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북미간의 10월12일 공동성명 및 클린턴 대통령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 계획 등 북미 관계 개선과 관련, 10월13일 <로스앤젤리스 타임즈>에 게재된 짐 만(Jim Mann)의 글 가운데 주요 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미 주요 언론들이 조명록 특사의 방미 및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계획 등은 짤막하게 다루었으나, 북미 공동 코뮤니케 발표 이후 분석 기사가 게재된 것은 짐 만의 이 글이 처음이다.

클린턴 행정부와 북한은 목요일(10월12일: 역주), 양국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로 결정했다는 역사적인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기로 함으로써 50년 만에 가장 큰 관계 발전을 이룩했다. 양측은 또한 클린턴 대통령이 내년 1월 백악관을 떠나기 전에 북한을 방문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내용도 아울러 발표했다.

"과거의 적대감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양국 정부의 이 서면 공동성명은, 대통령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큰 비중이 실린 중요한 공약이다.

북한은 그러나 이번에 미국의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빠지는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테러 지원국이라는 딱지 때문에 경제 난관에 봉착해 있는 북한은 국제 차관을 얻을 수가 없다. 미국도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겠다는 항구적인 약속을 북한한테서 받아내는 데 실패했다. 미사일 문제와 관련된 회담이 북미간에 계속되는 동안에만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만 받아 냈을 뿐이다.

양국 정부는 이런 현안들을 잠깐 옆에 미뤄놓았다가, 클린턴이 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하는 기간에 북한에서 김정일 지도자와 함께 발표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한 외교관은 "이런 문제들은 지도자들이 결정하도록 남겨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목요일의 성명을 보면 곧 워싱턴과 평양에 외교 연락 사무소를 설치하는 단계에까지 온 것으로 보인다. "정기적인 외교 접촉"을 갖기로 합의했다는 대목이 이를 뒷받침한다.

클린턴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을 방문함으로써 대통령직 재임 마지막 달에 자신의 외교정책에 큰 족적을 남기는 기회로 삼을 것이다. 지난 8년 간 클린턴은 일련의 새로운 무역협정에서는 점수를 얻었을지 모르나, 미 외교의 전반적인 구조에는 이렇다 할 변화를 주지 못했다.

11월에 베트남을 방문할 예정이긴 하나, 베트남 방문은 단지 미-베트남 친선 관계에 대통령이 최종적인 도장을 찍는다는 의미밖에는 없다. 이미 국무부가 1990년대 초반과 중반에 걸쳐 진척이 느리긴 했지만 길을 다 닦아놓았다. 대북 외교는 이와는 다르다. 아주 최근 들어, 놀라울 정도로 급속하게 진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조명록 부위원장이 워싱턴에 와 있던 목요일의 기자회견에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우리는 꽁꽁 얼어붙었던, 머나먼 과거 관계와는 아주 다른 근본적인 변화를 이룩했다"고 말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이달 말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날 예정인데, 클린턴 방북을 위한 사전 답사가 될 것이다.

이번 주의 획기적인 사건은 4개월 전 한국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적인 평양 방문이 이루어진 다음에 일어난 일이다. 워싱턴과 서울이 북한과의 관계를 증진시키는 데 왜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것일까? 정부 허락을 받지 않은 탓에 이름을 밝힐 수 없다는 한국의 한 외교관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50년 간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불도저 식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 대통령이 먼저 불을 밝힌 길을 클린턴 행정부가 뒤따른다는 사실은 다소 예상 밖의 일이다. 지난 10년 간을 되돌아볼 때, 북한은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려고 애를 썼다. 서울의 관리들은 북한이 자기들을 무시하고 미국과 1대1로만 만나려 한다고 불만을 털어놓곤 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에게 워싱턴뿐만 아니라 남쪽 이웃과도 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90년대 말에 들어와 클린턴 행정부는 의회 공화당의 반대를 조심스러워하면서 북한의 교섭 제의를 앞에 놓고 망설였다. 결국 북한은 올 초에 방향을 바꿔 먼저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로 결정했고, 김대중-김정일의 정상회담은 클린턴 행정부로 하여금 정책을 변경시키도록 자극을 주었다. 목요일의 공동성명은 정말 놀라운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와 북한의 파란만장한 과거사를 볼 때 더욱 그렇다.

지난 8년 간 워싱턴과 평양은 전쟁을 치를 뻔하기도 했고, 북한의 지도자 승계 및 경제 붕괴라는 일을 함께 겪었다. 1993년 3월, 클린턴이 백악관에 입성한 직후, 북한은 핵 프로그램의 국제 사찰을 거부하면서 NPT 탈퇴 선언으로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1년 후,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 협상을 벌여, 중유를 공급해주고 2기의 민간 원자로를 건설해주는 대신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동결시키기로 했다.

김정일 역시 아버지 김일성의 뒤를 이어 1994년에 권력을 승계 받았고, 1년 후 홍수가 닥쳐 북한 전역에 기근이 만연하게 되었다. 경제 침체는 북한으로 하여금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도록 유도했다. 일본 중국 한국 등 북한 주변국들은 그 어느 나라도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았다.

국제경제연구소(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의 한국 문제 전문가 마커스 놀랜드(Marcus Noland)는 지난 목요일에 이렇게 말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그렇게 쉽게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나라들은 북한이 붕괴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결국, 클린턴 행정부는 평양 정권의 생존을 돕는 첫 단계로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미북 공동성명은 이제 남은 목표는 "1953년의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한국전을 공식 종식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KISON200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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