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활웅(재미 통일문제 자유기고가)


이란과 이라크와 더불어 북한을 "악의 축"에 속하는 나라로 지목하고 미국이 다음에 공격할 나라가 될 수 있다는 부시 미대통령의 언명(지난 1월 29일 연두교서에서)은, 미국이 그 동안 민주, 공화 양당의 협의하에 대북정책의 기조로 채택하고 지켜오던 "페리"보고서의 원칙이 공식으로 폐기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은 사실상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철회를 의미

이는 또한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사실상 철회됐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한국정부가 전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당황하고 있는 것은 소위 한미동맹관계나 한미일 공조체제라는 것이 다 한낱 빚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부시의 발언에 대해 미국 내에서는 비판적 시각보다 지지하는 여론이 우세하다. 그러나 국제 여론은 미국의 독선적인 확전기도에 매우 냉담하며 특히 북한을 이란이나 이라크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당사자인 이란이나 이라크가 펄쩍 뛰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북한도 이를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규탄하면서 공격받으면 결사항전한다는 자세를 다짐하고 있다.
  
김 대통령은 이런 사태를 맞아 한반도에서 절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면서도 "지금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동맹관계"이며, "특히 반미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경고하였는데 이것은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고 싶어하는 나라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다. 그런데 한반도의 전쟁을 막아야 한다면서, 오히려 전쟁을 하고자 하는 나라와의 동맹관계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논리인가?
  
이번 부시의 언명과 그에 대한 미국의 관변, 언론 및 민간의 일반적인 지지는 미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신의가 없으며 또 예측불가한 나라인가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1993년 6월 11일과 7월 19일, 그리고 1994년 8월 12일 세 번의 공동성명으로 북한과 여러 가지 원칙, 특히 상대방에게 위협하거나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이 원칙은 또 1994년 10월 21의 북미기본합의에서 재확인되어 있으며, 가장 최근에는 2000년 10월 12일 올브라이트 미 국무부장관과 조명록 북한 특사간의 공동성명에도 재확인되어 있다.
  
올브라이트-조명록 공동성명은 또 여러 가지 합의중에 특히 1) 한국휴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2) 상호 적대의사의 철회, 3) 상호불신의 해소와 신뢰구축, 4) 상호주권의 존중과 내정불간섭, 5) 양국관계의 근본적 개선, 6) 테러방지를 위한 상호 협력, 및 7) 핵 문제와 미사일 문제 등 현안의 협상을 통한 해결을 천명하였다. 이것은 미국이 이제는 북한과의 전쟁관계와 적대정책을 청산하고 정상적인 국가간의 평화적 관계로 전환하겠다는 의사의 분명하고 구체적인 표현이었으며, 북한으로서는 그간 8년동안에 걸친 대미외교를 통하여 힘들게 따낸 결실이었다.    
  
100분의 1의 전쟁 가능성도 절대 없도록 해야

그런데 그로부터 3개월 후에 취임한 부시 대통령은 북미공동성명으로 약속한 대북대화와 관계개선의 절차를 밟기를 거부함으로써, 북미관계 뿐 아니라 남북관계마저도 교착상태에 빠지게 하였다. 부시는 그러한 조치가 국제신의에 위배된다는 점을 늦게야 깨달았는지 6월에는 돌연 대북대화의 무조건 개시를 지시했다고 언명하였다.

그러나 대북대화의 내용에는 북한의 재래식무력의 감축이 포함돼야 한다는 토를 달았다. 북한은 그런 전제조건이 달린 대회에는 응할 수 없다면서, 2000년 10월의 공동성명의 연장선상에서 대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나, 미국은 북한이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하자는 데 불응하고 있다고 비난하여 왔다.
  
이런 상황에서 돌연 튀어나온 부시의 대북한 비난과 협박은 북한에 대한 약속위반일 뿐 아니라 소위 동맹국이라는 한국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그것은 또한 세계 최강국이란 힘만을 믿고 미국의 일방주의를 강요하며 온 세계를 지배하려는 오만의 노골적인 표시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태에 처해 한국의 관계당국과 정계, 학계 및 언론에서는 부시의 발언은 북한에게 대화를 촉구하며 핵과 미사일 계획을 포기시키기 위한 압력을 가하자는 것이지 실제로 북한을 공격할 의사나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라며, 과잉반응을 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사태의 분석으로서는 10중 8, 9 옳은 말일 수 있다. 그러나 10중 1, 2의 가능성이라 하더라도 막상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면 제일 혼나고 골탕먹고 손해 보는 것은 남북을 통한 우리 민족이지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무슨 일이든지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는 나라이며 부시는 자신의 이해득실(그의 첫째 다짐은 그의 아비처럼 재선에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에 따라 전혀 예측불가한 일을 겁 없이 저지를 수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전쟁가능성을 봉쇄한다는 것은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의 가능성도 절대 없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북한은 물론 미국의 공격에 대비한 모든 대책을 강구할 것이겠지만, 남한으로서도 미국이 절대로 북한을 공격할 수 없도록 가장 효력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미국의 북한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남한의 조치

그 가장 확실하고 틀림없는 방법은, 1)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며, 2) 미국은 1993년이래 수차에 걸쳐 북미공동성명에서 약속한대로 북한에 대해 절대 위협하거나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재 천명하고 또 북미간 모든 현안문제를 오직 평화적인 협상을 통해서 해결해야 하며, 3) 만약 미국이 북한에 대해 무력공격을 감행하는 경우, 한국의 정부와 국민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파기하고 미국에 대한 협력을 거부한다는, 세 가지 원칙을 여러 민간단체들과 국회 및 정부가 공식으로 확인하고, 그 뜻을 2월 19일에 방한하는 부시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미국이 아무리 오만 방자한 나라라 해도 한국이 이렇게 나오는 데도 북한을 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상황으로 보아 미국의 대북공격의 가능성을 완전히 봉쇄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것뿐이다. 그리고 이 일은 경색된 남북관계를 호전시키고 자주적인 통일의 길을 여는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은 김대중 대통령이 앞장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이런 방법을 쓴다 해서 꼭 반미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정당한 입장과 논리를 분명하고 설득력 있게 알려주되 그것을 적절한 분위기를 만들어 부드러운 표현으로 미소를 띄우며 전해 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하는 것이 외교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우호국간에도 항용 있는 일이다. 구한말의 우리 조상들은 이런 일을 제대로 할 줄 몰라서 망국의 치욕을 자초했던 것이다. 
  
김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내걸고 평양에 가서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 냄으로써 노벨 평화상을 받는 영광을 얻었다. 그러나 그가 사대의 족쇄를 떨치지 못하고, 미국의 대북공격 가능성을 완전 봉쇄하는 데 실패한다면, 역사는 그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참으로 공헌한 인물로 평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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