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국 대통령이 29일 상ㆍ하원 합동회의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함으로써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모두가 신년구상을 내비쳤다. 북한은 지난 1월1일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했고, 남한은 김대중 대통령이 1월14일 연두회견을 가진 바 있다. 신년초 구상이나 발언은 으레 좋은 생각을 밝히거나 덕담을 하기 마련이다. 특히 타인이나 외부를 향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번 부시의 연두교서는 고약하기 짝이 없다.

◆ 북한은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대내적으로 `우리 수령, 우리 사상, 우리 군대, 우리 제도`를 구현하는 `4대제일주의`를 주장했다. 그리고 남북관계에서는 민족공조를 강조하고 대외관계에서는 미국의 반테러전쟁을 경계하고 있다. 이를 두고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내부체제 결속을 통한 강성대국 건설`로 분석한다. 어째든 자체발전전략에 따른 북한 나름대로의 청사진인 셈이다.

◆ 김대중 대통령은 연두회견을 통해 `부정부패 척결`과 `경제경쟁력 제고 및 월드컵 성공을 통한 국운융성`을 국가발전의 청사진으로 제시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경의선 복원 ▲개성공단 건설 ▲금강산 육로관광 ▲이산가족 상봉 ▲군사적 신뢰와 긴장완화 등을 남북간 `5대 핵심과제`로 제시한 점이다. 이는 "남북간의 평화가 있어야 국정의 성공이 있다"는 김 대통령의 소신을 반영한 것이다. 남북 모두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전쟁방지와 평화실현을 위한 고심어린 선택을 한 셈이다.

◆ 이에 비해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를 통해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승리 ▲테러로부터 국토방어 ▲경제회복 등을 올해의 3대 국정 지표로 제시했다. 주로 `테러`, `전쟁`, `승리`, `방어` 등 전쟁용어들이다. 여기엔 지난해 당했던 9.11테러사태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역으로 올해가 `전쟁의 해`가 될 것이라는 지난해 말 자신의 호언이 빈말이 아님을 애써 보여주려는 듯하다. 걱정된다. 전쟁광인 히틀러도 `전쟁`을 함부로 얘기하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말이다.

◆ 정작 더 걱정되는 것은 `테러로부터 국토방어`를 말하면서 특정 국가를 지목한 점이고 거기에 북한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이미 부시는 지난해 `아프간 전쟁` 승리를 목전에 두고 "아프간 다음은 북한"이라고 해서 한반도 정세를 한껏 긴장시킨 바 있다. 이번에도 부시는 이른바 `불량국가`인 북한과 이라크, 이란을 특별히 지목해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이들 국가와 이들의 우방인 테러 국가들은 세계 평화를 위협하려고 무장하며 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고 규정했다.

◆ 새해 인사치고는 고약하다. 덕담이라도 건네기 어려우면 자국 발전의 청사진이라도 펼치면 그만일텐데 말이다. 연초부터 특정 국가를 콕 찍어 제 맘대로 딱지를 붙이니 사실여부를 떠나 당사국의 기분이 어떻겠는가. 설사 사실이라 하더라도 누가 더 대량살상무기를 많이 갖고 있고 또 누가 더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가? 남을 못살게 굴면 적들이 많아지는 법. 미국은 언제까지 전쟁의 굴레에서 악순환만을 되풀이하려는가? 그리고 부시 입에서는 언제 `전쟁`이라는 말이 그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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