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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기 가족 의혹제기 33가지 (통일뉴스 200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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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01.21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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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AL 858기는 1987년 9. 2 김포공항에서 앞바퀴가 나오지 않아 비상동체착륙을 하는 등 과거에도 두 번씩이나 기체결함으로 사고가 발생하였고 사고기 출항은 고장수리한 후 첫출항이었습니다. 실종소식이 전해지자 사고원인은 배제한 채 불순분자에 의해 폭파된 것으로 단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희생자 가족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데도 무엇 때문에 그런 단정을 했습니까?

2. 우리 가족들은 김현희의 진술 이외 KAL 858기가 폭탄테러에 의한 공중폭발로 추락했다는데 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물증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3. 우리 가족들은 정부가 어떤 근거로 사고지점이 버마의 안다만 해역이라고 추정하는지 확실한 사고지점이 어딘지 밝혀주십시오.

4. 1988. 1. 13일자 태국 방콕에서 발간되는(데일리 뉴스)지 보도에 의하면 KAL 858기의 잔해가 버마의 카렌족 지역에 있다고 했는데 전문가의 말로는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고도 12,000m에서 파괴 비산되는 파편이 버마 안다만 해역에서는 발견될 수 없다는데 정확한 지점은 어느 곳인지요.

5. 인도양의 모리셔스해에서 추락한 남아프리카의 점보기는 1년에 걸쳐 항공기 잔해와 승객의 유품이 발견됐고, 소련의 미사일에 요격된 KAL 007기의 경우도 1년여가 지나도 계속 부유물이 발견 됐는데, 사고 발생 단 10일만에 현지조사단을 철수시키고 탑승객의 유품은 전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색작업을 중단한 이유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며 수색작업을 종결한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6. 안기부가 이들이 범행에 사용했다고 밝힌 폭탄은 파나소닉 RF-082형 라디오를 개조한 것에 넣은 콘포지션 C4 350g과 술로 위장한 `PLX` 액체폭탄 700cc 뿐이라 했는데 `주간 산께이` 1988. 2. 4일자에서 일본의 군사평론가인 오가와 가주히사씨가 진술한 바에 의하면 이 정도의 폭약으로는 고도 1만m를 나는 비행기를 공중분해시킬 수는 있지만 폭발에서 공중분해까지는 약 5분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처럼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폭발직후 KAL 858기가 사고발생 긴급발신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7. 바닷속에서 1천도의 온도와 중력의 1백배를 견디면서 30일 동안 반경 2마일에 계속 발신음을 블랙박스가 보낸다고 하는데, 사고원인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단서인 블랙박스는 어디에 있으며 왜 수색작업 초기에 블랙박스에 대한 언급과 수색에 소홀했는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지며 사고 발생 초기에 블랙박스 수색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8. 1983년 소련 공군기의 미사일에 의해 요격 당한 KAL 007기의 경우에도 비행기의 동체를 포함한 잔해 및 승객의 유류품들이 발견됐는데 858기의 경우에는 동체를 비롯한 잔해가 KAL 858기의 잔해임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주요 물품이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특히 가족들이 확인할 수 있는 승객들의 유류품은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바 그 이유는 무엇인가?

9. 실종유예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재판이 종결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교통부가 희생자 가족과 상의없이 일방적으로 실종자들을 일괄 사망처리한 것에 의문을 가지며 황급히 사망자 처리를 해야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누가 지시를 했는지 우리 가족들은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습니다.

10. 1차 수색이 실패로 끝난 직후인 12월 10일 안다만 코코 제도 부근에서 미군 정찰기에 의해 부유물이 발견되자 수색팀과 함께 수색을 하자고 제의했으나 거절했는데 거절한 이유는 무엇인가?

11. 아랍에미레이트 주재 한국대사관은 1987. 11. 30 하치야 마유미가 한국에 입국금지된 인물이라고 했지만 당시는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확인되지 않았던 시점인데 정부가 어떻게 하치야 마유미가 입국금지의 요주의 인물인지를 확인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음. 이처럼 처음부터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를 추적한 이유는 무엇인가?

12. 1987. 11. 30 외무부가 바레인 정부에게 요청한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의 출국금지요청의 요청사유는 무엇이었는가?

13. 1987. 12. 3 버마의 카렌족이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을 수색하기 시작했다는 보도는 있지만 수색결과가 어떠했는지 알려진 바가 없어 수색결과에 대해 궁금하다.

14. 바레인 정보성에 의하면 음독을 했다는 마유미는 3일 후에는 완전히 의식을 회복했다(아사히저널 1988. 2. 26)고 하는데 안기부는 서울에 도착한 1987. 12. 15 까지도 음독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돼 있었다고 상반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어 가족들은 의구심을 갖고 있는데 왜 이처럼 바레인 정보성의 발표와 안기부의 발표가 차이가 있는가?

15. 안기부의 발표에 의하면 김현희는 72년 11. 2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조절위 제2차 회담에 참석한 남측 장기영 대표에게 꽃다발을 증정한 장본인이라고 하며 당시의 사진을 제시하고 있으나 우리 가족은 안기부가 제시하고 있는 사진에 나타난 인물의 귀를 봤을 때 서로 다른 인물이라고 부인하고 있으며 1988. 3. 25 `아사히 저널`에서도 김현희와 정희선 가운데 사진의 인물과는 정희선이 더 닮았다고 하는데 김현희가 잘알 것 아닙니까?

16. 안기부의 발표에 의하면 철저히 훈련받은 공산주의자인 김현희가 한국에 온 지 단8일만에 자백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울시내 거리 여행과 TV시청 등을 통해 그 동안 북한에서 받은 교육이 허구였다는 것을 느끼고 심경의 변화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음. 그러나 김현희는 84년 8월 15일부터 1개월간 빈-코펜하겐-프랑크푸르트-제네바-파리 등에서 자본주의 훈련을 받아 한국의 사정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뿐 아니라 체포 직전에는 자살까지 시도할 정도로 철저한 공작원이었다며 발표했는데, 어떻게 그런 공작원이 이처럼 쉽게 심경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는데 해외적응훈련까지 받은 김현희가 그토록 쉽게 심경의 변화를 가져온 이유는 무엇인가?

17. 공작원이 공작지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공작원의 철칙이라고 했는데 7년 8개월간의 훈련을 받은 김현희가 공작지에서 사진을 찍고 그것을 가지고 다닌 이유는 무엇이라고 조사됐으며 특히 체포될 때 결정적인 물증이 되는 김정일에게 맹세했다는 맹세문까지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 조사됐는가?

18. 1987. 11. 30. 아랍에미레이트 주재 한국대사관측은 하치야 마유미는 한국에 입국금지된 요주의 인물이라고 발표했는데 당시까지 하치야 마유미의 신원에 대해서는 언급되지도 않고 있음에도 이처럼 마유미가 범인인 듯한 암시를 주는 이러한 발표를 한 이유는 무엇이며 특히 하치야 마유미가 한국에 입국금지된 요주의의 인물이라는 증거와 사유는 무엇인가?

19. 안기부가 김현희의 아버지인 김원석이 1987. 11월 현재 앙골라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수산대표로 근무하고 있다고 밝힌 것에 대해 북한은 앙골라 주재 북한외교관 중 김원석이라는 사람은 아예 없을 뿐 아니라 앙골라에는 수산대표라는 직책도 없다고 하는데 안기부의 주장을 입증할 물증은 무엇인가?

20. 1988. 1. 15자 중앙일보에 발표된 맹세문과 다음날인 1. 16 조선일보에 발표된 맹세문은 종이에서도 백지와 편지지로 다를 뿐 아니라 `규율`이 `규률`로 바뀌는 등 단어도 다른데 이처럼 석간과 조간의 차이로 맹세문이 뒤바뀐 아유는 무엇인가?

21. 김현희가 쓴 자술서에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북한에서 사용하는 단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북한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닌 것이 약 1백개나 돼 김현희가 과연 북한사람인가에 대해 의문이 많다고 하는데 북한사람인 김현희가 북한말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조사가 됐는가?(예를 들어 자술서에서 `녀안내원` `오뻬라`라는 단어가 나오지만 실제로 북한에서는 사용하는 단어는 `녀성 접대원` `오페라` 혹은 `가극`이라고 함)

22. 안기부 발표에 의하면 김승일은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와 영어에 능숙하다고 했으나 KAL 바레인 지점 김영호 과장이 11. 29 하치야 신이치와 통화를 했을 때는 아주 서툰 영어로 대답했다고 진술(동아일보, 1988. 1. 19)했는데 누구의 주장이 사실인가?

23. 1987. 11. 30부터 한국정부를 비롯해 일본정부가 호텔로 전화를 거는 등 본격적인 추적이 시작됐음을 알고 있음에도 하치야 부녀가 12. 1일까지 하루동안 계속 호텔에 머문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바 이들이 하루내내 추적의 손길을 피하지 않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조사가 됐는가?

24. 김승일과 김현희가 아부다비에서 바레인에 도착한 11. 29일 오전 4시 34분부터 12. 1일 로마로 가기 직전 음독할 때까지 탈출하기에는 충분한 이틀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탈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의구심이 많은데 조사과정에서 탈출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밝혀졌는가?

25. 안기부는 김승일과 김현희가 가지고 있었던 위조 일본여권은 `개인이나 테러단체에서는 제작할 수 없고 고도의 기술을 가진 정부기관에서 위조한 것`이라고 하며 북한이 만들었다는 암시를 하고 있는 바 이들의 위조여권을 북한이 만들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26. 공작원이 위장여권을 사용할 때는 다른 나라에서 전혀 의심하지 않도록 아무런 하자도 없는 사람의 것을 사용하는 법인데 김승일이 사용한 위장여권의 인물인 `하치야 신이치`는 이미 일본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요주의 인물로 돼 있는 사람임. 이 점에 대해서도 가족들은 의구심이 많은데 북한이 이런 실수를 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조사됐는가?

27. 안기부는 김승일과 김현희가 소유한 위조여권은 개인이나 테러단체는 제작할 수 없고 고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정부기관에서 만든 것이라 하여 대단히 정밀하게 만들어진 것처럼 발표하지만 마유미의 경우에는 여성이 아닌 남성 고유번호의 여권을 사용하는 등 위조여권임이 쉽게 확인될 정도로 조악했다는 것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28. 1987. 12. 9 대한항공이 작성한 수색활동보고에 의하면 미국정부는 한국정부의 요청을 받고 858기의 부유물을 찾고자 인공위성을 통한 정밀촬영을 계속한다고 했는데 그 결과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아 우리 가족들은 결과에 대해 대단히 궁금해하고 있으며, 인공위성을 통한 수색결과는 어떠했고 15년째 가족들의 유해 유품조차 찾지 못해 슬픔에 빠져있는 우리 가족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촬영한 사진을 공개할 수는 없는지?

29. 백악관 대변인은 KAL 858기가 북한에 의해 폭파됐다는 것을 여권과 청산가리를 예로 들며 확증하면서도 다른 증거도 있지만 밝힐 수 없다고 했는데 밝힐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고 15년 된 지금도 다른 증거들을 밝힐 수 없는가?

30. 김현희가 음독후 최초로 진찰한 바레인 살마나야 병원의 야코비안 응급부장은 마유미에게서 위 세척을 해도 독극물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며 김의 음독설을 부인했는데 당시 야코비안 박사가 진찰한 기록을 제시할 수는 없는가?

31. 국제적인 범죄의 경우 범인을 체포한 국가에서 최우선적으로 범인에 대한 수사권이 있음에도 범인을 체포한지 불과 15일만에 수사권을 포기하고 범죄인 인도협정도 맺지 않은 한국에게 마유미의 신병을 인도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32. KAL 858기를 통해 아부다비 공항에 내린 15명 가운데 하치야 신이치, 하치야 마유미, 교체 승무원(KAL 858) 등 4명을 제외한 나머지 11명의 신원은 누구인가?

33. 실종된 승무원 권미경양의 어머니에게 아부다비에서 교체된 승무원인 박은미양이 KAL 858기에 기름이 새고 있다는 무선연락을 들었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후 사고소식을 들었다며 미경양과 친구인 은미양이 연락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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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3)
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5-10-11 10:37:14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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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노해 () 2002-09-24 12:00:00
서해 교전과 파출소 경찰피살 사건은 동일 선상에서 보아야


평양에서 적화통일이란 대남 전략전술이 포기 되지 않은한
김 정일 동지를 이해하는데 너무 어려워
우리는 어지럽기만 하다.

무력 남침 도발인 서해교전으로 아군 27명 사상과
평양 예술미녀 공연단 서울 공연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전주 시내 중심 대로변 파출소에 당직 근무경찰을 피살하고
무기를 빼앗아간 강도를 내국인 단순 강도로 보면 오산이다.

피살된 경찰이 휴대했던 권총과 실탄은 남한 치안을 시험해 보았던
증거품으로 이미 평양에 넘어 갔는지도 모른다.

서해교전 무력과 평양 미녀 예술단 서울공연 미소
전주 파출소 경찰피살과 아시아 경기 북측선수 참가 유화미소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 하여야 할까?

평양에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남한 내에 고정 간첩으로
이미 주체사상으로 물이 들어 있는 좌경화된 400만-600만은
일구 월심 소원은 한국정부의 전복이고
그 목적 달성에 혈안이 되어 있다.

민생기초 치안인 파출소에 돌질, 방화, 난동, 경찰 구타, 경찰 피살 등은
사상적으로 문세광 같이, 김현희 같이 붉은 물 먹지 않고는
이런 행동 반경으로 나타 나기 어렵다.

무슨 강도가 돈도 아닌 경찰의 권총과 실탄을 빼앗기 위해
도둑의 호랑이 굴 같은 파출소에 들어와 은행을 털기 보다 더 어렵고
위험한 모험 경찰을 살해하고 도망을 갈까?
소기의 지령 특무 수행이 아니고는 어려울 것이다.


만약 반미운동 때문에 부시가 미군을 철수 시켜 버리면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남한도 북한 주민 처럼 굶어죽다 못 견디면
중, 러, 몽 으로 탈출하여 걸인이 되고
우리의 아들 딸 화동들은 어느 거리에서 꽃재비 아니면
몇 십만원에 팔려 다니거나 뉴-보트피풀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때에
7천만은 정신 차려 개인괴 민족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께 많이 많이 기도 해야 하겠다.
"오직 나의 신으로만 되느니라" 성경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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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일없으면 () 2003-10-23 12:00:00
미친쇄이...얼토당토 않는 댓글 달고 지롤옆차기야. 너같은 쇄이땜에 기독교가 욕처먹는거야. 하나님이 너같은 씁세가 부르라고 주둥아리 달아줬는줄아니?

열손가락 다짤르고 주둥아리 봉해버려...빙신가튼 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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