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거쳐 19일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 내에서는 반미나 미국에 대한 항의가 소수에 그쳤으나 이번에는 지난 1월 29일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의 `악의 축` 발언을 한 것을 계기로 더욱 거세어지고 있다. 

반공의식이 남다른 실향노인들조차 "부시의 막말로 이산가족 방문이 어려워졌다"고 성토하며 심지어 국회내에서도 개혁적 여야 국회의원 16명이 우려를 표하는 공동성명을 냈는가 하면 여당대표의 국회연설에서도 이에 대한 항의가 표현되었다.

부시 방한을 하루 앞둔 18일에는 한총련 학생들이 주한미국상공회의소를 점거하고 미대사관으로 진격하다가 수십 명이 연행되는 것을 비롯해서 각계각층의 평화선언과  시국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주한 미국대사는 연일 햇볕정책 지지를 밝히고 파월 미 국무장관은 북한은 공격대상이 아니라고 발언하였으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부시 방한에서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밝힐 것이라고 하는 등 사태 진화에 나서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대중적 항의의 목소리를 담아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미국의 대북 강경 분위기의 반전이 꾀해질 것인가?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고 한미간에 굳건한 공조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낙착될 것인가?
 
전반적인 분위기로 판단해 볼 때,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서로의 체면을 세워주는 선에서 미국의 실리를 챙기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일본에서 부시 대통령은 `악의 축` 발언에 대한 우려 제기에 대해 “그들(동맹국)은 내 발언을 이해하고 있다”고 기본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렇다면, 부시가 한국에서 악의 축 발언을 취소할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고 김대중 대통령이 요구하는 대북대화의 필요성을 근원적으로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단지, 그들이 요구하는 북의 재래식 무기까지 포함한 무조건 대화에 응해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되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한미정상회담은 한편으로 악의 축 발언과 대화 제스츄어 지지를 어정쩡하게 봉합하는 수준의 합의 밖에 제출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리라.
 
오히려 미국은 남북대화의 필요성이라는 아무 내용없는 원칙에 동의하는 대가로 한미 군사공조의 중요성을 얘기하며 F-15K를 비롯한 미국의 무기를 판매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보여진다. 이미 수 조원에 달하는 차세대 전투기 기종 결정이 유럽 쪽에 유리하게 전개되다가  배정 기준이 달라진데다 4월로 연기된 데는 미국의 보잉사에 넘기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 누구의 눈에도 명확해 보인다.

문제는 수 조원의 무기를 사준다고 미국이 햇볕정책을 지지할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은 단순히 엔론사태를 무마하거나 중간선거를 겨냥한 것이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보다 노골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제패하려는 제국주의적 본성에 기초해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과학적 분석과 올바른 대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부시의 악의 축 발언과 각국의 군사비 지출과 무기 수출 현실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과연 누가 악의 축인가에 대해서 사람들을 헛갈리게 만들고 있다. 미국의 2003년 국방예산안은 4백80억 달러 증액을 포함해서 3천9백60억 달러로 스타워즈 개시 이후 최대규모의 국방예산 증액이며 전세계 군사비의 약 40% 가까운 규모이다.

현재의 미 국방비는 4-500억 달러 수준인 러시아, 일본, 중국 등에 비해서도 10배 가까운 어마어마한 숫자이며 잠재적 적국인 러시아, 중국, 북한, 이라크, 이란, 쿠바, 리비아 등의 총군사비의 2배가 넘는다. 

미국은 현재 대륙간 탄도미사일 2,000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3,456발을 포함해서 11,370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지구를 수 백 차례 멸망시키고도 남을 규모이다. 냉전시대 미국의 무기수출은 전세계 무기 수출의 약 25%를 담당했던 데 비해 냉전이 지난 현재 94년에서 200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세계 무기 시장 총계약액 1,065억 달러 가운데 65%를 차지하고 있으며(미계약분 제외) 그 수출항목에는 핵 부속품 및 장비와 미사일이 포함되어 있다. 이라크 정권의 생화학무기 개발을 비난하고 있는 미국은 세계 생화학무기 금지 협약에도 가입해있지 않은 상황이다.
 
9.11테러 이후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승리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이 전쟁은 우리대에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라고 선언한 것은 결국 미국의 의도대로 세계가 굴복할 때까지 전쟁은 계속될 것이며, 그 핵심에 북한을 포함한 악의 축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악의 축` 발언은 미국의 동북아 지배를 위한 축이 되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놓치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의 표현이며 정상회담 이후에도 미국은 지속적으로 반테러 투쟁과 확전의 논리로 치달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상회담 자체에 대한 계기적 투쟁이 아니라 이제부터 본격적인 반제평화의 기치를 높이 드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가 이제는 대북대결과 전쟁의 분위기로 휩쓸리고 있다. 북한과 대화를 하는 것이 좋으냐, 압박을 하는 것이 좋으냐의 정책 선택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생존이 벼랑 끝 위에 서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 야당이 당리당략적으로 반공대결주의를 취하고 미국에 굴종한다면 우리 민중은 단호하게 `아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부시의 눈치를 보며 햇볕 정책마저 제대로 밀고 나가지 못하는 김대중 정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민중이 각성하고 일어서서 위대한 힘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근대사의 교훈은 민족의 운명은 외세나 상층 엘리트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민중 스스로가 지켜내는 것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깨어 일어나 싸울 뿐이다. 부시의 연두교서 마지막 말처럼......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또한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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