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석(군사평론가, `반갑다 군대야` 저자)

 
9월 11일 미국 뉴욕 무역센터건물이 습격 당하기 며칠 전인 9월 초 군 입대를 앞둔 이스라엘 고교생 62명이 샤론 총리에게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정책에 항의해 병역 의무를 거부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테러를 일삼는 군대에는 갈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50년 이상 군사적으로 대치 중인 나라다. 지금의 아프간 전쟁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아랍권에 저지른 테러와 암살, 학살과 전쟁의 연장선이다. 불의의 전쟁과 야만적인 테러를 일삼는 군대에 갈 수 없다며 입영과 병역의무를 거부한 이스라엘 고교생은 진정 양심적, 정치적 병역 거부자들이다.
 
걸프전이 한창 벌어지던 1990년 8월 30일, 당시 22세의 미 해병대 상병이던 제프 패터슨은 하와이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하는 전투기 탑승을 거부했다. 그는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공격에서 전시 명령을 거부한 최초의 군인이었다. 전시중인 이스라엘과 미국에서도 고교생과 해병대 상병처럼 양심적, 정치적 병역 거부가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요즘 아프간 전쟁에 한국군 전투병 파병으로 다시 군화끈을 메고 있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과연 양심적, 정치적 병역 거부, 참전거부가 가능할까. 지금 한국군대의 현실은 "무슨 소리하는 거냐 아무리 수십 번 외쳐봐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군대갔다 온 사람에게 아무리 물어봐도 미군에게 명령받은 적은 없다더라!"이다.
 
물론 미군이 직접 나타나서 명령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규모가 큰 훈련의 비상발령권자가 미군대장인 한미연합사령관이라는 것은 군대 갔다 온 사람이라면 다 안다. 입영하는 젊은이들은 한국군의 체계에 소속되는 그 시간부터 미군의 명령에 따라 징병제아래 국방의 의무를 다 해야 하는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되는 것이 한국군의 현실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징병제는 다른 나라 징병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50년 이상 동족을 주적으로 하는 특수한 처지의 분단된 나라의 징병제이다. 분단현실을 그대로 나타내는 기형적인 징병제로 운영되는 한국군대의 출발점은 첫 단추부터 잘못 맞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에서 양심적인 병역 거부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1년 5월은 `군 복무 중`인 시위진압 `백골단`에 타살된 명지대 강경대 열사의 10주기가 되는 달이었다. 10년 전에 군대와 경찰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군인, 전투 경찰들의 양심선언 즉 지금의 양심적 병역거부가 줄줄이 터져 나왔다. 전시나 마찬가지인 분단사회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 귀한 경험은 이어지지 못했다.
 
1949년 병역법 제정 뒤 50년 간 지금도 1년에 약 25만 여명의 젊은이들이 `아무 생각없이` 입대하고 있다. 자식을 마음놓고 군에 보낼 수 없는 부모님의 가슴앓이가 시작된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외국에선 종교적, 양심적, 정치적 이유 하나만으로 당연시되고 있다. 전쟁에 대한 또는 생명에 대한 자신의 양심적 신념에 의해 군 징집 거부나 집총 거부, 혹은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것은 양심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유엔 인권위원회가 인간의 기본권리로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과 대체복무제 마련을 결의한 바 있고, 회원국들이 이와 관련한 조치를 취하도록 적극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세계 약 30여개국이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헌법 및 각종 하위법을 통해 인정하고 있으며, 이들 소수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비전투 분야의 대체복무제도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독일은 동독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던 1949년에 이미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하였으며 지금 독일 정치권에서 징병제 폐지 요구가 퍼지고 있다. 2001년 6월 28일, 프랑스는 96년만에 징병제를 공식 폐지했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사회의 변화발전과 아울러 숱한 불평등과 민족적인 낭비를 고스란히 안은 `국방의 의무`가 도마 위에 올랐다.
 
첫째, 지난 2000년 초 헌법재판소에서 `군 복무가산점제도`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내려진 이후, 현행 병역제도, 군사제도의 합리적 개혁을 위한 사회 각계의 지적이 터져 나왔다. 징집제도 하에서 남성이라면 누구나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군대내 폭력과 의문사문제도 빠지지 않았다.
 
둘째, 2001년 봄, `한겨레 21`의 언론보도를 시작으로 살상훈련에 참가할 수 없다는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징병대신 감옥을 선택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 1,371명에 대해 충격적인 인권 문제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2001년 9월 터키에서 있었던 세계 병역거부자 대회에 보고되어 외국참가자들이 한국의 변호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50년만에 터져 나온 신성한 병역의무 바로보기 운동은 시민·평화 ·종교단체, 대학생들, 군 의문사 유족들에게 폭넓게 힘을 얻고있다.
 
그러나 2001년 10월 국방부는 남북으로 분단된 특수한 안보환경아래서 양심적 병역 거부권 은 물론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것도 형평성 차원에서 수용할 수 없다며 적극 반대하고 있다.
 
이는 국방부가 전 세계에서 보편화된 양심적 병역 거부권마저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과민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양심의 자유 영역의 핵심인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는 기본법상식조차 없다.
 
둘째, 현재 2000년 6·15공동선언 뒤로 남북 민간교류와 통일로 가는 길에서 화해 무드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냉전사고에 젖어 있다.
 
셋째,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을 썩어서 돌아오게 하는 군대라는 국민적 비판에 귀를 닫고 있다. 군에서 사병들이 1년에 300명이 죽고 7000여명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현실에서 휴전선 155마일을 점으로 보초 세우는 봉건적인 군사전략이 있는 한 젊은이들의 열린 사고와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제 세상이 변했다. 결론적으로 통일 지향적인 정세에 맞는 인간 친화적인 군사전략에 맞는 병역제도와 군사제도를 고민해야 한다. 동족을 주적으로 여전히 규정한다면 유고전과 아프간 전쟁처럼 외세의 입김에 놀아 날 수밖에 없다.
 
남북 통일 시대를 대비하는 30만 군대를 유지해도 충분하다. 징병제는 지원병제로 바꾸어야 한다. 이제 30만 군대를 갖추는 통일지향적인 군대모습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거대한 공룡 한국 군대는 석기시대를 벗어날 수 없다.
 
비상경계태세가 내려진 준전시체제인 우리 사회에서 "동족인 북한에 총부리를 향하는 군대에 갈 수 없다"라는 젊은이 한 명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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