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군사전문가)

반복되는 역사

11년 전과 똑같다. 1991년, 걸프전이 끝나자마자 몸이 덜풀린 미국의 보수강경세력은 북한에 대해 `깡패국가`라는 표현을 구사하며 `조이기`에 들어갔다. 그 빌미는 영변에 있는 북한 핵시설이었다.

그리고 2002년 2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예상보다 일찍 전쟁이 끝나 몸이 덜풀린 미국정부는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이라고 부르며 조이기를 하고 있다. 그 빌미는 북한의 화학무기와 미사일이다.

만일 북한이 `악령`의 본체를 이루고 있다면 최근 한국군에 10조원대 규모로 도입이 추진되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미국무기들은 그 징벌을 위한 `신의 칼`이 되겠다. 비록 종교가 없는 필자이지만 사실은 이러한 칼이 추악한 이단임을 고하고 싶다. 그것은 냉전의 우상이며 죽음의 논리다. 전쟁의 광기에 취해 양심과 존엄을 상실해 가는 개명되지 못한 자들의 유희다.
 
한국군에게는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역사상 가장 많은 미국무기가 육·해·공군을 가리지 않고 요란하게 들어오고 있다. 반면에 약10조원에 달하는 국민의 피와 땀이 조용하게 나가고 있다.

그 주요 실태를 보면, 4조3천억원이 소요되는 공군의 차기전투기도입사업(F-X), 9천2백억원이 소요되는 해군의 차기구축함 건조사업(KDX-Ⅲ), 2조2천8백억원이 소요되는 차기유도무기(SAM-X), 일명 패트리어트 미사일 도입사업, 2조5백억원이 투자되는 대형공격헬기도입사업(AH-X), 2천억원이 투자되는 230미리 다련장포 도입사업(ATACMS/MLRS) 등이다.

이중 대형공격헬기 도입만 잠시 유보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중에서 전투기사업은 아직 미국제로 기종이 결정되지 않았으나 유력한 상태다. 부시 대통령의 2월19일 방한이 여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진다.

위험한 사상
  
최근 무기도입이 대단히 놀라운 이유는 이 무기들이 기존의 한국군 재래식 무기들과는 한 세대를 달리하는 초현대식 무기체계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를 제4세대 무기체계라고도 한다.

한국군이 현재 운용하는 육해공군의 무기체계는 총660개다. 이들 대부분은 전술적 목표 밖에 수행 못한다. 그러나 최근 군은 한반도 주변 5백km 반경을 이른바 `절대방위권`으로 설정하고 이 범위 내에서 군사적 위협이 발생할 경우 보복·응징한다는 개념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이 `절대방위권` 개념 때문에 작전반경이 넓은 차세대 무기체계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방위개념이 획기적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에 신개념의 초현대식 무기체계 도입에 막대한 재원투자가 불가피해졌다. 국방부가 계획하고 있는 향후 5년간의 국방비는 91조원이다. 이중 34조원이 전력투자비, 즉 무기도입비이며 57조원이 운영비다. 그러나 이 예산도 무기도입 과정에서 더욱더 증액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이 무기들이 얼마나 초호화 무기들인지 차기 전투기의 경우를 보자. 우리가 도입하고자 하는 전투기는 대당 가격이 1억불, 즉 1천3백억원 하는 비행기를 40대 도입하는 계획이다. 현재 대상기종은 미국제 F-15K와 프랑스제 라팔로 압축되고 있다. 이 전투기 무게는 10톤 안팎이다. 10톤 비행기가 1천3백억원이면 이 비행기는 1g 당 1만3천원이라는 말이 된다. 금값하고 똑같다. 말하자면 `날아다니는 금덩어리`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얼마전 정부가 현대 아산의 금강산 사업에 250억원을 지원하는 문제로 정치권이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이것이 북한에 대한 `퍼주기`니, 아니니 하는 등 논란이 그치질 않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F-15K 비행기 한 대 값의 1/4밖에 안된다. 만약 금강산 사업지원이 북한에 대한 `퍼주기`라면 대규모 미국무기도입은 미국에 `들이붓기`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또 패트리어트 미사일 도입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가 48기의 방공미사일 체계를 도입하는데 2조3천억원을 쓰고자 한다. 이렇게 비싼 미사일로 격추시켜야 할 북한 주변 위협이 도대체 무엇인지 필자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북한 전투기 자산가는 아마 50억원도 안될 것으로 추정된다. 50억짜리 비행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백억 이상의 돈을 투자하는 셈이다. 이 때문인지 공군에서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항공기만 아니라 미사일도 격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더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미사일 격추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미국도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아직 실험단계에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한국군이 뭐가 그리 급해 검증되지도 않은 무기체계를 들여오려고 하는 것인가.

군수자본의 세계지배

한마디로 값비싼 미국무기에 `중독`되어 앞뒤 가리지 않고 무기도입부터 강행하는 이 기이한 병세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걸프전에서, 아프간 전쟁에서 미군의 가공할 위용 앞에 몹시 기죽어 `정의`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힘`에 대한 숭배가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강한 것이 곧 진리`라는 사고다. 첨단무기 도입으로 군의 과학기술은 진보하는지 모르겠으나 철학은 퇴보하고 있다.
 
남북한은 1991년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전세계에 대해 일방적 비핵을 선포한 국가다. 남북이 협력하면 이처럼 국가안전보장도 이루고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도 있다. 이 노력을 다해보지도 않고 오직 군사력 증강에만 매달린다면 한민족에게는 내일이 없다.

더구나 그 원인 중 하나가 대단히 호전적인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오고 있다면 단호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한 한국, 자주적인 정부를 우리는 희망한다. 국민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국부를 함부로 유출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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