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현(불평등한 소파 개정 국민행동 상임대표)


▶문정현 신부는 9.11공격은 미국 정부, 특히 가장 공격적인 부서인
국방성에 거대한 정치적 이득을 안겨주었다고 분석했다.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세계무역센터의 한 사무실에 필리핀, 타이완, 우크라이나, 방글라데시, 푸에르토리코, 아프리카계 미국인 6명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9.11공격이 벌어졌다. 그 후 많은 노동자들이 줄줄이 해고를 당했다. 해고를 면한 노동자들은 하루 매일 반시간씩 임금 없이 근로시간을 연장시키겠다는 명령을 받았다.

해고와 근로시간연장은 이른 바 `테러범`들이 한 것이 아니고 바로 자본가들의 짓이었다. 노동자의 임금을 줄여 이익을 더 얻자, 이런 속셈을 가지고 오래 전부터 계획되었던 것이  9.11공격의 틈을 타 이행되었다. 해고는 바로 자본가들의 술책이다.

뉴욕과 펜타곤의 붕괴와 주검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싫증이 나도록 방영되었다.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런 공포는 세상 구석구석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미국의 펜타곤이 가한 그보다 더한 공포가 얼마나 많았던가? 단지 미국 내에서 벌어졌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다. 미국인들에게는 처음 경험이다 보니 엄청나게 놀라운 일이었다. 미국인들은 혼비백산, 겁을 먹게 되었다. 대(大) 미국이 그렇게 놀랄 수 있었을까?

수천명의 사람들이 살아남은 생명을 하나라도 더 찾으러 헤매었고 9.11공격의 무서운 증세를 치유하기에 안간힘을 썼다. 잃은 친구와 친척, 함께 일하던 동료에 대한 슬픔과 희생자들을 위한 동정심은 일반 민중들 마음속 깊이 스며들었다. 장래에 대한 두려움, 직업에 대한 걱정이 수천명의 생존자들을 짓눌렀다. 

세계무역센터는 수천명의 노동자들을 위한 생업의 장소만이 아니었다. 그 쌍둥이 타워는 미국의 세계경제 지배의 상징이었다. 또 펜타곤은 미국 군사침략의 중요한 상징이었다. 둘 다 미국 지배계층의 힘을 상징했다.

그 빌딩과 펜타곤의 파괴는 미국 지배자들의 자존심의 손상 그 자체였다. 공격으로 손상될 수 없다는 불가침의 신화가 무너졌다. CIA, FBI의 자존심의 손상이었다. 그들의 약점이 노출된 것이었다.

부시 행정부의 즉각적 반응은 무엇이었나? 명백한 혼돈 그 자체였다. 대통령이 비행기를 타고 이리 저리 옮겨다녔다. 부통령 체니는 벙커 속에 숨어있었다. 그러면서 알아차린 것이 뺨을 맞았구나. 엉클 샘이 뺨을 맞은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들은 이빨 하나도 부러지지 않았다. 혼돈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비이성적 공격을 감행하게 되었다. 결국 9.11공격은 미국 정부, 특히 가장 공격적인 부서인 국방성에 거대한 정치적 이득을 차리는 쪽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1975년 베트남전쟁 패망후 최초의 군사 행동의 위험한 순서를 밟았다. 미국의 노동자들이 공격에 떨고 있는 동안 미국은 매일 매일 온종일 전쟁 중이라고 되뇌다가 결국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을 감행하였다. 부시 행정부는 전쟁광 증세를 증폭시켰고 자국 시민의 희생을 빌미로 군사행동을 강화시키고 곳곳에 경찰력을 확대시켜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였다. 바로 민중의 슬픔이 전쟁에 이용당하게 되었다. 모든 지배자, 언론인, 정치인들은 부시 행정부를 지지했다.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선거구의 흑인 여성 바르바라 리 의원 한 사람만 영웅적 반대표를 던졌다.

56년 넘게 워싱턴은 일본 히로시마, 한국, 베트남, 이라크에서 테러를 감행해 왔다. 그로 인하여 수백만의 무고한 시민이 죽었다. 워싱턴은 중앙 아메리카 정부들을 지원하여 정부군으로 하여금 수천명의 시민을 죽이게 하였다. 유고슬라비아 하늘에서 비를 퍼붓듯 폭격하는 테러를 감행하였다. 쿠바 비행기를 폭격하려는 반공산당 테러분자에게 자금을 지원하였다. 결국 10월 7일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똑 같은 짓을 저질렀다. 

전쟁은 미국 내에서도 자행되었다. 9.11이후 미 정부는 이민자를 재판도 없이 잡아 가두는 법을 통과하였다. 1,000-2,000명의 중동과 중앙 아시아 사람들이 경찰과 FBI에 의해 구금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공격의 수주일 후에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있었다.

부시는 이른바 테러분자를 재판하기 위하여 군사법정을 설치하자고 요구하기까지 하였다. 중동사람들을 폭동을 일으키는 사람, 승용차를 타고 질주하면서 총질하는 사람, 상점을 공격하여 폭동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매도하여 미국 사회의 악마라는 선입견이 있어왔던 터이다. 긴 역사의 산물인 인종주의가 판을 치게 된 것이었다.

워싱턴의 고위직들 그리고 전직 정부 관료들은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더 광범위한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첫 단계라고 말한다. 이것은 펜타곤이 이라크, 수단, 시리아를 장악하기 위한 여론 준비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행정부의 상당 그룹은 더 야망찬 계획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전사들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폴 월포위츠, 리차드 펄, 도날드 럼스펠드, 헨리 키신저 등이다. 이들은 이라크를 특별히 주목하였다.

키신저는 현 상황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지금이 `구 소련 공산주의가 붕괴되는 것`과 같은 `한 전환점`이라고. 그는 지금 `지구촌 테러 분쇄의 전망`이 눈에 보인다고 주장한다. 키신저는 자본주의 구조 안에  미국의 다국적 기업, 은행 그리고 펜타곤의 지배에 저항하는 세력은 그가 누구라도 `테러분자`요, `혼란을 일으키는 장본인`이라고 매도하는 사람이었다. 미국정부 요인들이 바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스라엘 침공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도 그런 식으로 매도되어 왔다. 콜롬비아 해방군은 살인적인 군대를 운영하는 정부요인을 제거하려 노력하였다. 이들을 반동분자로 몰아세웠다. 푸에르토리코의 국민들도 마찬가지 처지인데 비에께스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하여,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가열찬 투쟁을 하고있다. 미 정부에 의해서 얼마나 않은 푸에르토리코 국민이 구속되었던가! 미국은 쿠바, 북한, 시리아, 이란, 이라크, 리비아 역시 미국의 공식적 "테러국가" 명단에 포함시켰다. 부시는 소말리아, 수단, 예멘을 추가 목표로 거론하고 있다.

부시는 전 세계의 이른 바 테러리스트를 쫓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른바 테러리스트를 지원하는 나라조차 공격하겠다는 것이다. 부시는 자기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바로 자기를 반대하는 자라고 천명한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부시 독트린"이다.

부시가 테러리즘과 싸울 것을 천명하지만 그의 목표는 기름, 가스 혹은 송유관이 있는 모든 지역이다 그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부시의 장기간 전쟁 음모는 특히 중동과 중앙 아시아의 에너지 자원을 마련하기 위한 제국주의 속셈일 뿐 다른 것이 아니다. 영국, 독일의 전쟁참여는 저들의 약탈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국내에서 전 노동자들이 테러리스트 공격과 탄저균 공포에 정신을 팔고 있을 동안에 부시 행정부는 강도질을 시작한 것이다. 사회보장금에서 돈을 빼다가 돈 많은 회사에게 주었다. 특히 대항공회사에 돈을 주었다. 그것은 결코 항공회사의 노동자들에게는 도움되는 것이 아니었다. 

9.11사건은 미국의 진보운동권을 질식시켰다. 젊은 새 운동권이 자본의 세계화에 대항하여 싸웠다. 이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시애틀에서 제노아까지 가열찬 거리투쟁을 벌리지 않았던가! 사실 9.11공격 이전 9월29일에 워싱턴 디씨 백악관 앞에서 세계은행과 국제금융기구에 저항하기 위한 집회가 준비되어 있었다.

9.11공격으로 그 집회를 "Act Now to Stop War and to End Racism(지금 당장 전쟁을 중단시키고 인종주의를 종식시키러 나서자 : A.N.S.W.E.R)"라는 구호를 내세워 전쟁반대를 위한 집회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집회 자체를 만류하였다. 그러나 집회를 준비했던 사람들은 토론이나 분석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전쟁을 반대하지만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전쟁을 중단하라고 소리칠 수 있는 용기를 주어야 했다.

사실 미국이 세계 안에서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고 있었다. 미국 국민들이 방방곡곡에서 미국 성조기를 들고 나오고 있는 판에 그들은 대담하게 미국이 처참한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많은 젊은 층에게 강한 평화적 감성을 일깨울 수 있었다. 20,000명이 워싱턴과 샌프란시스코에 모여 전쟁반대집회를 가지면서 전쟁반대의 날로 선포하였다.

참으로 의미 있는 날이었다. 집회참가자들 대부분이 젊은 층이었다.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후에도 이 젊은 층은 평화와 정의를 위한 투쟁을 계속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지금과는 또 다른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미국 안에 떠오른 희망이었다. 한 주안에 또 다른 평화운동이 조직이 되었으니 뉴욕에서의 집회군중은 10,000명에 이르렀다.

스페인, 독일, 인도,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반전운동진영의 소명감이 커졌고 더 큰 국제연대가 있었으며 영국에서 남아프리카, 일본에서 아르헨티나, 칠레에 이르기까지 반전집회가 있었다는 것은 크게 기뻐할 일이었다. 반전을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인종차별 때문에 미국의 감옥에 지금 억류되어 있는 중동 남아시아 사람들을 위한 투쟁이 지금 이 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불의, 불법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부시 행정부는 9.11공격의 주범으로 오사마 빈 라덴을 찍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도 내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 전쟁을 확대시키려고 한다. 이스라엘 정부를 두둔하여 무고한 시민을 죽이고 있다. 대규모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미국의 역사는 가증스럽다. 부시, 그리고 그의 모든 보좌관들은 중동에서 지난 10년 세월동안에 수천 수백의 아랍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미국의 정책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미국은 정말 자기들의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인가!?

"이라크 제재를 종식하라." "반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지원을 중단하라." "미군은 중동에서 철수하라." "아프가니스탄 민중에게 깊은 연대와 동정심을 보낸다."

1978년, 아프가니스탄 민중은 놀라운 혁명을 꿈꾸었다. 그 혁명은 여성동등권을 위한 싸움, 봉건적 지배 종식, 민중교육, 토지분배였다. 아프가니스탄을 현대 국가로 발전시키려 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런 혁명적 계획을 수립하였다.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아름다움이 이렇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초장부터 강력한 적이 생겼으니, 그 적은 바로 미국정부, CIA이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를 아는가? 그는 중요한 냉전의 이론가였다. 그는 소련군이 진입하기 전에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도록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을 설득시킨 사람이었다. 그는 그 자체를 자랑하고 있다. 워싱턴은 후방에서 아프가니스탄 반군을 지휘하며, 결국 여성의 권리를 증오하는 사람들, 농촌에서 지주를 변호하던 사람들을 지원했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의 혁명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미국은 중동전역에서 항상 반군을 불러들인다. CIA와 파키스탄 군대는 반군에게 현대무기를 제공하고 미사일을 어깨에 매고 헬리콥터를 명중시키도록 사용법을 가르쳐주었다. 미국은 사우디 아라비아 왕이 반군을 섬멸하도록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였다.

그래서 중동의 민중들은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세계의 가장 큰 악마라고 주장한다. 펜타곤은 지금 짐승을 사냥하는 것처럼 하고 있다. 브레진스키는 그의 정책에 자부심을 가지고 워싱턴이 사회주의 원조, 소련을 패배시키기 위하여 아프가니스탄 반군을 이용했던 것처럼 그에 버금가는 오늘의 문제해결에 값이 있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 "냉전"은 매서웠다.

시민의 피를 부른 전쟁이었다. 전쟁이 23년 동안 계속됨으로써 나라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절망적이었다. 한 예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난 1,000명의 어린이 중 247명이 5살이 채 되기도 전에 죽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미국의 이번 폭격 이전의 일이다.

브레진스키와 그의 보스들이 냉전 중에 편 작전의 대가였다. 지금 펜타곤과 그 하수인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지금까지 폭격을 하고 있다. 그들은 병원과 가옥들을 폭격하였다. 심지어 적십자사까지 폭격하였다. 그들은 1999년 벨그라드의 세르비아 텔레비전사를 폭격하듯 카불의 알 자지에라의 텔레비전 스튜디오를 폭격하였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였다. 그들은 여성의 증오자 반(反) 탈레반의 수많은 반군을 이용하였다.

"9.11사태는 미국의 자본주의가 해외에서는 호전적 성격을, 국내에서는 잔인성을 드러냈다. 민중은 평화를 원한다. 평화는 미국군대가 중동에서 철수해야만 가능하다."
- 존 까탈리노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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