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욱(연합뉴스 기자)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북한과 이란 등 소위 `불량국가`(rouge state)들의 탄도미사일의 위협 정도를 평가절하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4일 미 정부가 1999년 북한과 이란의 탄도미사일위협을 제기하고 나선 것은 이스라엘의 압력과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구축을 위한 미 군산복합체의 자기 생존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히면서 현직 국방장관인 도널드 럼즈펠드 주도로 작성된 북한 미사일 보고서의 신빙성마저 떨어뜨렸다.

이는 럼즈펠드가 1998년 7월 보고서에서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의 대미 위협을 경고한 뒤 한 달여 만인 1998년 8월31일 북한이 `광명성 1호`를 시험발사하면서 보고서의 정확성과 예측력이 입증됐던 때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보도 직후 러시아 `모스크바 항공연구소`측도 이란 탄도미사일 개발 수준이 대수롭지 않다고 밝혀 워싱턴포스트 보도 내용을 뒷받침했다.

미국 언론과 미국의 경제지원을 받는 러시아의 관변 연구단체가 동시에 북한과 이란의 탄도미사일 위협을 부인하고 나선데 대해 양국 정부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북한은 이미 1993년과 1998년 두 차례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함으로써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온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1993년 6월11일 체결된 사상 첫 `조-미 공동성명`이나 1994년 10월21일 제네바 핵 합의나 1999년 9월의 페리보고서 및 2000년 10월12일의 `조-미 공동코뮈니케` 등이 이를 입증한다.

또 럼즈펠드 보고서가 나온지 한 달여만에 `광명성 1호`가 태평양 상공으로 날아올라 보고서가 꽤 정확했음이 입증된 바 있다.

결국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는 미국측이 뭔가 새로운 국면을 꾸미기 위해 벌이는 언론플레이로 볼 수 있다. 아니라면 단순 오보이겠지만 미국의 외교 정책과 세계 정세상 현재 시점에서 이런 무모하기 짝이 없는 오보를 날릴 언론사는 없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국방지도부의 권위를 완전히 깔아뭉개는 오보를 날리고도 살아날 언론사는 없다. `9월11일 사건`을 계기로 대통령의 권위를 떨어뜨린 기사를 쓴 기자들의 목이 달아나고 있는 판이다.

미국이 바라는 새로운 국면 및 워싱턴포스트 보도의 배경과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북한과 이란 두 나라가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들어 있으며 두 나라와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 일로에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구 소련이 붕괴된 이후 대량파괴무기(WMD) 확산을 `팍스 아메리카나`의 최대 위협 요인으로 간주하고 핵이나 탄도미사일 및 생화학무기를 보유하려는 나라들을 `적`으로 간주해 왔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라 있는 북한과 쿠바, 이란,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수단 등 7개 나라들 중에서 수단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 모두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했거나 보유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다.

특히 미국은 북한 미사일 개발 및 수출 억제를 미국 외교정책의 최대 현안인 대량파괴무기 확산 억제의 관건으로 여겨왔으며 지난 1990년대 10년간 북ㆍ미 양국간 첨예한 대결은 바로 북한 핵 및 미사일 개발 억제를 위한 미국의 강압적인 대북 공세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핵 공격 위협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 정상화를 통한 미국의 대북 위협 소멸을 미사일 개발 포기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고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규정은 양국 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빌 클린턴 행정부 말기인 2000년 말 2001년 초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통해 북ㆍ미관계를 정상화하면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 포기를 유도할 수 있었으나 클린턴 정부의 뒷심 부족(레임 덕)으로 양국 관계는 개선되지 못했고 조지 W. 부시 정부가 출범해 지난해 6월6일 대북 대화 재개를 선언한 이후에도 북한은 `대북적대정책 포기`를 대화의 조건으로 내세우며 미사일 개발을 계속해왔다.

결국 미국은 `9월11일 사건`을 계기로 북한이 테러방지협약에 가입한데 만족해하며 물밑 접촉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해가 바뀌면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공사를 매개로 대북관계 개선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과 반목했던 이란 역시 9.11사태 직후 시작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동조한데 이어 미국이 주도할 전후 복구에 참여할 뜻을 밝히고 개혁파 의원 석방 등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은 특히 `9월11일 사건`을 계기로 `21세기의 위협`이자 `새로운 적`으로 `국제테러`를 지목하며 이미 이란과 시리아, 리비아 등을 반테러연합전선에 합류시킴으로써 이들은 이제 `새로운 적`과 싸워야 할 `옛날의 적`이 돼 버린 것이다.

또 시리아는 이미 1991년 걸프전 때도 미국에 동조했으며 이후에도 미국과 직접 대립을 피해왔다.

미국의 이런 국면 조성용 언론플레이는 다분히 9월11일 사건의 2막이라고 볼 수 있다. 9월11일 사건 자체가 미국이 `윈-윈(Win-Win) 전략`을 포기하고 `원-플러스(One-Plus)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집행하기 위한 빌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원-플러스 전략은 바로 한반도 전쟁 전략을 포기하면서 전통적 숙적인 이라크를 굴복시킨 뒤 전 세계 회교 반군 또는 집권 세력들을 상대로 무제한의 전쟁을 벌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첫 군사작전인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위해 러시아와 중국의 경제적 이해를 보장하면서 제 편으로 끌어들였고 탈레반과 반목해 온 이란과 시리아, 리비아 등 `미국의 적`들을 포섭했다.

9월11일 사건은 또한 구 소련 패망 이후 미국의 세계체제와 정면으로 맞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는 `북한의 문제`를 일시에 해결하기 위한 비책이기도 했다.

9월11일 사건을 빌미로 시작될 반테러연합전선에 북한을 끌어들이기만 한다면 미국은 자연스럽게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을 삭제할 수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고 "북한이 마침내 미국의 품 안에 들어왔음"음 떠벌리면서 대북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었다.

미국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반테러협약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테러 정보 제공이나 △적군파 요원 추방 △김영남 위원장 이상의 단독 반테러 선언 등을 강요하며 북한을 압박한 것은 이런 목적에서 나온 것이었다.

총련계 신문 조선신보가 2001년 11월28일자에서 9월11일 사건을 `CIA의 전통적 수법`이라고 치받고 나온 것은 모름지기 이런 미국의 반테러연합전선의 포위를 정면 돌파하기 위한 북한의 `강수`였다.

미국은 북한을 포섭하려는 세기적 시나리오를 포기한 채 서둘러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총장을 평양에 보냈고(2001년 12월1일) 결국 북한의 요구대로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의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북-미 평화협정과 양국 관계 정상화가 멀지 않았다. 통일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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