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 858은 폭파된 것이 아니라 실종되었다."


1987년 11월 29일,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바로 오늘,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이역만리에서의 헌신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노동자들과 승무원 115명(아랍인 2명 포함)이 맡은 바 일을 마치고 그리운 가족의 품을 찾아 고국으로 돌아 오던중 미얀마 안다만 해역에서 사라졌다.
정부는 이 사건을 두고 북한 특수공작원 김현희와 김승일에 의한 `KAL858공중폭파사건`이라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처음부터 의혹투성이었고, 14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실종자 가족들의 숱한 절규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은 `검토해보겠다`는 식의 불성실한 답변과 태도로 일관해왔으며 이로 인해 진실 규명은커녕 의혹만 더해가고 있을 따름이다. 더구나 KAL기 폭파범이자 사건의 유일한 증인인 김현희 증언의 허구성이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정부는 지금까지 한마디의 해명조차 없다.
그런 가운데 이 사건은 반목과 불신의 분단시대를 극복하고 민족의 화해와 자주적 통일로 나아가는 길에 엄청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며, 미국의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의 근거인 이 사건이 최근 한반도에 드리우고 있는 전쟁의 불안한 기운과 함께 자칫 우리 민족사에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김현희 KAL기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하루속히 규명하여 실종자와 그 가족들의 피맺힌 한을 당연히 풀어주어야 하고, 그야말로 상처뿐인 냉전과 분단의 우리의 현대사를 다소나마 치유함으로써 민족의 화해와 더불어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에 따라 오늘 진상규명대책위원회를 준비하면서, 

1. 당시 실종자 가족들이 저마다 남편과 딸과 아들의 시신과 유품이나마 찾으러 미얀마 안다만 해역으로 찾아갔지만 정부 당국이 방콕에만 묶어둔 채, 사고 해역에는 아예 가보지도 못하게 한 점. 
2. 블랙박스와 기체 잔해는 물론 유품과 시신 한 구조차 나오지 않았는데 사고 발생 10일만에 수색작업을 중지하고 현지 조사단을 철수시키고, 아무런 물증도 없이 바레인에서 검거한 김현희의 자백만을 유일한 증거로 제시하고 있는 점.
3. 김현희가 북한 여성임을 입증하기 위해 안기부가 3장의 사진을 제시하였지만 김현희라고 주장하는 사진속 인물의 귀(둥그런 귀)와 실제 김현희의 귀(칼귀)가 분명 다르고, 그 조차도 실제인물이 나타났다는 점.
4. 김승일과 김현희의 위조여권을 재일교포 북한공작원 미야모토가 만들어주었다고 하였으나 미야모토는 사고 발생 2년 전에 이미 사망하였고, 김현희의 위조여권에는 남성고유번호가 찍혀 있었다는 점 등등.

이것 말고도 무려 수십(첨부자료에 제시된) 가지에 이르는 의혹만으로도 정부 및 안기부 발표, 김현희 증언의 허구성이 입증되고도 남는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1, 정부는 `김현희 KAL기 사건`의 전면적인 재조사를 즉각 실시하여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2. 또한 `김현희 KAL기 사건` 남북공동조사단을 구성하여 객관적이고 정밀한 조사를 통해 냉전과 분단의 상처를 걷어내야 할것이다.
3. 무엇보다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인 김현희는 하늘이 내린 양심에 따라 실종자 가족들은 물론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스스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4. 아울러 `김현희 KAL기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여 남북의 이념적 대립과 냉전을 조장해온,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세력들의 각성이 있어야 한다. 

역사를 아무리 오도하고 은폐하려 해도 진실은 기필코 밝혀지게 마련이다. 더욱이 민족사의 오점으로 남을 사건을 언제까지 덮어두어야 하겠는가. 김현희 KAL기 사건은 폭파가 아니라 실종사건이다. 그리고 실종자들과 그 가족들의 피맺힌 통곡과 절규가 아직 이땅에 스며들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김현희 KAL기 사건 진상규명대책위원회`를 범국민적으로 결성하여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실제적이고 공개적인 활동을 전개해나갈 것이다.


2001년 11월 29일
김현희 KAL기 사건 진상규명대책위원회(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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