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군사전문가)


사람 잡는 선무당

지난 1월29일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연이은 그의 대북 발언을 보면 이 사람이 정말 뭘 모르긴 한참 모른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대통령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보좌관들 수준은 더 걱정된다. 한반도의 군사적 상황에 대해 아예 무식함으로 밀어붙이는 그 배짱, 그 뻔뻔함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말을 잃는다.
 
그중 백미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를 후방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북한의 기갑, 포병 등 주요 전력이 평원선 이남에 80%이상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듯 하다. 수도권을 겨냥한 1만5천문의 야포전력이 가장 위험하다고 한다. 따라서 이 전력을 후방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얼핏 보면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 주장이 나오면 나올수록 대한민국 국방부가 안보를 한다는 것이 난망하게 되고 말았다.
 
북한이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전력을 후방으로 빼는 것이 가능하다. 별도로 토지매입을 할 필요가 없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전력을 전방배치한 한국군이 후방으로 전력을 빼려면 신규 토지매입비로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써야 한다. 돈이 있다 하더라도 각종 민원을 고려하면 후방으로 뺄 자리조차 없다. 전방에 전력을 그냥 놔두는 수밖에 없고 다른 부대배치를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어렵다.
 
그뿐인가. 양쪽이 똑같이 전방전력을 40km 후방으로 뺀다고 가정하자. 휴전선에서 서울 거리가 40km다. 결국 서울 앞의 전방을 무장해제하자는 것이다. 반면 휴전선에서 평양 거리는 100km가 넘는다. 40km 빼더라도 평양방어에 결정적 타격을 입는 것이 아니다. 재래전력 후방배치로 안보의 결정적 타격이 오는 쪽은 북한보다는 남한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 혼란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무식이 초래한 대혼란

또한 야포의 사정거리 면에서도 그렇다. 북한 야포의 사정거리는 논자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60km, 크게는 70km를 본다. 반면 한국군 야포의 사정거리는 1994년부터 꾸준히 증강되어 왔음에도 아직 2,30km, 일부는 40km까지 간다. 야포를 후방배치해서 서울이 안전해지려면 못잡아도 70km 후방으로 빼야 한다. 70km면 한국군 주요 전력을 수원 이남으로 빼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미친 짓을 국방부가 할 리도 없고 북한에 제안할 리도 없다.
 
이 때문에 국방부의 [군비통제기본정책서 2000]에서도 일찍부터 야포의 후방배치와 수도권 안전지대 개념을 설정해왔으나 현실성이 없어 공개화하지도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이러하다.

부시의 재래무기 후방배치 주장을 북한이 덥석 받아 안는 것이다. 그래 좋다, 남북이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재래무기를 후방으로 빼자, 이렇게 나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오히려 우리 국방부가 가장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한국의 보수우익을 낭패로 몰고 가고 있다. 문제는 아직도 국내 보수세력이 이에 대해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조선일보는 작년부터 부시 대통령이 북한 재래무기 후방배치를 말하자 바로 지지를 표명했다. 조선일보는 부시가 말하니까 동조한 것이지 국가안보를 위해 동조한 것이 아니다. 조선일보의 안보주의는 그 실체가 없으며 기실 알고 보면 친미주의다.
 
그러면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보수세력은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한국의 안보를 위해, 서울의 안전을 위해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규탄하고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왜 보수세력은 가만히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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