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철학을 갖고 있다. 철학은 보통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으로도 불린다. 세계관이란 세계에 대해 갖는 관점과 견해를 말한다. 대개 사람의 모든 언행(言行)은 그의 세계관에 기초해서 나오기 마련이다. 사람이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그래서 특히 지도자나 정치가에 있어 세계관은 매우 중요하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한(離韓)한지 10여일이 지나고 있지만 왠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게 있다. 그건 다름아닌 부시의 대북관이다. 부시의 대북관은 물론 그의 세계관의 한 발로이다.

◆ 긴가민가하던 부시의 세계관이 명확히 드러난 것은 지난해 9.11테러사태 이후이다. 9.11테러를 당한 부시와 미국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어려울 때 본성이 나오기 마련이다. 9.11테러 후 부시는 아프가니스탄을 향해 대테러전쟁을 벌이면서 세계를 테러(지원)국가와 반테러국가 둘로 나눴다. 그리고 모든 국가들더러 미국의 뒤꽁무니에 줄서게 만들었다. 대아프간 전쟁에서 이기자, 이번엔 다른 상대 즉 이라크, 이란, 북한을 향해 `악의 축`이라고 규정했다. 이분법적 사고가 신앙화해 간 것이다.

◆ 이처럼 부시는 세계를 오직 둘로 나누고 있다. 세계를 `테러국가와 반테러국가`로 나누고 또 `선과 악`으로 나눈다. 그리고 자기와 미국은 늘 정의(반테러)와 선의 편에 서 있다고 강변한다. 이분법적인 사고는 자기만이 늘 옳으니 무조건 자기 편에 서야 하고, 자기와 같은 편이 아닌 것은 믿지 못할 뿐더러 또 없애야만 하는 것이다. 부시의 이러한 이분법적인 세계관은 북한에 대한 관점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 부시의 공개적인 첫 대북관은 지난해 3월 김대중 대통령이 워싱턴에 갔을 때 한-미정상회담에서 나왔다. 그때 부시는 "김정일은 못믿을 사람"이라고 말했다. `수령-당-대중이 운명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북한사회의 특성상,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못믿겠다는 것은 `북한`과 `북한체제`를 못믿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의도이다. 부시는 처음부터 북한을 자기와 다른 편으로 규정해 놓은 것이다.

◆ 그렇다면 북한과 대화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못믿는 상대와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부시는 지난해 6월6일 대북 대화재개를 선언하면서 세 가지 전제조건을 달았는데 이는 대화를 하지 말자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북한은 대화를 거부했다. 이어 부시는 대아프간 전쟁에서 승리를 목전에 두자, 대테러전쟁 타켓을 새로 조준하면서 `아프간 다음은 북한`이라 큰소리쳤다. 또한 올해 들어서는 1월말에 북한 등을 가리켜 `악의 축`이라 규정했다. 자기 편에 선선히 서지 않는 북한 등을 `불의와 악`의 정상에다 올려놓은 것이다.

◆ 이번 방한을 통해 부시의 대북관의 결정판이 나왔다. "한국 국민 모두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부시는 "내가 `악의 축`이라고 표현한 것은 북한 정권을 말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아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깊은 애정이 있다"며 이른바 `북한 정권과 주민의 분리`론을 폈다. 이는 흔히 북한을 비난할 때 많이 쓰이지만 가당치 않은 논리이다. 세계를 `선과 악`, `테러와 반테러`로 나누는 부시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연장해서 북한에 대해 `정권과 주민의 분리론`으로 나온 것이다.

◆ 부시의 이러한 철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분열의 철학`이다. `수령-당-대중이 운명공동체`라는 북한의 `단합의 철학`을 깨기 위해서는 그 반대인 `분열의 철학`이 필요하다. 북한의 정권과 주민을 끊임없이 분열시켜야만 한다. 분열되어 있지 않아도 분열되어 있다고 주문(呪文)처럼 늘 뇌까려야 한다. 그러면서 북한(정권)이 붕괴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정권과 주민이 분리되어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고 또 부시가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 부시는 2000년 대통령선거 당시 50% 이하의 득표율에다 플로리다 주에서의 투개표 소동, 그리고 고어보다 적은 표를 얻어 `선거에서는 졌으나 선거법에 이겨` 대통령이 된 경우다. 그렇더라도 부시와 미국민이 분리되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소 비민주적이고 못마땅하더라도 그 나라의 체제와 제도에 의해 정권이 들어서면 다른 나라가 왈가왈부할 일이 못된다.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체제와 제도를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그런데 한 나라의 대통령을 넘어 전세계의 지도자로 자처하고 있는 부시가 세계를 둘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세계관과 분열의 철학을 갖고 있다면, 분명 세계는 부시의 재임기간을 고통과 악몽의 세월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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