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하는 사람

나는 예술이나 예술가가 특별한 존재로 대접받는 것이 싫다. 예술이 사회적 특권을 누려야 한다는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사람들은 기량을 습득하는 과정이 힘들고 고매한 정신가치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기술습득이 어렵고 정신가치를 창조하는 일은 예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정신노동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서 상대적으로 육체노동의 가치를 끌어내리고자 하는 의도는 경계되어야 한다. 대부분 권력자와 돈 많은 자들은 대체로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다. 육체노동을 경시하는 것은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우월함을 합리화하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에 불과하다.

화가가 창작하는 공간을 `화실`이나 `창작실`이라고 부르지 않고 `작업실`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의 유명한 팝 아티스트가 자신의 화실을 `공장`이라고 불렀다는데 그게 유래인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튼 나는 공장의 작업장을 연상시키는 이 `작업실`이란 말이 좋다.

예술가가 정신노동을 한다지만 실제 책상이나 이젤, 혹은 화폭 앞에 하루종일 앉아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창작을 하기 위해서 상당한 체력을 소모해야 한다. 창작을 위한 밑작업부터 붓을 들고 화폭을 채워나가는 과정은 거의 `노가다`에 가깝다. 애지중지하던 무남독녀를 좋은 미술대학 조각과에 입학시킨 부모가 학교생활이 궁금해 실기실로 찾아갔는데 보안경과 흰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정과 망치로 돌을 깨고 있는 딸의 모습에 놀라 집으로 끌고 갔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사람들이 화가를 바라보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보통은 예술가를 담배나 술에 찌들어 살고 고상한 말이나 내뱉고 어려운 자신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고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보통 사람들은 잘 몰라서 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예술가가 자신도 모르게 이런 모습이 예술가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육체노동의 현실을 무시하고 천재성에 의존한다. 이것이  룸펜같은 예술가, 혹은 게으른 예술가들이 양산되는 이유인 것이다.

게으른 노동자가 밥벌이를 하기 힘들 듯이 게으른 예술가도 밥 먹고살기 힘들다. 특히 게으른 예술가가 예술가치를 팔아먹으면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에게 기생하는 것은 정말 꼴불견이다.

대학로나 인사동에 가면 척 보기만 해도 예술가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내 주변의 화가들은 아무리 좋게 본다하더라도 학원강사 정도 밖에 보이지 않는다. 면바지나 혹은 청바지에 남방, 셔츠, 잠바, 깔끔한 머리에 가방을 들고 편안한 신발을 신은 사람을 보고 누가 화가인줄 알겠나. 보통의 작가들은 남의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육체노동의 건강함을 아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필요 이상으로 예술가 티를 내는 사람은 그것을 통해 돈을 벌려고 하거나 선민의식에 빠진 사람들이다.

나는 `창작행위`를 `작업한다`라고 부르는 것도 좋아한다. 창조행위는 머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손길과 육체의 노동을 통하지 않는 창조가치는 한낱 신기루일 수 있다.
예술가는 작업하는 사람이다.

정치 선전화

▶인민군대의 총창 우에 사회주의운명과 부강한 조국이 있다.
박왕일/선전화/101*152/1997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회화작품이 아니라 북한의 `선전화`이다. 선전화는 우리말로 `포스터`라고 이해하면 정확하다. 북한의 선전화는 수령과 당의 방침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여줘 인민들을 계몽하는 그림이다. 보통 선전화에는 단순하고 자극적인 그림과 함께 선전구호가 들어간다. 이 선전화의 제목은 <인민군대의 총창 우에 사회주의 운명과 부강한 조국이 있다>라고 그림 하단에 나와있다.

이 선전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화려한 도시건물과 웅장한 공장, 그리고 학이 날고 있는 아름다운 농촌을 배경으로 쌍안경과 총검으로 무장한 인민군의 당당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창작연도가 1997년인데, 이는 이른바 북한의 `선군정치`와 관련이 있다. `선군정치`란 말 그대로 군이 우선하는 정치란 뜻이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물난리와 가뭄에 따른 기근, 여기에 미국의 군사적 압박을 이겨나가는 방법으로 군사력을 최우선으로 두겠다는 북한사회의 정책을 담고 있다. 일종의 정치선전화인 셈이다. 아마도 이 그림은 수많은 모사품으로 재창작되어 공장이나 건설현장, 혹은 집단농장에 걸렸을 것이다.

북한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선전구호 일색의 평양을 보고 삭막함을 느낀다고 했다. 하긴 건물을 가릴 정도로 빡빡한 상업간판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북한에서 우리가 보아온 상업간판의 정겨움을 찾는 것은 마치 미국에 가서 된장찌개를 찾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차이를 인정하는데 인색하다. 나와 다른 것을 `나쁘다`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는 `내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다`라고 하는 냉전적 사고의 원천이다.

북한은 벽화와 기념비 조각, 선전구호와 선전화의 나라인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북한에 상업간판이 없다고 우리가 비난하거나 불편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북한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딜 가나 미술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이나 통일을 위한 일이 아니겠는가.

불조심 포스터, 판촉 찌라시, 영화간판, 선전조형물 따위는 대중과 만나는 또 다른 이름의 미술이다. 일종의 대중미술인 것이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보고 접하는 미술을 통해 나름의 미적 감성을 배운다. 전문가도 만들기 어려운 이상야릇한 색을 립스틱을 통해 익히고, 계절마다 바뀌는 패션과 악세사리, 혹은 일주일마다 동네 벽면을 도배하는 영화포스터를 통해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아름다움과 추함의 선택을 요구받는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대중미술의 목적에 부합한다.

우리는 가스사고나 화재, 혹은 교통사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막대한 재산피해를 입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조심 포스터나 교통안전 포스터를 통해 사람들을 계몽하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선전화도 같은 기능을 한다.

포스터는 한 사회의 핵심을 보여준다. 우리 아이들이 그린 `통일 포스터`가 동네 전봇대를 장식할 날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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