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관계

사람에게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죄질이 나쁜 범죄자나 사기꾼에게도 부성애와 모성애, 혹은 따뜻한 인정이 있다. 그런가하면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에게도 어린아이 같은 나약한 감정이 있으며, 약할 것 같은 여성에게 남자보다 강인한 면을 발견하기도 한다. 각각의 모습이 워낙 다양해서 어느 것이 진짜 모습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봤어도, 완벽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단점이 있고, 배울 점이 많은 싫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친해진다고 하면서 그 사람의 동물적 본성이나 나쁜 면을 알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함께 술을 먹고 망가지거나, 혹은 단란주점이나 룸살롱 같은 곳에서 지저분한 본능을 서로 확인해야 인간적인 관계가 맺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반말을 하고 쌍소리와 욕질을 해야 동등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적인 관계가 아니라 일종의 패거리의식을 만드는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만들어진 인간관계는 서로의 약점을 들추어내고 이용하는데 더 많이 활용된다. 서로의 비행이나 부패를 공유하는데는 도움이 되지만, 만약 배신을 하면 인간적인 관계는 여지없이 상대방을 공격하는 비수가 된다. 은밀한 곳에서 뇌물을 주고받은 게이트나 무슨 리스트 사건은 일례에 불과하다.

이러한 공범의식은 마치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이 친구에게 `너 숙제했니? 나도 안 했는데`라며 서로 위안을 얻고, 숙제한 친구에게서 묘한 배신감을 느끼는 학창시절의 유치한 감정과 비슷하다.

우리 사회에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이 어딨어?`라며 큰소리 치는 사람이 의외로 많고, 이것은 무책임한 `양비론`으로 이어진다. 조금 깨끗하거나 잘난 사람은 공격해서 완전히 망가져야 연민의 정을 느낀다. `망가지긴 아까운 사람인데...쯥쯥...`하고 말이다.

아마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팍팍한 약육강식의 사회가 원인이지만,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 우리가 그토록 싫어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지난 88서울 올림픽 때, 미국의 어느 방송사가 한국을 알린다며 판자촌이나 뒷골목을 취재해서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펄쩍 뛰며 항의를 했다. 좋고 밝은 면은 놔두고 하필 뒷골목이냐는 것이 주된 항의 내용이었다. 옛날 이야기 같지만 만약 월드컵 때 또다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 국민은 `인간적으로 친해지기 위해서 그런 거야` 하면서 이해하겠는가?

어차피 완벽하지 않은 사람은 보여주고 싶은 부분과 감추고 싶은 부분이 따로 있다. 억지로 감추고 싶은 부분을 남에게 보여주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타인의 결점과 못난 점을 확인해야 그 사람의 본질을 알았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단점을 보여주는 것이 자신의 본질을 보여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점은 충분한 신뢰관계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알게되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꽉 짜여진 일정과 코스 이외는 볼 수 없다고 한다. 평범한 가정집이나 뒷골목 따위를 본다면 북한의 실생활을 좀더 깊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북한은 사회주의 나라이고, 개인과 사회를 동일시 여기는 생각이 강하다. 손님에게 자기 사회의 좋은 점과 자랑할만한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생각이다. 오히려 북한 당국자는 `남한의 기자가 북한의 나쁜 점만 골라서 보도한다`라며 불평한다.

북한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사회가 아니다.
북한과 올바른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의 장점을 가지고 관계를 맺어가야 한다. 어쩌면 상대방의 장점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만한 장점을 지닌 사람일 수도 있다.


특별한 미술 - 수령화

▶현실을 보고 그려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소
김상훈, 리률선, 김재혁, 박진수/조선화/ 193*300/ 1980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북한화가 김상훈, 리률선, 김재혁, 박진수가 공동으로 그린 <현실을 보고 그려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소>라는 제목의 조선화이다.

이 그림은 북한미술의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수령화`이다. 북한의 `수령화`는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북한의 `수령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역사와 사회주의, 주체사상 따위를 충분히 알아야 가능하다.

일단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화창한 봄날,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미대생에게 김일성 주석이 `현실을 보고 그려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격려하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화면 중앙에 표현된 김일성 주석은 건장한 풍채에 여유있고 따뜻한 웃음을 띤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단색조의 옷과 상대적으로 약간 크게 표현된 점은 카리스마를 강하게 풍긴다. 화면 오른쪽에는 안내를 맡은 미술대학 학장이 공손히 서있다. 전체 화면은 화사한 꽃으로 장식이 되어 있고, 사람들의 표정도 매우 밝다. 마치 이상적인 사회의 한 장면을 담고 있는 듯 하다. 화면의 구도나 색채, 배경, 명암이나 그림자 처리는 무리가 없고 정석을 따르고 있다. 

이 작품이 의도하는 바는 김일성 주석을 찬양하는 것이라기보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미술과 미대생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김일성 주석이 미대생에게 교시한 내용도 매우 원칙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이다.

`현실을 보고 그려야....`라는 말과 야외 사생을 연결시키면 좋은 그림은 직접 보고 그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이라는 말 자체가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꽃이나 나무처럼 눈에 보이는 현실도 있지만 현상이나 미래, 가치, 노동, 사회주의, 사상 따위의 보이지 않는 현실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미술에서 수령화는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위원장이 `현지지도`를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현지지도를 하면서 내린 교시도 대부분 원칙적이고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북한의 인민들은 수령의 교시를 비석을 만들어 세우기도 하고, 멋있게 액자를 만들어 걸어 놓는다. 또한 현지지도를 받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당과 수령, 인민을 하나의 몸으로 보는 북한사회의 특징으로부터 나온다. `현지지도`는 최고 지도자가 직접 현장을 방문해 인민들과 직접 대화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는 북한의 중요한 통치기술이다.

북한의 `수령화`는 예술적인 가치보다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목적과 가치를 추구한다. `수령화`에서 파격적인 구도, 색채 따위의 미술적인 실험은 볼 수 없다. 또한 화가 개인이 그리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그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김일성 주석의 얼굴을 그리는 사람을 `김일성상 계관인`이라고 부르며 인민예술가 정도의 기량과 사상성을 검증 받아야 한다.

북한의 `수령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미술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의 상식적인 기준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그림이자 북한미술의 특별한 점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