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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하는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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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01.16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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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

지난 20세기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형태의 경제활동이 중심이었다. 흔히 가전제품 따위의 공산품은 몇 가지 모델로 수십만, 수백만 개의 똑같은 물건을 찍어냈다. 그 결과로 거의 모든 가정은 비슷한 집의 구조와 비슷한 가전제품들로 채워졌다.

심지어는 패션이나 머리모양, 유행 따위를 따라잡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남들이 하면 나도 한다`는 이상한 평등의식이 사람들의 의식을 사로잡았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아줌마들이 비슷한 뽀글뽀글 퍼머 머리를 하고 다녔던 때가 불과 십 수년 전이다.

이것을 주도하던 경제는 과잉투자와 과잉생산이라는 덫에 걸려 도산하고 사람들은 졸지에 실업자가 되는 경제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20세기의 마지막 버스를 타고 있는지도 모른다.
 
20세기 생산방식과는 달리 21세기는 `다품종 소량생산`체계로 바뀌고 있다. 지금 사람들은 다양한 개성과 자신만의 세계를 원한다. 백화점에서 비싼 값을 주고 산 옷을 입고 가는데, 앞에서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묘한 동료의식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눈길을 피하거나 부끄러워할 것이다.

300개만 한정해서 만드는 가방, 대한민국 1%를 겨냥한 자동차, 다양한 종류의 머리유형과 독특한 구조의 건물 따위는 우리가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문화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과 요구에 맞추려면 기존의 대량생산설비로는 어렵다. 설비를 바꾸는데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가고, 조직을 운용하는데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기업이 물건을 만들고 소비를 창출, 강요했지만, 앞으로는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과 소비를 창출하는 모양새로 바뀔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것은 당장 오는 것은 아니고, 가만히 앉아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사람들은 똑같은 물건보다는 자신의 개성과 취향에 맞는 물건을 요구하고, 소비자의 권리 또한 커가고 있으며, 높은 수준의 생활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변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품종 소량생산`체계가 바로 `예술창작활동`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같은 작품을 두 번 만들지 않으며, 창작품도 그리 많지 않다. 예술은 정신활동의 꽃이며, 높은 기량과 연륜에서 나오는 고급문화이다.

사람들은 예술을 즐기고 난 후 갈비를 먹고, 자동차를 사는 것이 아니다. 먹는 문제가 해결되고, 자동차를 산 다음에야 예술을 요구한다. 어떤 사람은 경제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예술의 대중화는 어렵다고 단정한다. 지금까지 예술이 돈 많고 여유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었던 것은 고급인데 반해 극히 소량만 창작되었기 때문이다.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이 되기 위해서는 `공방`이나 `팀 체계`가 필요하다. 물론 하나의 물건을 적은 사람들이 만들려면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물건의 기획, 제작 공정, 판매에서 재정, 회계, 시장조사, 사후 관리까지 적은 사람이 역할을 중복해서 맡아야 한다.

단순노동을 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전문지식과 기술력, 기획력, 창조력까지 두루 갖춘 그야말로 만능을 요구한다. 이것도 창작기획, 제작, 전시, 판매를 혼자 담당하는 예술가의 모습과 닮았다. 화가나 시인이 파업을 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노동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삶의 질을 높이고 노동의 주인이 되는 사회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인식능력과 효율성의 발전이 전제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인식하고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미술이 보탬이 된다면 더욱 좋은 일이고.

탐구하는 노동자

▶탐구의 나날/정철/조선화/127*207/1990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북한화가 정철이 그린 <탐구의 나날>이라는 조선화이다. 북한화가 정철은 평양에서 출생하여 1984년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교원으로 활동하는 40대 초반의 중견작가이다.

이 작품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밤늦도록 연구에 몰두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작품의 전면에는 설계도면과 책자가 펼쳐있고, 한 손에는 연필을, 다른 손에는 담배를 든 주인공은 깊은 생각에 빠져있다. 수북히 쌓여있는 담배꽁초가 상당히 어려운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창 밖으로 탄광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는 걸로 봐서 장소는 탄광 근처에 마련된 연구실처럼 보인다. 인물의 복장이나 배경, 주변의 소품들은 주인공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연구원이 아니라 그냥 일반 탄부임을 간접으로 드러내고 있다.  아마 주인공은 일과가 끝나자마자 연구실로 달려와 신발도 벗지 못한 채 연구에 매달리고 있을 것이다.

북한 탄부의 월급은 일반 교원보다 두 배정도 높은 걸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힘든 육체노동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렇게 힘든 노동을 마치고 나면 집에 가서 편히 쉬고 싶은 것이 일반 사람들의 모습일텐데, 왜 이 탄부는 밤늦도록 시키지도 않은 연구를 하고 있을까?
 
이 작품의 핵심은 연구에 몰두하는 탄부의 모습이다. 사회주의 나라의 공통적인 모순은 효율성의 결여이다. 특별한 노력 없이도 월급이 나오고 실직 당할 염려가 없기 때문에 대충 대충 일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더 많이 벌 수 없다는 문제도 함께 있다.

북한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위로는 관료주의와 싸우고, 아래로는 노동자의 능동성을 발현시키기 위해 애쓴다. 특별한 대우가 보장되지 않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는 노동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자신의 발전과 사회의 발전이 일치해야 한다. 또한 그것에 보람을 느껴야 한다.

돈이 중심이 아닌 사회에서는 명예나 사회적 지위가 매우 중요하다. 북한의 특별한 행사에 사람들이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나오는 것은 그것이 바로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탄부는 회사나 사장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인민을 위하고 조국의 발전을 위한다는 커다란 의식이 바닥에 깔려있다.
 
물론 북한의 노동자들이 모두 이 작품의 주인공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미술의 특성상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그 사회의 전형적이고 모범적인 형상이다. 북한사회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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