 역학관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관성적인 한미동맹관계의 문제점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우리 한국사회 일반의 역량과 직결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 영역과 시민사회 영역간의 상호보완은 절실한 문제

기술이전, 가격 등 여러 측면에서의 내부적 평가가 사실상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최종결정은 유보되고 있다. 정부가 미 보잉사 전투기를 거부할 경우, 불을 보듯 뻔한 부시 행정부의 유무형의 압력과 국내 일부의 왜곡된 여론의 질타를 어렵지 않게 예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최고정책결정자의 부담과 어려움은 누가 감당해줄 것인가?
  
이 문제에 있어서도 여타의 통일, 외교관련 사안처럼 우리 시민사회 일반의 중요성을 거론치 않을 수 없다. 우리네의 건강한 시민사회 일반이 이를 뒷받침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와 사적 영역사이에 존재하는 중간매개체로서의 공적 영역, 혹은 非국가적이고 非시장적인 공적 영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침이 없다. 현시점에서 무엇보다 국가 영역과 시민사회 영역간의 상호보완이 절실한 문제이다. 국가차원의 "어렵고 힘든 결정"이 내려지는 전후과정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국내적 지지자원이 부족할 경우,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 시민사회의 역량 축적"이라는 맥락에서, 지난 2월말 어려운 여건속에서 힘들게 성사된 민간차원의 `새해맞이 남북공동행사`에 참여한 한 사람(민화협의 일원)으로서 몇 가지 단상을 밝혀보고자 한다. 새해맞이 행사는 부시의 `악의 축` 발언 이후 한반도의 긴장을 녹여나갈 단초로서의 성격을 지님은 주지의 사실일 것이다. 새로운 `민주화` 시대, 분단과 평화문제를 일구어가는 책임있는 민간(시민사회 영역)의 노력이 증대되어 갈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만 함은 당연할 것이다.
   
그동안 부시 이래의 대북 강경 기조 가운데, 특히 9. 11 테러 이후 사실상 북측이 느끼는 주관적 "안보위협, 안보딜레머"가 북측 입장으로서는 한층 악화되어 왔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테러 이후 한반도에 미군항공전력의 추가 배치, 그리고 "아프간 이후의 공격대상은 이라크, 북한"이라는 일련의 보도, 대미를 장식한 `악의 축` 발언 등을 감안해볼 때, 북측의 격렬한 반발기조도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남측으로서는 어렵사리 봉합된 부시 방한 이후의 미묘한 시점에서 일부 대표단(통일연대 소속 인사 40여명)의 방북을 불허하게 되었으며, 북측도 많은 고민이 있었겠지만, 이를 형식명분으로 내세워 행사 자체를 취소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의 지적처럼, 민간공동행사의 무산이라는 형식적 결과에도 불구하고 뭔가 새로운 희망과 내일을 기약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북측의 "(행사 취소관련) 성명서를 기자들이 잘 연구해 보라"는 언급 혹은 "북측 대표단 100여명의 평양으로부터의 금강산 도착" 사실 등은 북측의 복잡미묘한 고민의 일단을 잘 보여주었다. 이는 민간교류의 지속이라는 당위성은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이번 국면에서 부시의 대북 압살기조에 대한 비판에 더 비중을 둔 "쉽지 않았던 결정"으로 보인다. 남측의 입장으로는 이런 논리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나름대로 이해할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남측 입장으로는 대내외정세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니까 더 더욱 민간교류의 단초로서 이번 행사가 꼭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던 것이고, 이에 따른 아쉬움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기계적인 결과가 문제가 아니라 북측도 민간교류 지속의 당위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고, 남측도 민간교류에 대한 새로운 경험과 간절한 의지를 재확인하는 장이 되었기에 그 나름의 의의는 충분할 것이다. 분명 민간차원의 교류는 일시적 진퇴를 거듭하는 일련의 연속과정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새해맞이 행사의 진행절차와 과정상에서 꼭 되짚어야 할 부분` 몇 가지

여기서 필자는 향후 계속될 수밖에 없는 민간교류의 연속성과 양적, 질적 노하우의 축적이라는 맥락에서 이번 여정의 "행사 결과"가 문제가 아니라 "그 진행절차와 과정상에서 되짚어야 할 부분" 몇 가지를 거론코자 한다.

무엇보다 금강산 현지에서 지도부와 일반 대표단 일원들과의 협의, 논의과정이 거의 생략, 무시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한마디로 현장에서 최종 행사무산이라는 사실만 통보받았을 뿐, 그 전후과정에 대한 적절하고도 충분한 설명과 보고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많은 인원이 출발했고, 행사진행의 효율성을 위해 많은 부분들을 지도부와 실무진에 위임(委任)하였기에 모든 것을 보고(報告)받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 중요한 큰 가닥은 대표단과 공유하려는 노력이 있었어야 했음은 당연한 이치이다. 대표단이 행사의 효율성을 위해 지도부에 실무진행과정을 위임한 것에 불과한데, 위임된 권한을 행사하여 얻어진 결과는 당연히 위임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수준 및 범위에서 보고, 설명되어야만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필자의 경우, 남북민간대화의 어려움, 특수성을 현지에서 생생히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이 곧바로 소박하지만 우리 민간영역의 역량축적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러한 핵심들이 반드시 구성원들과 공유되어야만, 개별 NGO들의 준대표격으로 온 이들 구성원들이 남측으로 돌아갔을 경우, 그 소속단위에서 나름대로의 설명과 또 그 일원들과의 경험을 같이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민간교류의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는 특정 단체나 소수 특정인들의 개별 경험에 머물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2박 3일간의 여정에서 일어났던 많은 부분들을 서울집에 도착하여 관련사이트와 관련기사를 검색해 보고서야 "북측의 취소성명 내용", "장전항 도착시 북측 민화협 허혁필의 영접사실" 등 비로소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졌을 정도이다. 당시 현장에서는 많은 이들이 어설픈 눈치와 귀동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틀째, 북측의 행사취소 발표가 있었을 때, 그 성명서 정도는 빠른 시간내에 회람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야만 중지를 모아 남측의 성명서도 발표될 수 있는 것일 텐데. 남측 언론의 원만한 협조를 견인하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실제 대다수 대표단 일원을 무시하는 듯한 진행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행사가 전체 대표단을 위한 행사였는지, 아니면 남측 기자단을 위한 행사였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음은 결코 필자 혼자의 생각이 아니었다.

여러 정황상 기자단에 성명서가 먼저 배포될 수밖에 없겠지만, 기자단 배포후 3-4시간 이후로라도 일반 대표단에게도 회람되어야만 옳은 것이 아닌가. 아니면 사전에 조직된 부문별 모임을 통해서라도 회람되어야만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만 일각에서 주장한 것처럼 공식행사는 무산되었지만, 비공식 부문별 행사만이라도 유인할만한 최소한의 가능성이라도 도출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면 전체 대표단이 우리 나름의 내부적 의지와 역량을 축적하는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미묘한` 부분에 대해 먼저 쉽게 총의를 모을 수 없는 어려운 여건을 굳이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최소한 형식적, 사후적으로나마 진행과 관련한 동의절차를 갖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도부는 이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에 대해 "전체회의를 열만한 공간확보가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해명을 하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크게 추운 날씨가 아니었기에 야외회의도 가능했고, 정 아니면 각 부문별 회의 내용을 종합하려는 노력도 가능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절차적인 정당성`을 결여해선 안돼

3일째 일정에 대해서는 그 전날 처음이자 마지막 전체모임을 통해 몇 가지 진행과정상의 문제제기와 더불어 시간관계상 남은 일정의 방향성에 대해 지도부에 위임한다는 것으로 마무리된 바 있다. 그렇다면, 3일째 일정 진행 이전에 전날 위임된 사항에 대한 지도부의 회의결과를 대표단에 대해 설명한 연후에, 진행시켜야만 하는 것 아닌가? 전날 밤 행사진행과 관련해 지도부의 실책이었다는 `표면적 사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다음날 똑같은 문제점이 그대로 재연(再演)되었다는데 적잖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적으로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이 무시되었다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외에도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문제점들이 많다. 예컨대 주요 프로그램으로 예정된 "각 부문별 남북모임"의 경우에도, 대표단 각자가 어떤 부문에 `배치`되었는지 하는 기본사실도 사실상 행사무산 직전 시점에 알려주는 무성의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통일교육원에서의 사전 전체 모임에서 거론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당시에는 금강산 가는 선상에서 알려줄 것이라는 지도부의 언급을 믿었을 따름이다.

만약 금강산 오는 선상에서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 치더라도, 첫째날 밤의 식당에서 이 사실을 비롯하여 그때가지의 진행상황(실무협상단의 충분한 브리핑, 통일연대 불참으로 인한 상황 변화 가능성, 허혁필 위원장 영접 소식 등등)을 충분히 보고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일부 명망가의 인사시간"으로 할애되어 버렸다. 인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행사 본질과 관련, 우선 순위가 있지 않는가. 본질적으로 이번 행사를 주관한 지도부들은 그들과 일반 대표단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였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오류는 철저히 바로잡아져야 할 부분이다. 향후의 민간교류 행사를 위해서도 집행부의 균형잡힌 평가가 절실한 부분일 것이다.  
  
필자가 여러모로 안타까운 것은 많은 이들이 "절차적인 정당성 결여, 무시"를 역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도부는 이 문제점을 "상대가 존재하는 남북대화의 특수성" 혹은 "민간교류의 어려움"으로 인해 발생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오인하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혹은 "민화협 내부의 좌우간의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혹은 "행사진행 실무요원의 부족 탓"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분명 이런 요인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물론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어려운 조건하의 통일관련 NGO의 여건이나 혹은 절차상의 문제로 덮어둘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감히` 이를 거론하는 것은 앞으로 재개될 남북민간교류 영역에서 결코 재현되어서는 안되는 "상식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독선을 벗어난 지도부의 공공성과 책임성, 그리고 총체적인 민간통일역량의 확대라는 커다란 원칙에 더 더욱 고민할 것을 강력히 주문코자 한다.      
  
그래도 민화협 같은 NGO는 시민사회의 공공재(公共財)

잘 알다시피 특히 민화협의 경우, 과거 오랜 권위주의체제를 벗어난 이후, 사실상의 첫 수평적 정권교체로 어렵사리 출범한 대표적 민간통일관련 범국민협의체이다. 앞서 강조한 바 있지만, 국가와 사적 영역사이에 존재하는 중간매개체로서의 우리 사회의 소중한 대표적 공적 영역인 것이다. 더 나아가 필자는 민화협 같은 존재는 앞으로 공익의 확대를 위한 차원에서, 국가와 시민사회가 유기적으로 상호보완적일 수 있다는 본질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훌륭한 모델로서의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필자가 오해를 무릅쓰고 매우 힘들게 이를 지적하는 것은 다름아니라, 민화협 같은 NGO는 우리 모두의 많은 관심과 애정이 절실한 대상이고, 넓게는 남북화해협력, 좁게는 남북민간교류의 중요성이 긴요해지는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보다 성숙시키고 키워나가야 할 주요한 공공재(公共財)이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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