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발자전거

생명의 본질은 운동이며 발전이다. 몸 속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신진대사 활동은 생명을 유지하며, 성숙시킨다. 특히, 발전지향성은 모든 생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질이다.

외발자전거가 계속 움직여야 서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신체와 두뇌의 지속적인 활동이 있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보통의 경우, 외발자전거 같은 삶은 앞으로 전진하면서 성숙과 발전을 이루지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을 만나면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퇴행`이라고 부른다.

나이 든 여성이나 남성들이 자신의 연륜과 경험에 걸맞은 문화를 만들지 못해 청춘시절을 부러워하고 젊어지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도 일종의 퇴행이다. 늙은이들이 과거를 파먹고 사는 것은 미래에 대한 발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관계에서 `그때가 좋았어...` 혹은 `옛날에는 다정했는데, 지금은...` 따위의 대화가 오고가면 그 관계는 곧 헤어질 가능성이 높다. 과거의 좋은 시절을 집착하는 것은 더 나은 관계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며, 발전이 막혀있는 관계를 지속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학창시절 동창회나 향우회 모임 이상 사회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만나서 옛날 이야기만 하는 친구를 정말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연인관계든, 부부관계든 혹은 직장동료든 간에 미래에 대한 전망과 발전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필요 없는 관계로 전락할 수 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다. 과거가 현재나 미래를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경험과 정보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과거로 되돌리자는 것은 아니다.

가끔 과거를 추억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지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사람들은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 하지만 만약 5년 후쯤에 신나고 밝은 미래가 준비되고 있다면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마치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말이다.

사회적으로 과거의 독재시절을 그리워하거나 필요이상으로 복고풍에 집착하는 것도 퇴행의 조짐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현실에서 찾지 못하기에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통일에 대해 원칙적인 동의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보수언론들이 `통일비용`, `못사는 나라`, `인권탄압` 따위의 연막을 치면서 미래를 흐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살육했던 과거의 증오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복수심으로 통일을 바라본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통일은 과거의 땅을 회복하고 복수하는데 있지 않다.

화해와 연대를 통해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자 하는 통일이다. 그 속에는 살육무기의 감축과 군대의 축소를 통한 전쟁의 종식과 평화, 반민주적인 요소의 철폐와 인간존중, 대화와 토론 따위의 아름다운 가치들이 들어있다.

백두의 몸부림

▶백두의 몸부림/한경보/연필화/72*107/1994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북한화가 한경보가 그린 <백두의 몸부림>이란 제목의 연필화이다. 작품 크기는 2절지 정도이고, 제작연도는 1994년이다. 연필화는 주로 습작을 하거나 간단한 스케치를 할 때 주로 쓰인다. 하지만 이 작품의 우측에 작가의 서명과 낙관이 찍혀있는 걸로 봐서 연필화 자체로 완성된 작품처럼 보인다.

연필로 그렸는데 색이 갈색조로 보이는 것은 아마 칼라사진으로 촬영하고 인쇄했기 때문이거나 종이가 바래서 생긴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갈색조의 느낌이 작품의 깊이나 분위기를 한층 더 높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멀리서 본 백두산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번개가 치는 하늘의 표현이 압권이다. 구도가 안정되어 있고 표현능력도 뛰어나다. 연필로 그렸는데 마치 수묵으로 표현한 듯한 느낌을 준다.

얼핏 백두산 풍경화쯤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을 애통해하는 내용을 담고있는 작품이다. 작품 우측에는 `백두의 몸부림 1994년 7월`이라는 작가의 친필 서명이 쓰여있다. 이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연도와 달이 일치한다. 연필로 작품을 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검정색은 조의를 나타내는 색이기 때문이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을 뜻하는 상징이고, 여기에 외롭고 앙상하며 쓰러질 듯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표현은 작가나 북한 인민의 마음일 것이다. 또한 천둥과 번개가 치는 하늘의 표현은 하늘이 비통하게 울고 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사실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죽음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기에 우리 민족의 미래를 6년이나 후퇴시킨 사건이었다. 그 뒤를 이어 조문파동으로 남북관계는 얼어붙었고, 미국의 위협으로 한반도는 전쟁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몰려갔다.  

2000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이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미국의 `악의 축`발언으로 한반도는 얼어붙고 있다. 백두산은 단지 김일성 주석의 사망을 애통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현실을 아파하며 몸부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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