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환(통일뉴스 편집국장)


신년초인데도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서는 그 흔한 덕담조차도 나누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북미관계 때문인 듯 하다. 지난 연말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전세계를 향해 올해를 `전쟁의 해`로 규정했고,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북한은 신년공동사설에서 올해를 `4대 제일주의 고수를 통한 내부결속의 해`로 삼았다.

아리랑과 월드컵은 남북의 상이한 `국가발전전략`

한반도 문제의 주요 축인 북한과 미국이 서로 대립 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올해 남과 북에서는 주요 일정중에 각각 비정치적인 대규모 문화행사와 스포츠행사가 있다. 남한의 `월드컵대회`와 북한의 `아리랑축전`이 그것이다. 남북간의 많은 일정 중에서 이들 행사가 특히 주목을 끄는 이유는, 한랭전선에 있는 한반도와 교착상태에 있는 남북관계에서 이들 행사가 그 어떤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에서이다.

우리는 이 두 행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먼저 주목되는 것은 두 행사의 기간이다. 북한은 이른바 `60-90-70`을 거친 후 4월29일부터 6월26일까지를 아리랑축전 기간으로 잡고 이 기간중에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이 결합된 `아리랑`을 능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공연한다.

아리랑 기간중에 6.15 남북공동선언 2주년이 들어 있고, 특히 남한의 월드컵대회 기간(5.31-6.30)과 중첩된다. 북한에 있어 아리랑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0회 생일(2.16), 고 김일성 주석의 90회 생일(4.15), 인민군 창건 70주년(4.25) 등 내부 3대행사를 잇고 국제사회를 향해 힘을 과시하는 마무리행사인 셈이다. 이에 비해 남한의 월드컵은 같은 달의 지자체 선거, 9월의 아시안게임과 12월의 대통령 선거를 향한 첫 단추가 되는 셈이다.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각 행사의 명칭과 내용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이 남북이 서로 상이한 `국가발전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점이다. 즉 북한의 아리랑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과 정서`를 표상하고 있고 남한의 월드컵은 세계화시대와 국제화시대를 대변하고 있다.

아리랑은 `명망높은 인민배우, 체육선수` 등 10여만명이 동원되며 `조선의 명곡들과 민족무용, 예술체조와 교예, 황홀한 배경미술, 현대적인 장치물과 조명수단을 총동원하여 진행하는 종합예술작품`임에 비해, 월드컵은 이미 대륙별 지역예선에서 198개국이 참가했으며 본대회에는 한국 일본 각 10개 도시에서 32개 참가팀, FIFA 대표단, 보도진 등 13,00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 전통의 것을 자신의 힘으로 치르는` 아리랑과 `국제 대회를 유치해 범세계인과 함께 치르는` 월드컵은 분명 다르다. 이러한 차이가 분단 50년이 넘은 지금 생존과 번영을 향한 남북한의 본모습인지도 모른다. 남북간 `국가발전전략`이 상이하게 다른 것이다.

아리랑과 월드컵은 남북이 국운을 건 대역사(大役事)

또 주목해야 할 것은 명칭과 내용은 다르지만 그 의미와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은 아리랑을 통해 `내부체제를 결속시키고` 또 `국제사회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를 알리고자 하며, 남한은 월드컵을 `국운융성의 계기`로 삼고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선진국의 대열에 힘차게 진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북한은 아리랑을 `21세기 예술의 대걸작,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누구나 볼 기회를 놓친다면 일생을 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외국 대행사를 모집중이다. 또한 남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인천에서 평양을 잇는 서해상의 남북 직(直)항공로를 여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해 월드컵은 단일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스포츠 제전으로 대회기간을 전후해 연인원 400억명 이상의 인구가 TV를 시청하게 되고, 적어도 40만명의 외국인들이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한국을 직접 찾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월드컵의 경제적 파급효과로는 생산유발효과가 11조원이고 부가가치 창출이 5조원 그리고 고용효과도 35만명이 예견된다.

이처럼 이들 행사는 그 규모와 기대효과 등을 고려해 보면 남북간 국운을 건 일종의 대역사(大役事)라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따라서 비록 `국가발전전략`은 다르지만 의미와 목적이 다르지 않고 특히 행사기간이 겹치는 두 행사가, 모두에서 밝혔듯이 교착상태에 있는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더 나아가 얼어붙은 한반도 분위기를 녹일 수 있는 그 어떤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남북이 아리랑과 월드컵이라는 국가적 대사(大事)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발전전략이 성사되기를 기대한다. 즉 북한은 아리랑을 통해 `내부체제를 결속`시키며 `국제사회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를 알리고, 남한은 월드컵을 통해 `국운융성의 계기`로 삼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를 기대한다.

남측이 먼저 `아리랑을 구경가자`

다음으로 두 행사를 계기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몇 가지 (공동)행사 제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선 북한선수를 월드컵대표팀에 합류시키는 문제가 본격 추진되고 있다. 북한선수를 대표팀에 포함시키려는 계획은 월드컵 남북분산개최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북한의 월드컵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월드컵에 앞서 남북대표팀 시합이나 여자축구대회를 열자는 견해가 있는데, 전자는 역사적인 경평축구전을 부활하자는 의미이고, 후자는 지난해 12월 제13회 아시아여자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북한 여자팀의 자존심을 살리는 의미에서 가능성이 있다는 제안이다.

그리고 두 행사에 남북간 대규모 참가단을 교환하자는 견해도 있다. 즉 남쪽에서 아리랑 참관단을 조직하고 또 북쪽에서는 월드컵 관람단을 조직해 교환방문하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일각에서는 북한 아리랑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이 월드컵을 관전하기 위해 남한으로 오고 또 남한 축구경기를 보러 온 관광객들이 대거 북한을 방문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기대석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게 다 이뤄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또한 최근 북한이 `경의선 공사를 위한 막사를 수리하는 등 철도를 연결하려는 조짐`이 있는데, 이는 아리랑축전을 앞두고 남측의 관광객 증진과 또 아리랑과 월드컵을 연계해 중국관광객들의 방문을 편리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관측도 있는 등 위의 몇 가지 기대들을 한층 높이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숱한 사례에서 보듯, 남북간의 아무리 순수한 비정치적인(인도적인) 행사라도 국내정치적인 영향이나 외부(국제적)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위의 몇 가지 제안과 기대들은 주로 월드컵을 위주로 하거나 최소한 상호주의 입장에 서 있다.

따라서 남북축구대회나 교환방문단과 같은 상호주의에 얽매이지 말고 또한 경의선이 아리랑 이전에 복원개통되면 좋지만 그에 관계없이, 우리는 남측에서 먼저 아리랑을 구경갈 것을, 그것도 대대적으로 구경갈 것을 제안한다. 남북대화와 교류의 물꼬를 민간차원이 북한의 아리랑축전에 대거 참여하는 것에서부터 트자는 것이다.

특히 북한이 아리랑에 쏟는 정성은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아리랑이 "지난해부터 `첫 태양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기획돼 준비해 오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아리랑으로 하자`고 제안해 현재의 형태로 바뀌게 됐다"고 밝혔다. 고 김일성 주석을 상징하는 `태양`이란 말이 정치적 색채가 농후하기 때문에 민족적 색채가 짙은 `아리랑`으로 바꾸었고 따라서 내용도 여기에 맞추고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북한이 아리랑축전과 금강산관광을 연계시키기 위해 행사기간인 두달 동안 남측 관광객에게 `금강산-원산-평양의 육로를 개방하겠다`는 제의를 남한에 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북한의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은 지난해 남북 민간차원의 통일행사, 특히 8.15민족통일대축전 평양공동행사와 관련한 나름대로의 `총화`일 수 있다. 이러한 북한의 정성과 변화에 인색할 필요가 없다. 남한의 민간이 대규모 방문단을 조직하여 먼저 아리랑을 구경하자. 이것이 올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에 화해 분위기를 오게 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남측이 먼저 `아리랑을 구경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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