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군사전문가)


이상한 증후군

지금 우리 언론과 정치권에 이상한 증후군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첨단무기 중독증`이다. 이 병세는 한국군이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무기체계를 운용하는 최하류의 군대라는 이미지를 천연덕스럽게 덮어씌우며 새로운 무기구매에 잔뜩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 배경에는 고물군대와 첨단군대라는 이분법이 자리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보복전쟁이 싱겁게 마무리되면서 어김없이 한국사회에도 `힘에 대한 무한한 숭배`의 흐름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미국무기에 대한 비판의식이 약화되는 것은 물론이요, 일제히 `미국 앞으로`를 외치며 줄서기 경쟁을 시작하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빨려 들어가기를 학수고대하는 세력들에 의해 가공되고 조작된 군사논쟁은 첨단무기에 대한 중독증이라는 병세로 나타났다.         

조작된 군사논쟁

지난해 12월19일부터 일주일 동안 한국군이 보유한 나이키 지대공 미사일의 성능을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다. 이 논란이 `직접화법`으로는 미국제 개량형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사자는 것이요, `간접화법`으로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참여하자는 데 목적을 두고 있음은 이미 지난 칼럼에서 밝힌 바 있다.
 
또 있다. 나이키 미사일을 둘러싼 논쟁이 채 끝나기도 전인 올해 1월 초, 국방부는 한국군 최초로 300km 사정거리의 미국제 ATACMS 전술 지대지 미사일을 도입하기로 발표했다. 동일한 발사대를 사용하는 다연장 로켙(MLRS) 도입도 공개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무기체계 도입은 오래전에 확정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발표된 이유다.

국방부에 의하면 이 무기도입이 한국의 미사일 사정거리를 180km로 제한한 미사일 협정을 300km로 완화하는 `미사일 협상`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공개하기 어려웠으며, 이번에 공개하게 된 것도 국방부 의지가 아니라 한 언론사가 엠바고(보도제한)를 깨는 사고를 일으켜 어쩔 수 없이 발표하게 되었다는 해명이다.
 
미국이 한국의 미사일 사정거리를 완화해 준 것은 미국제 미사일 판매를 위한 것이라는 항간의 속설이 사실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국군의 주력 공격미사일은 지대지 미사일 `현무`다. 이 현무의 사정거리는 180km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오래전부터 성능을 개량하여 이미 270km에 달하는 중거리 미사일로 운용하고 있다. 180km 사정거리 제한은 이미 오래전에 사문화된 문서다.

우리는 이미 이와 유사한 130mm급 다연장 로켙을 자체 국산기술로 개발하여 이미 사용하고 있다. 당연히 227mm급 다연장 로켙도 국산화가 가능한 품목이며 충분한 생산능력이 있다. 그러나 국산화의 길은 처음부터 배제되었다. 당시 이러한 독단과 초법적 행위가 가능했던 것은 1995년 육군 총장이 미국 출장 중에 화력시범을 견학하고 난 후 귀국하면서 추진된데서 비롯되었다.
 
그 결과 약 1조여원의 국가예산이 국내 업체에 투자되지 않고 미국업체에 고스란히 흘러가는 어이없는 상황이 지금 연출되고 있다. 이 1조원은 사문화된 미사일 협정을 폐기하는 댓가로 미국측에 제공한 한국의 `선물`이다. 게다가 외국에서 도입한다는 발표 자체가 부끄러운 재래식 무기다.

또 하나의 희생물, 차기전투기 

앞에서 거론한 무기들보다 미국 줄서기의 백미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차세대전투기도입(F-X)사업이다. 지난 1월3일 국방부는 이례적으로 F-X 기종결정 평가방법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차세대전투기 기종결정은 크게 두 단계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1단계에서는 각 기종별로 수명주기비용(35.33%), 임무수행능력(34.55%), 군 운용적합성(18.13%), 기술이전/계약조건(11.99%)에 의해 가중치로 평가하게 된다. 만일 여기에서 최우수 기종과 타 기종간의 득점차가 3%이내일 경우 2단계에서 기종을 결정하게 된다. 이 2단계 평가내용은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 대외관계에 미치는 영향, 해외시장개척에 미치는 영향 세 가지다.
 
이 발표가 있고나서 F-15를 공급하는 미국의 보잉사는 매우 흡족해했으나 라팔을 공급하는 불란서의 닷소사는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F-15와 라팔이 1단계 평가로 변별력을 갖기는 어려우며 2단계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2단계는 한미 연합방위체제의 당사자인 미국 측에 유리한 평가다.
 
이렇듯 동시다발적으로 미국무기에 줄서기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어이없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미국의 무기 그늘이 한반도의 햇볕을 가려오는 형국이다.

[지난 김종대 시평]

중심을 다시 세울 때
미사일 사기극
용산기지의 빛과 그림자
미국이 숨기고 있는 것들

정녕 햇볕은 지는가?
북미관계의 새 암초, 생물무기

슬며시 고개 드는 한국군 파병론
한나라당의 색깔을 묻는다

평화를 위한 대화를 시작할 때

졸속 F-X사업에 국부 유출 4조원!
반 테러동맹의 위험한 승부수
문명 내부충돌 부추기는 미국형 전쟁경제학
전쟁을 둘러싼 비지니스
저 혼자 흥분해서 날뛰는 꼴불견
황금 이동을 둘러싼 거대한 음모
중동의 전운, `문명 충돌`은 오는가
인식의 혁명이 요구되는 시대
국민은 판단할 능력 있다
권위주의에 대한 위험한 향수
`실패한 대통령론`
미군철수에 대한 이상동몽(異床同夢)


<약력>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반핵평화운동연합 정책위원
평화연구소 연구원
14,15,16대 국회 국방위, 정보위의원 보좌관
15대 대통령직 인수위 국방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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