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矛盾)`, 어떤 방패라도 꿰뚫을 수 있는 창과 어떤 창이나 칼로도 꿰뚫지 못한다는 방패는 성립할 수 없다는 중국 고사이다.

지금 우리는 또하나의 모순을 목도하고 있다. 87년 KAL 858기 사건을 둘러싸고 `완전히 쇼`라는 주장과 `대법원에서도 김정일의 범죄를 인정한 사건`이라는 두 입장이 팽팽히 맞서있는 것이다. 또한 똑같은 사진 한 장을 두고 김현희의 어린시절 모습이라는 주장과 김현희가 아니라는 주장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내외저널 10월호는 현준희씨와의
단독인터뷰를 탑기사로 내보냄으로
써 본격적인 `KAL기 사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월간조선 11월호는 김성동 기자의
반박기사를 실어 공방이 시작되었고
내외저널 12월호에서는 다시 유가족
들이 월간조선 기사를 반박했다.


14년 전의 사건이 다시 한번 `진실 공방`에 오르게 된 첫 포문은 현준희(48세, 전 감사원 직원)씨가 열었다. 14년간 개인적으로 이 사건을 추적해왔다는 현준희씨는 월간 내외저널 10월호에 <김현희 KAL기 사건 조작 의혹>이라는 기사를 통해 이 사건에 대한 12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현씨는 "KAL기 사건은 조작됐을 가능성이 클 뿐만 아니라 폭파사건이 아닌 실종사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첫 번째 공개 반론은 월간조선 11월호에 <연합뉴스 계열 「내외저널」의 난데없는 KAL 858기 폭파사건 조작 의혹 기사>라는 김성동 기자의 글이었다. 김 기자는 현준희씨의 주장은 "새로운 사실이 없다"며 현씨의 주장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하면서 주변 정황 설명이나 관계자 증언을 실었다. 김 기자는 "이 사건은 대한민국의 정부뿐만 아니라 정의 수호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대법원에서도 김정일의 범죄를 인정한 사건"이라는 결론이다.

그러나 공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월간 내외저널 12월호에 이 사건의 희생자 가족인 차옥정(66세, 희생자 박명규씨 부인), 김호순(55세, 희생자 신태호씨 부인)씨가 <상식은 상식이 통하는 데서 논해야 제격이다>라는 월간조선 기사에 대한 반박글을 실은 것이다. 차씨와 김씨는 "제기한 의혹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평하지 않고 이것저것 추상적인 얘기로만 기사를 채워놓은 느낌이다"며 특히 김현희가 자신이라고 주장한 중학교 때의 사진과 관련한 김 기자의 설명을 자세히 반박했다.

이로써 KAL 858기 사건의 진실 공방은 2라운드에 접어든 셈이다.

자세한 내용에 대한 논란은 뒤로하고 독자들은 먼저 두 가지 의문점을 갖게 될 것이다. 왜 14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서 KAL 858기 사건이 다시 불거져 치열한 공방까지 벌이고 있을까 하는 점과 현준희씨의 주장에 왜 `월간조선 기자`가 나서서 반론을 폈을까 하는 점이다.

▶KAL기 사건 의혹에 대해 개인적으로 14년동안 추적해 온 현준희씨가
지난 16일 통일부 북한자료실에서 진행된 비디오 시청 모임에서 해설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현준희씨가 직접 밝힌 바 있다. 현씨가 이 사건을 이제서야 다시 문제삼는 이유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 실현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 ▲북.일 국교 수립에 있어서 결정적인 문제가 바로 KAL기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통일뉴스 2001.11.16)

그리고 그 직접적 계기로는 올해 3월 동국대 황태연 교수가 `남북한 과거사` 발언 파문에 대한 해명과정에서 "현 시점에서(6.25전쟁 등에 대해) 사과요구를 제기하는 정치집단이 있다면 이들의 의도는 김정일 위원장 답방을 무산시키려는 의도"라고 주장한 데 대해 보수세력과 언론이 발끈하고 나선 것을 지켜본 것이었다고 한다. (내외저널 2001.10)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좀더 설명이 필요하다.

월간조선은 2001년 3월호에 김성동 기자의 <대한항공 폭파 사건 희생자 가족들, 金正日 체포 요구>라는 기사를 실었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희생자 유족회` 회원들이 올해 2월 1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국가보안법 위반, 폭발물에 의한 살인 등의 혐의로 고소한 내용 등을 다룬 것이다. 즉 KAL 858기 사건의 범인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고 그가 사전 사과없이 답방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KAL 858기 사건이 다시 불거지게 된 것은 현준희씨의 문제제기 이전에 KAL기 유가족들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고소사건과 월간조선의 대대적 보도가 계기가 된 셈이다.

그러나 이 사건과 관련한 월간조선의 `특별한 관심`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10월호에서 역시 김성동 월간조선 `전속기자`는 <KAL 858 폭파사건 가족들의 기막힌 삶>이라는 기사를 통해 사건이후 유가족들의 어려운 생활 처지에 대해 세세히 보도하였고 그들을 `김정일 테러의 희생자들`이라 명명했다. 역시 기사 말미에는 김정일 위원장 답방과 이 사건을 연결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월간조선 김성동 기자와 이 사건의 관계는 이 정도만 언급하기로 하고 보다 본질적인 월간조선과 KAL858기 사건과의 관계를 보도록 하자.

▶내외저널 12월호에 월간조선 기사를 반박한 글을 실은 차옥정(좌측)
김호순(우측)씨가 지난 16일 비디오 시청 모임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유가족의 주장에 따르면 사건 발생후 김현희를 면담한 `유일한 민간인`은 다름 아닌 월간조선 편집장인 조갑제 기자라는 것이다. 일부 유가족은 그를 가리켜 서슴없이 `안기부 앞잡이`라고 지목했다. 이후 조갑제 기자는 나흘간의 김현희와의 면담을 토대로 `김현희의 하느님`이라는 책자까지 낸 적이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월간조선과 조갑제 편집장, 그리고 일부 유가족들의 표현에 따르면 `그 밑에 있는` 김성동 기자는 KAL858기 사건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가장 깊숙한 관심을 갖고 특히 `김정일 책임론`을 강조해 온 것이다.

따라서 현준희씨가 김성동 기자의 표현에 따르면 `연합뉴스 계열=관변 잡지`인 내외저널에 KAL858기 사건의 의혹점과 북한측 책임에 대한 증거 불충분을 제기하자 월간조선이 이에 대한 공개적 반박에 나선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양측이 주장하는 상반된 내용을 들여다볼 차례이다. 먼저 양측은 KAL858기 사건의 성격과 명칭부터 달리하고 있다.

월간조선을 통해 김성동 기자와 조갑제 편집장은 (편의상 월간조선) 이 사건을 `공중 폭파사건`으로 규정하고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김현희와 김승일이 저지른 `테러사건`으로 보고 있다. 사법기관과 공안당국의 발표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근거로 김현희의 진술 등을 들고 있다. 따라서 김정일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내외저널을 통해 현준희씨와 차옥정, 김호순씨 측은 (편의상 내외저널) 이 사건을 `실종사건`으로 규정하고 아직까지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미스테리`로 보고 있다. 기존의 사법기관, 공안당국의 발표를 믿지 않는 것이다. 그 근거로 유해나 유품이 한 점도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들고 있다. 따라서 김정일 책임론 등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 사건에 대해 월간조선은 `확신`을, 내외통신은 `의혹`을 주장하는 근거를 살펴보자.

▶내외저널 10월호에 실린 사진.
현준희씨는 화살표 소녀가 김현희
가 아니라 북한의 정희선씨라고
주장했다.


월간조선은 사건의 피해자라고도 볼 수 있는 김영삼 전대통령과 김대중 현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에도 법정의 판결이 바뀌지 않았고, 김현희의 얼굴이 만천하에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김현희의 신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증언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내외통신은 지금까지 김현희의 증언 외에 지금까지 어떤 확증도 제시되지 않았고 당국이 발표한 내용을 확인한 결과 너무나 많은 거짓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33가지의 의혹을 제기했으며, 현준희씨는 내외통신에서 제기한 12가지의 의문점 외에도 100여가지 이상의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준희씨의 12가지 의혹점에 대해 김성동 기자는 6가지 정도의 주요 문제에 대해 반박했다. 이에 대해 다시 유가족 차옥정, 김호순씨가 재 반박하는 과정에서 가장 쟁점이 된 것은 김현희가 중학교 시절 남북조절위 회담차 방북한 남측 대표단의 일행인 장기영씨에게 꽃을 주는 화동으로 참석했다는 대목이다.

▶월간조선 11월호에 실린 사진.
김성동 기자는 3번이 김현희이고
4번이 정희선이라고 주장했다.
(파란색 숫자표기자는 필자)

이 문제가 중요하게 거론되는 까닭은 김현희가 명백한 북한주민인가 하는 의혹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으며, 남북조절위라는 역사적으로 명백한 사건이라 많은 증거 사진들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월간조선과 내외통신은 실제로 모두 당시의 사진들을 게재하고 번호까지 매겨가며 각자의 주장을 펴고 있다. 사진속의 여학생이 진짜 김현희의 중학교때 모습인가를 놓고 진위 공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똑같은 사진을 두고 `이 사진의 ③번 소녀가 金賢姬로, 누가 봐도 한눈에 金賢姬 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측과 `건강한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사진 속 소녀의 귀가 정희선(북측에서 사진속의 여학생이 자신이라고 밝힌 여성)을 닮았는지 김현희를 닮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는 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내외저널측에 따르면 사람의 귀는 평생 그 모양이 잘 바뀌지 않은 `얼굴의 지문` 같은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오는 29일이면 KAL858기 사건 14주기가 된다. MBC에서도 14주기를 맞아 이 사건과 관련된 방영물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공은 월간조선측으로 넘어갔다. 월간지라는 매체가 갖는 특성상 발빠른 결론은 어렵겠지만 공방 2라운드를 거치면서 이 사건이 조만간 우리 사회의 새로운 이슈로 등장하리라는 것은 섣부른 예측만은 아닐 것이다.

한편 월간조선 김성동 기자는 내외저널 12월호의 차옥정, 김호순씨의 반박글에 대해 의견을 묻는 기자에게 글이 실린 사실을 "몰랐다"고 밝히고 "(월간조선) 11월호에 쓴 걸로 다 얘기 했다고 본다. 논란이 될 수 없는 것을 논란을 삼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김 기자는 "유가족들이야 아직 의혹을 제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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