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국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북한,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규정하자 그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 용어는 세계가 오직 선과 악으로만 나눠져 있다는 이분법적 사고와 `미국은 영원한 선`이라는 과신, 그리고 이들 세 나라가 `악`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커넥션을 이루고 있다는 의심을 품게 해준다. 모두가 가당치 않은 사고이자 과신이고 의심이다.

당사국이 이에 발끈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여론도 들끓고 있다. 파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마치 정조준된 듯 한반도에 그 불똥이 튀고 있다. `악의 축` 언사에 그치지 않고, 이후 부시를 비롯한 미국 고위관리들이 잇단 대북강경 발언을 해대자 한미간에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한미공조의 균열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당연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 들어 대북정책을 놓고 한미간의 균열은 당연한 것이었고, 이제 올 것이 온 것일 뿐이다.

남북간의 6.15공동선언 합의 이후 사실상 한미공조의 유효성은 사라졌다. 특히 부시 행정부 들어와서는 그나마 클린턴 행정부때의 순기능은 사라지고 그 역기능만이 부각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때 한국과 미국은 한반도문제 해결에 있어 남북화해와 북미간 군사적 긴장해소에 의견일치가 있어서, 2000년에 남북간에는 6.15공동선언이 그리고 북미간에는 10.12공동코뮤니케가 합의됨으로써, 한미공조가 그 순기능적인 역할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나 조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해 놓고, 여기에 한국 정부가 무조건 따라오길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한미공조로 강제하고 있다. 이러한 한미공조가 6.15공동선언 정신인 민족공조와 정면으로 배치됨은 명약관화하다.

도대체 북한을 `악의 축`이라 부르면서 북한더러 대화에 나서라고 큰소리치는 미국의 심보는 무엇인가? 또한 북한을 `악의 축`이라 부르면서 같은 민족인 남한(한국)더러 이에 동조하라면서 한미공조를 요구하는 미국의 속셈은 무엇인가?

남한에게 있어서 북한은 `악의 축`이 아니라 `통일의 축`이고, 이를 위해 한국(남한)은 미국과 공조를 할 게 아니라 북한과 민족공조를 해야 할 참이다.

북한을 놓고 이렇게 한국과 미국이 서로 극과 극으로 봐야 할 운명이니 한미공조에 균열이 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 균열이 아니라 균열 자체를 두려워하는 데 있다.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이 한미공조에 이상이 있어서는 안된다면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대북정책에 장단을 맞추라고 하고 또 국내 정치인들간에 이견이 있어서는 안된다면서 한 목소리로 미국의 대북정책을 지지하라고 떠드는데, 이는 한심해도 한참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도대체 어느 나라 언론이고 어느 나라 정치인인가?

부시의 발언에 세계여론도 부시를 성토하고 있으며, 미국내 국제문제 전문가들조차 비판을 퍼붓고 있다. 나아가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부시 대통령이 이란, 이라크, 북한을 싸잡아 취급한 것은 `커다란 실수`라고 못박았으며, 클린턴 전 대통령도 북한문제와 관련 후임 정권인 부시 정부에게 크나큰 외교적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 정부가 지난해 초 불필요하게 강경한 언어를 구사하며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정한 벗이듯, 이처럼 미국의 강수에 남과 북이 어려울 때 바른 목소리를 내는 정치가가 진정한 정치가가 아닐 수 없다.

마침 `정치개혁의원모임`을 중심으로 한 여야 의원 16명은 지난 4일 성명을 통해 "최근의 대북 강경발언은 6.15정상회담 이후 발전해 온 남북간의 화해협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평화로운 한반도에 긴장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며 부시를 꾸짖었다.

더 나아가 5일 김대중 대통령은 외교부장관을 전격 교체하면서 신임 장관에게 "특히 어떤 경우에도 남북관계가 악화돼 민족이 위기에 처하는 상황이 와서는 안된다는 소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으며, 또한 민주당 김근태 상임고문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의 최근 대북한 발언이 남북한 화해와 평화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햇볕정책을 흔들게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모두가 맞는 말이고 어려운 상황에서 그나마 이러한 목소리라도 나오니 다행이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위해 민족이 힘을 합치자는데 여야가 어디 있고 보수-진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더 나아가 통일을 위해 민족공조를 해야 할 판에 낡은 시대의 유물인 한미공조에 균열이 나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부시의 `악의 축` 발언과 그 파장을 계기로 남한과 북한은 `우리 민족끼리` `민족 공조`의 새 길을 열고 또 한국과 미국은 양국대로 새로운 한미관계를 확립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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